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씨 이야기 (3)
어느덧 아이의 입학식이었다. 민정은 아이가 초등학생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스럽기 이전에, 자신이 벌써 학부형이 될 만큼 나이 먹었다는 사실이 우울했다. 마음만은 아직 20대인데 말이다. 그러나 세월의 무상함을 곱씹으며 상념에 젖어 있을 수는 없었다. 아이 옷은 골라 두었는데, 정작 민정의 옷이 없었다. 정확히는 있는데 이제 입을 수가 없었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생경했다. 콕 찝어 뭐가 달라졌다 말하긴 힘들었지만, 무언가 반짝거리던 게 사라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게 젊음인가? 피부 탄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민정씨는 거울을 바라보며 입고리를 이쪽으로 올렸다, 저쪽으로 올렸다, 턱을 치켜 올렸다, 꼼꼼히 살펴보았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럴듯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뭐라도 참고해볼까, ‘초등학교 입학식’을 치자 이런 고민을 한 게 민정 하나뿐이 아니었는지 첫 번째 연관 검색어로 ‘학부모 옷’이 떴다. 검색해보니 결과가 참으로 휘황찬란했다. 재벌 2세가 제벌 3세 입학식을 위해 차려 입었다는, 가격은 알지는 못해도 필시 민정은 엄두도 못 낼 게 분명한 명품 옷들이 ‘입학식 룩의 정석’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조금은 과감한 연예인들 패션부터 옷 자체는 받아보면 볼품없을 게 뻔하지만 모델 소장품이라는 명품백으로 시선을 가리려는 발칙한 쇼핑몰 사진들까지, 도대체 누굴 위한 입학식인지 헛갈릴 지경이었다.
블라우스에 슬랙스- 단추가 잠기지 않았다, 티셔츠에 청바지-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대도 이건 너무 격식 없는 것 같았다, 풀오버에 니트 스커트까지- 뱃살이 도드라져서 도저히 봐 줄 꼴이 아니었다, 이것저것 입어보았지만 모두 실망스럽기만 했다. 결국 겉보기에는 그렇게 후줄근해 보이지 않는 밴딩 팬츠와 루즈 핏 니트를 걸친 민정씨는, 거울을 보며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을 점검했다. 저번에 느꼈던, 더 이상 무언가 반짝거리는 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그 감상은 그대로였다.
패션쇼까지 벌였던 난리가 무색하게, 막상 입학식에선 편안한 옷 천지였다. 정장 반, 캐주얼 반 정도 될까. 패딩 옷차림도 곳곳에 보였다. 강당에서의 행사가 끝나고, 반으로 이동하기 전에 막간의 시간이 생기자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기존에 안면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사가 터져 나오고, 곧 삼삼오오 무리가 생겼다. 소중한 자식이 처음 학교에 왔으니, 다들 서로 잘 보여야 할 처지임에는 다를 것 없었으나 그래도 그 중에 더 여유로운 사람, 덜 노력해도 되는 사람은 분명히 있었다. 로아 엄마가 그 중 하나였다.
학교 바로 앞 단지에 분양이 끝나고 준공 직후 들어온 초기 입주 멤버였다는 로아 엄마는, 사교성 있는 성격에 교육 관련 정보력으로 그 단지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새 학기마다 반 아이들을 모두 초대해서 키즈 카페에서 아이 생일파티를 연다는 로아 엄마 이야기는 이미 입학식 전부터 유명했다. 4년 내내 영어유치원을 보냈다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경제력에 걸맞은 부티나는 로아 엄마의 첫인상에 민정은 살짝 기가 죽었지만, 아이의 순탄한 학교생활을 위해서 가장 먼저 노려야 할 인맥을 이대로 놓칠 순 없었다. 민정은 이미 대화로 바쁜 무리 속에 비집고 들어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같은 반 된 지우 엄마예요. 같은 피아노학원 다녀서 종종 뵀는데, 이번에 같은 반 됐네요.”
로아 엄마와 대화하고 있던 무리의 시선에 민정에게로 쏠렸다. 그 시선들에 담긴 눈빛은 복잡미묘했다. 새로 알게 된 학부형에 대한 관심, 이제 막 친해지려는 무리에서 아직 자신의 입지를 다지지 못한 초조함에서 비롯한 불안감, 순수한 호의와 경계심. 그 와중에 로아 엄마는 혼자서 느긋했다.
“어머! 정말요? 제가 왜 몰랐지? 맨날 직접 픽업하거든요.”
“저흰 얼마 전에 이사와서요.”
“아, 그렇구나. 어쩐지.”
민정에게 배정된 시간은 짧았지만, 로아 엄마의 환한 미소에는 호의가 담겨 있었다. 민정은 마음을 놓았다. 먼저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한 것도 로아 엄마였다. 민정이 핸드폰에 연락처를 찍어 건넨 걸 받아들며, 로아 엄마가 물었다.
“저, 죄송해요. 이름이 뭐라고 했죠?”
“김민정이요!”
“아, 그랬구나. 민정이 어머님… 이라고 저장할게요.”
“아, 아니, 그건 제 이름이고… 아이 이름은 한지우요….”
바보같긴, 내 이름이 여기서 왜 필요해, 당연히 아이 이름을 묻는 거였을텐데… 민정은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하지만 로아 엄마는 예의 그 함박웃음과 함께 민정의 무안함을 풀어주었다.
“어머, 제가 죄송해요. 저희도 이름이 있는데, 그죠? 맨날 누구 엄마라고만 하다보니 습관이 돼서… 저희 누구 엄마라고 하지 말고 이름으로 불러요.”
로아 엄마는 토독 토독, 한지우 엄마 김민정- 이라고 연락처 이름을 고치며, 생긋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제 이름은 유지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