21. 설움이 북받쳤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by 집안의 불청객

가끔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 잡생각들은 많은데 정작 결론이 도출되지 않는다.


결론 없는 잡생각들은 그다지 좋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내 마음 안에 있는 불안과 우울 깨운다.


그럴 때면 서러울 때가 있다. 내가 왜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하는지, 왜 이렇게 사는지.


그런 서러움은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주체할 수 없는 화가 끓어오를 때도 잔잔한 호수에 깊이 빠질 때도 있다.


경사가 심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하면 설움에 북받치게 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삶의 이유를 찾곤 한다. 하지만, 여태까지 완벽하고 정확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릴 때는 이상하게 불행한 기억도 행복한 기억도 강렬한 인상이 남은 기억도 없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 명량하고 쾌활하지도 않았다. 마치, 산속에 덩그러니 있는 잔잔한 호수였다.


활발하게 물결이 치지도 않았고 누군가 찾아오지도 않았다. 혼자였고 외톨이였고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고독이라는 표현을 써야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쌓아가며 불안이 폭발했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대인공포증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학교라는 수많은 애들 사이에서 반이 나눠지고 그 반에 삼십 명이 함께하는 곳을 두려워했다.


애들의 괴롭힘도 문제였겠지만, 이를 방관한 선생님도 문제였고 이걸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는 나도 문제였다.


사건의 경위는 여름일 때였다. 내가 학급으로 들어가면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그 시선에는 경멸과 환멸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떠는 나를 옆에 앉혔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옆으로 흘깃 쳐다보며 비웃음을 짓고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말이다.


그걸 보자마자 구토가 쏠려왔고 바로 문을 열고 화장실로 가서 토를 쏟아냈다.


선생님조차도 내가 미흡하다는 걸 느끼고 그렇게 행동에 옮겼을 때, 토를 하면서 역겨움이 올라올 때 나는 설움에 북받쳤다.




이후에는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중학교 때는 애들이 장난이랍시고 커터 칼을 던진 적이 있었다.


말이 장난이지 괴롭힘과 다름없었다. 나는 그것을 배드민턴 채로 막았고 동시에 줄이 끊어졌다.


이러고 있는 나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대로 배드민턴 채를 바닥에 내던져 구부려 뜨렷다.


그 행동을 한 이유는 나 자신에 관한 혐오였다. 남들에게 반항 한 번 할 생각조차 없었기에 스스로 괴롭혔다.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다시 자신을 망치는 것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최근에 마지막으로 설움이 북받친 것은 불안증세가 강하게 왔을 때였다.


다시는 가기 싫었던 정신병동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불안정했다.


시야가 흐리고 손은 떨리며 숨은 가쁘며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뇌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구토는 덤이었다.


옆에는 아버지가 그런 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죄책감이 나를 덮쳤다. 엄마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빠도 피곤할 텐데 너무 그러지 마.”


머릿속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고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쉬고 싶은 게 당연하다.


내가 그것을 방해하고 막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말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런 빈도가 약간씩 늘고 있다. 거북이처럼 느리게 늘고 있지만, 폭주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둠을 안고 살아간다.




설움이 북받친다는 건.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건. 스스로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굴레에 벗어나는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무엇을 하나 시도해 보려고 해도 이미 겁을 먹기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도 사치다. 이미 설움에 길들어버렸기에 이걸 해도 똑같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노력하고 있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큰 노력을 자주 했고 좋지 않은 결과를 겪어봤기에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저 설움에 북받쳐 어두운 방 안에서 해가 들기를 바라고만 있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어둠에 갇혀서, 빛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수동적인 태도를 일관한다.

설움은 언제나 적응되지 않는다. 불행보다 행복이 기억에 더 남듯이. 설움은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와 크기로 나를 조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