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시간
올 봄은 날들이 스산하다 따뜻하고, 추웠다 다시 따듯해지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연의 때에 맞춰 활엽수들은 딱딱한 나뭇가지에서 여리디 여린 연둣빛 이파리를 피워 내고 그것들이 모여 신선하기 이를 데 없는 신록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봄의 나무를 바라보는 일은 눈이 시원해지고 마음이 여려지는 경험입니다. 새로 돋아난 순하고 어리고 앙증맞은 봄의 이파리들은 봄꽃의 화사함 만큼이나 아름답습니다.
지난 달에 동네를 산책하다가 자그마한 동네 공원에 만발한 영산홍과 자산홍을 보았습니다. 연보랏빛과 붉은빛을 띤 만개한 봄꽃들은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었습니다.
더구나 메타세콰이어나무에 돋아난 연둣빛 새이파리들과 목련꽃이 진 다음에 돋아난 목련나무의 신록이 봄꽃들의 화사함에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 인간이 세워둔 빨간색 구조물이 공원의 봄품경에 산뜻함을 불어 넣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공중전화 부스 모양의 빨간 구조물에는 책들이 들어 있어 작은 도서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화사한 봄꽃이 전경에 있고 정자와 작은 도서관 박스를 신록이 감싸고 있는 풍경이 마음에 들어와 수채화로 그려 보았습니다.
올봄은 살아가는 일의 팍팍함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하게 다가와 마음이 힘든 계절입니다. 경제의 어려움은 서민들의 숨퉁을 조여오고 자영업자인 우리 역시 그들 중 하나여서 불안과 조급함이 시도때도 없이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상황이 어려우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게 됩니다. 그래서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되는데 무모함이 젊은 시절에는 당찬 도전이 되기도 하지만 나이 먹은 지금의 무모함은 자칫 하다가 독이 될 수도 있겠다,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봄이지만 어려운 시절, 자연이 보여주는 색채의 향연에 위로받습니다. 마을 길마다 활짝 피어있는 영산홍의 화사함에 눈길을 한참 주고 연둣빛으로 갈아 입은 나무마다 싱그러운 빛깔에 위로를 받습니다.
연둣빛으로 싱그럽던 신록은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마다 녹색으로 청록으로 점점 깊이를 더해 갈 겁니다. 나무가 스스로 작용하는 힘도 있겠지만 햇빛과 바람과 대지의 작용으로 나뭇잎들은 점점 더 푸르러지겠지요.
인간의 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나 스스로 삶을 윤택하게 가꿔나가야 할 책임도 있지만 시대와 상황이 잘 작용해서 나아지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사회 제도를 잘 만들고 모두가 기본적인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계절이 지나가듯 어려움도 지나가 더 나아진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희망하며 봄의 신록이 지나가는 풍경을 그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