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부재

가느다란 사랑은 끊어지기 마련이다

by 집안의 불청객

같은 공간, 같은 나이, 같은 학년 등 우리는 대부분을 같이했다. 그러나 마음은 맞지 않는 부재였다.


우리의 사랑은 꼬여있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은 부재였고 각자 다른 사람을 사랑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술기운에 키스했고 중간 과정을 생략한 채로 사귀었다.


그래서 서로에게 더욱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이러다 보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말이다. 남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좋은 연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했다.


학교 내에서 비밀 연애를 했다. 난 조금 불만이 있었지만, 그녀의 입장을 따르기로 했다. 근데 문제는 나의 의견이나 동의도 없이 갑자기 다른 애들에게 연애 소식을 공개했다.


분노까지는 아니지만 가슴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녀가 사과도 하고 달래주었다.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리지 않았지만, 원활한 관계 유지를 위해 누그러뜨려야 했다. 감정표현 자유의 부재였다.


마음속의 응어리는 그녀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거짓말이었으니까. 친구들 모임에서 이성 친구가 있으면 그녀는 보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성 친구와 단둘이 술을 마실 때도 그러했다.


숨통이 틔어야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쓰레기라고 욕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녀가 목에 걸린 조여오는 밧줄이 느슨해진다면 다들 그럴 수도 있다.


자고 싶을 때 쉬고 싶을 때 친구와 만나고 싶을 때 그것 대신 그녀를 만나러 가야 했다. 학교 내에서 주변인들은 점점 떠나갔다.


그녀가 나를 안 만날 때가 학기에 딱 두 번 있었다. 기간은 이 주일 정도였다. 바로 시험 기간이다. 그녀는 나의 시간을 그리도 뺏어갔는데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시험 기간에 내가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미래에 대해 신중한 타입이었지만 얼굴조차도 보지 못한 건 심했다.


그래서 외로웠다. 사랑의 부재를 거기서 크게 느꼈다. 성별 가리지 않고 술자리에 계속해서 갔다. 술에 취해서 전화하면 공부해야 한다며 짜증을 냈다. 그 행동을 한 이유는 관심을 받기 위해서였다. 제발 나를 한 번만 봐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그녀는 시험 기간에 연락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소통의 부재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더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그러면 잠시나마 잊혔으니까.


시험이 끝나면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에게 연락을 독촉했고 만남도 스스로 하려 했다. 어쩌면 그녀는 시험 기간 동안 했던 짓들이 미안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내 처지에서는 가식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느낀다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이중인격으로 보이고 자신의 감정만 앞세워 이기적인 태도라고 느꼈다.


그럼에도 헤어지자고 말하지 못한 이유는 나의 첫 연애이기도 했고 그녀와 잠시 나누는 감정의 포근함 때문이었다. 그 포근함을 느끼는 중에는 사랑이 느껴졌다.


근데 이런 결과를 맞이할 거였으면 진작에 헤어질 걸 그랬다. 마음속에만 품고 실행하지 못한 걸 후회 중이다. 마음의 부재가 일어날 때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난다.


“미안해. 나 이제 지쳤어.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여기서 나를 제일 처참하게 만든 건 미안하다는 사과도 지쳤다는 말도 아니었다. 여태까지 쌓아온 것이 한 번에 무너지는 말은 정말로였다.


정말로 좋아한다고 말했으니, 여태까지의 나는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카페에서 작업 중이었다. 통화가 끊기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갔다.


시간은 정오였고 아무 가게나 들어가 술을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취기가 오를수록 괜찮아지지 않고 죽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택시를 타고 대교에서 매달려 투신하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그녀는 아니었나 보다. 나보다 중요한 게 늘 앞 순서에 있었고 그게 먼저였나 보다. 한 명은 헌신적이었고 한 명은 이기적이었다.


이제 소통, 사랑, 연락, 마음의 부재가 내 뒤를 따라왔다.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힘들고 비참했던 사랑은 부재로 끝맺음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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