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씨 이야기 (4)
그 뒤로 민정은 로아 엄마와 두어 번 더 만났다. 다행히 아이들도 제법 결이 잘 맞았다. 민정은 영어유치원을 나왔다는 로아가 공립 유치원 출신인 연아를 촌스럽다고 느끼지 않을까, 수준차이를 보고 무시하지나 않을까, 처음엔 이래저래 걱정이 태산 같았지만 (아이들 수준이 비슷해야 분위기가 좋다는 부동산 아주머니 발언의 재평가가 시급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로아는 자기 엄마처럼, 범접하기 어려운 분위기와 달리 수더분한 성격이었다. 로아는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며, 연아에게 빌려주겠다고, 디즈니 캐릭터가 그려진 책을 한 권 내밀었다. 민정은 이 책이 영어 원서일까봐 화들짝 놀랐지만 다행히 한글 책이었고, 연아는 영어를 읽지 못한다고 수준차이를 고백하는 대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이 만남은 아이들의 교류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어야 옳지만, 점차 수단과 목적의 경계가 흐려졌다. 민정씨는 로아 엄마와 만나기 위해 아이들의 만남을 추진했다. 로아네를 만나면 아이들은 재빨리 놀이터로 내몰고, 아이들이 보이게끔 시야가 확보되었되 적당히 거리가 있어서 어른들끼리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야외테이블로 로아 엄마를 이끌었다.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로아 엄마와 단 둘이 마주보고 앉노라면 민정씨는 제일 좋아하던 친구를 독차지한 사춘기 소녀마냥 들떴다.
“대단해요. 어떻게 집에서 혼자 가르칠 생각을 하셨어요?”
로아는 영어유치원 졸업 이후 연계 과정을 밟지 않고, 로아 엄마가 집에서 직접 영어를 가르친다했다. 영어 전공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고, 그 정도는 직접 해도 될 것 같았다면서 말이다.
“이제 연계 과정 밟으면 스피킹은 거의 없고, 단어 외우는게 대부분인데… 이 나이때 굳이 단어를 그렇게 외워야 하나 싶어서요. 보면 사실 수능에도 필요 없는 단어도 정말 많거든요. 로아가 나온 유치원 자체도 제 기준엔 너무 학습식이었는데, 또 마음에 차는 데가 없어서 그냥 스타일은 좀 달라도 보낸 건데.”
자식교육에 관한 확고한 신념, 정보력, 그리고 실천을 위한 아낌없는 투자와 그를 뒷받침하는 재력까지. 민정에게 로아 엄마는 완벽한 학부모의 표본이었다. 아이 키우는 게 막막하고 힘이 들면 이 길을 따라가라고, 하늘에서 민정에게 내려 준 지침서같았다. 로아 엄마가 하는 모든 게 멋져보였다.
“로아 입고있는 자켓은 뭐예요?”
“아…. 저건 버버리예요.”
화사한 꽃분홍색의 얇은 반코트. 예전같았으면 촌스럽다고, 누가 요즘 버버리를 입냐고, 그럴 바에는 백화점 캐쥬얼 아동복 브랜드에 가서 같은 돈으로 옷 두세 벌 사 입히겠다고 했을 민정씨였다. 그러나 로아 엄마가 아이에게 버버리를 입히자 버버리는 민정씨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분홍색이 그렇게 화사할 수가 없었다. 짙은 색상이 아이의 얼굴을 더 환해보이게 했다. 클래식이 괜히 클래식이 아니구나. 민정씨는 로아 엄마의 혜안에 감탄했다. 나도 이상한 옷 여러벌 사는 데 돈 낭비하지 말고 이런 거나 하나 사 줘야지, 민정씨는 자신이 입혀 놓은 싸구려 브랜드 자켓을 입고 있는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졌다.
“저 가디건은 폴로예요?”
“맞아요. 제가 저 폴로걸즈 가디건을 좋아해서, 색상별로 사 줬어요.”
한물 간 브랜드라고, 올드머니룩은 무슨, 그냥 올드하다고, 아이들 옷은 화사한 맛이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던 민정씨였다. 그러나 로아 엄마가 아이에게 폴로를 입히자 이번엔 폴로가 민정씨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 그렇게 단정할 수가 없었다. 깔끔한 색상이 아이의 태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민정씨는 다시금 로아 엄마의 혜안에 감탄했다. 그래, 가격차이도 많이 안 나는데 조금 더 주더라도 이런 브랜드를 사는 게 맞지. 오래 살아남은 브랜드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민정씨는 집에 가서 연아가 입고 있는 저 싸구려 브랜드 옷들을 싹 쓸어버려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