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초 학부모들

민정씨 이야기 01

by 나나

“여기는 LH 애들이 배정받지 않는 학군이에요.”


지금 이 집을 소개해 준 부동산 사장님의 첫 대사였다. 민정은 부동산 아주머니가 꽤나 속물적이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 발언으로 인해 자기 자신도 이 집의 가치를 한 층 높게 평가하게 됐다는, 차마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의 이중성을 애써 외면하면서.


“이 지역 다른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반이 한 두개밖에 안 되는데, 여기 학교는 8개예요. 너무 크다고 뭐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한 두개보다는 훨씬 낫죠.”


이 지역의 신축 아파트 대단지가 다 이 학교 주변에 몰려 있으니 이 도시에서 이만한 학군이 없다는 게 부동산 아주머니의 설명이었다. 민정은 생각했다. 그래, 학교는 중요하지. 특히 6년을 다녀야 하는 초등학교는…. 그 뒤로 민정은 부동산 아주머니가 추천하는 아파트를 몇 군데 더 둘러봤다. 세대로 바로 연결되는 쾌적한 지하주차장, 빠른 엘리베이터, 살짝 높아진 층고, 벽면마다 들어차 있는 수납공간까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밑이 대피공간 필로티 층이라 층간소음 가해자가 될 걱정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즉 아이가 마음껏 뛰어도 된다는- 세대를 골라 계약하기로 하고, 그 뒤로 새 가구니 가전이니 구경 좀 하다가, 어느덧 이사 날짜가 되어 들어온 게 지금의 집이었다.


새 집에 이사온 날, 민정은 뿌듯한 마음으로 아이에게 선언했다.


“여기가 우리 새 집이야. 어때, 좋지?”

“내 방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

“아직 가구가 안 들어와서 그래. 책장 오면 깨끗해질 거야. 이전 집보다 좀 더 환하고 멋지지 않아?”

“모르겠어. 나 학교는 여기서 가까워?”


아이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새로운 집에 이사 왔다는 사실보다, 곧 입학하게 될 초등학교에 정신이 팔려 있는 듯했다. 엄청난 자금의 압박을 감수하고 아이들에게 번듯한 새 거주지를 제공한 민정의 입장에서는 살짝 아쉬운 반응이었다. 민정은 슬며시 딸에게 어필이 될 만한 내용을 꺼내 들었다.


“우리 집 밑에는 아무도 안 살아. 그래서 옛날 집에서처럼 까치발로 걷지 않아도 돼.”

“그러면 친구 초대해도 돼?”


이전 집에서 민정은 예민한 아랫집이 신경 쓰여 집에 아이 친구를 절대 초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아이는 그제서야 뛸 듯이 기뻐했다. 민정은 여기서는 초대할 친구가 없는데 어쩌지, 하는 걱정은 우선 마음 한 켠으로 미뤄두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아직 어린 나이니까 친구 정도야 금방 만들 거야….


민정이 이 곳으로 이사 오게 된 데에는, 신축 아파트라 살기 좋고, 입주 시작한 지 사 년이 지난 시점이라 움직이는 세대가 많아 타이밍이 적당했고, 이런 보통의 이유 말고도 차마 남들에게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아이 문제였다. 아니, 아이 문제로부터 비롯한 민정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아이는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뚜렷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또래 친구들 사이에 자연스레 녹아들지 못했다. 놀이터에서 또래 친구들에게 외면당하는 아이를 보며 민정씨는 가슴이 찢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비로소 깨우쳤다. 유치원에 전화를 해 보았지만 선생님의 지도 하에서는 모두 어울려 잘 논다는 상투적인 대답뿐이었다. 유치원을 옮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결국 집 앞 놀이터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은 변하지 않을 거였다. 더해졌으면 더해질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민정씨는 이사를 결심했고 그렇게 친정 근처의 구축 아파트를 떠나 지금의 신도시 신축 아파트로 오게 되었다.


부동산 아주머니의 임대주택 운운하는 속물적인 언사도, 옛날의 민정 같으면 편견에서 비롯한 차별이라 치부해 들은 척도 안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따돌림당하는 아이를 보며 민정은 그 원인을 아이에게서, 엄마인 자신에게서, 아이 친구들에게서, 그리고 그 친구들의 가정환경에서 찾고 또 찾았다. 우연인지, 정말 그래서인지, 그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맞벌이라 바빴다. 민정이 지금 이 상황의 부당함을 토로하려 해도 그 엄마들은 늘 관심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네 아이를 때린 것도 아니고, 욕을 한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빼앗아 간 것도 아닌데, 너는 왜 내 시간을 빼앗니, 이런 냉담한 시선을 마주하며 민정씨는 결론지었다. 일하는 엄마는 이래서 안 돼. 자식새끼 일에 관심이 코빼기도 없잖아. 자식 교우관계가 한낮 골치거리에 불과하다니, 돈 몇 푼 버는데 정신 팔려서 자식 농사가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도 모르는 한심한 작자들 같으니….


결국 이 집을, 이 학군을 고른 것도 그런 사정의 연장선상이었다. 그래, LH 애들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지. 애들 똑바로 키우는 집도 많을 거고. 하지만 세상의 편견이 괜히 생겼겠어? 경제적으로 아등바등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풍족하게 사는 사람들, 누가 더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까? 애들 교우관계에 신경 좀 써주려면 삶에 최소한의 여유는 있어야 할 거 아니야. 굳이 리스크를 감수할 건 없어. 내 일이라면 몰라도 내 자식 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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