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씨 이야기(2)
개학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자, 아직 입학도 전인데 학교에서는 어플을 통해 온갖 알림을 보내기 시작했다. 운영위원회니 학부모회니, 공립 유치원 시절에는 가뿐히 무시했던 내용들이 더 이상 가볍게 넘어가지 않고 손가락 끝에 무겁게 걸려있었다. 아이가 친구도 없이 외따로 새로운 곳에 떨어졌는데, 새로운 무리에 적응하라는 어른에게도 힘든 임무를 오롯이 만 7살도 안 된 아이에게 떠넘기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자신이라도 이런 모임들에 참석해서 사교의 범위를 넓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불편한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끝없이 이어지는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에 좀이 쑤시는 걸 견뎌가며, 어차피 답은 다 정해진 안건들에 거수기 역할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자니 한숨만 나왔다. 민정의 시선은 마침 뒤에 쇼파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로 향했다. 열심히 핸드폰으로 무엇을 하고 있지만, 저 핸드폰엔 학교에서 깔라고 한 어플 같은 건 흔적조차 없을 터였다. 남편에게 학부모회 거 참석할 생각 있냐고 물어봤자 대답은 뻔할 뻔 자였지만, 민정은 혹시나 하고 동앗줄을 부여잡는 심정으로 물었다.
“자기, 학부모회 같은 거 해볼 생각 있어?”
“아니.”
역시나였다. 고민하는 척이라도 좀 할 것이지, 하여튼 아이 관련된 일은 모조리 내 차지지. 민정은 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화내도 변할 건 없을 거였다. 민정은 짜증을 속으로 삭히고, 학부모 참석 의사를 묻는 질문들에 모두 ‘예’를 표시해서 답변을 제출했다. 그래, 새로운 환경에 놓이는 거 피곤하고 부담스럽지. 나도 그런데 아이는 오죽하겠어. 나는 다 피하면서 아이한테만 맞서 부딪히라고 할 순 없지.
“지우야, 곧 입학식이래. 엄마가 예쁜 옷 준비해 놨어.”
민정씨는 아이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해 인터넷에서 옷가지를 여럿 주문해 둔 참이었다. 퍼프소매에 샤가 풍성하게 달린 원피스라든가, 반짝거리는 보석 단추가 달린 하얀 코트라든가. 그러나 민정이 내미는 옷들을 마주하는 아이는 눈치로 보아하니 무언가 불만족스러워 보였다.
“왜?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이건 공주 옷이잖아. 학교랑은 잘 안 어울리지….”
“학교랑 어울리는 옷이 뭔데?”
“이런 바스락거리는 치마가 달려 있으면 안 돼.”
그러면서 아이는 샤스커트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좀 유치하긴 하지. 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골라 산 건데… 시간이 지나 환불도 안 되는 마당에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민정은 다시금 아이에게 옷을 내밀었다.
“이건 학교랑 안 어울리는 게 아니야. 1학년은 괜찮아.”
“색도 학교에 안 어울려. 색은 검정색이 좋아. 무늬가 있으면 안 돼. 그런데 치마에 무늬가 있는 건 괜찮아.”
도대체 무슨 기준인지… 자신이 옷 고르기 시작한 이후로 쭉 샤스커트에 환장하던 아이였다. 설마 그 때 그 말들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걸까? 넌 왜 치마만 입어? 너 공주야? 아이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친구라고 부르기도 몹쓸 그것들은 저들끼리 서로 바라보며 킥킥대며 웃었다. 민정은 달려가서, 뭐가 그렇게 웃긴데, 소리치며 그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것들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내야만 했다.
“그래, 그러면… 이 옷들은 마음에 안 든다는 거네.”
“마음에 안 드는 건 아닌데, 학교엔 안 어울리지…”
그래, 아이의 판단을 존중해 주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내 친구들이 뭘 입는지에 민감할 나이니까… 민정은 아이 입학식이랍시고 할인도 안 하는 신상 옷에 할애한 금액을 떠올리자니 속이 쓰렸지만 아마 당근에 구입가 거의 그대로 팔 수 있을 거라고 자기 자신을 다독였다.
“그럼 엄마랑 같이 옷 사러 나가자. 네가 뭘 사면 좋을지 알려 줘. 엄마는 학교에 어울리는 옷이 뭔지 잘 모르니까…”
“나도 잘 모르는데.”
“그래, 우리 같이 의논해 보자.”
그러면서도 민정은 진득하게 들러붙는 미련을 차마 떨쳐내지 못하고 다시금 슬쩍 샤스커트 원피스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런데 이 바스락거리는 치마는 안 어울리는 게 확실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