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씨 이야기 (2)
어려서부터 뭐 특출난 게 없었던 지은씨에게는, 집이 잘 산다는 게 자신의 제일가는 자랑거리였다. 집에 돈은 많지만 공부엔 딱히 재능이 없는 학생들이 흔히 그러듯이, 지은씨도 예체능 쪽에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플룻도 해 보고 발레도 해 보았지만 뭐 하나 두각을 나타내진 않았다. 그렇다고 입시에 죽자살자 매달릴 만큼 지은씨에게 열정이 있거나, 노력할 인내심이 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무난하게 미술을 전공으로 선택한 지은씨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많이들 그렇듯이 돈 좀 들여서 유학했답시고 생색도 내고, 남들 보기 그럴듯한 간판이라도 따 오는 게 목적이었다. 물론 개중에 진짜 더 큰 물에서 배우고자 유학을 떠나는 케이스도 있었지만 지은씨에겐 해당사항 없었다.
거기에서 남편을 만났다. 당시 학생이었던 남편은 지은씨가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었다. 그 학교는 미국의 그저 그런 주립대 중 하나였지만, 남편이 본적을 두고 있는 한국의 학교는 손꼽히는 명문대 중 하나였다. 지은씨는 남편의 학벌에 반했고, 남편은 지은씨의 재력에 반했다. 물론, 당시엔 지은씨의 귀여운 외모와 어쩌고 이것저것 다른 이유를 주워섬겼지만, 며칠을 우유도 없이 시리얼로만 때웠다는 남편을 지은씨가 자기 차에 태워 중식 레스토랑에 데려와 줬을 때, 분명 그 눈에서 이전에 없던 불꽃이 일었다.
그렇게 각자 교환학생과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남편은 취직도 하기 전에 지은씨에게 프로포즈했다. 지은씨의 부모님은 못마땅해했다.
“아니, 너무 이른 거 아니니? 최소한 남자가 직장은 잡아야 할 거 아냐.”
“직장이야 오빠 명문대 나왔으니 알아서 취직 잘 할거고, 솔직히 나는 무직이고 앞으로도 그럴 건데 왜 오빠한테만 그래?”
평상시 엄마를 속물이라고 남몰래 경멸하던 지은씨였다. 지은씨 어머니의 걱정은 충분히 상식적인 범위 내였지만 지은씨에게는 그마저도 위선으로 느껴졌다. 반대까지는 아니었지만 우려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다행히 부모님의 기우가 무색하게 남편은 곧 대기업에 취직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자 성급한 결혼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지은씨 부부의 결정은 취직하면 가기 힘든 긴 신혼여행을 사수해 낸 혜안이었다는 재평가를 받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지은씨의 삶은 늘 그렇듯이 평화로웠다. 등급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해프닝은 있었지만 지은씨의 어머니는 늘 백화점 VIP였고, 일도 뭣도 없이 한가한 지은씨는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같이 VIP 대접을 받고 다녔다. 지금까지 지은씨의 삶은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누구라도 부러워할만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젊고 예쁜 엄마고, 유학까지 다녀온 예술가고, 남편은 명문대 나와서 번듯한 대기업 다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