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드로잉
올여름 더위는 유난히 일찍 시작되었습니다. 너무 더워서 지쳐갈 즈음 너무 지나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뉴스에서는 100년, 200년 만에 쏟아진 극한 폭우라고 합니다.
여름에는 더운 게 자연스럽고 장마철엔 비 내리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이제 여름은 너무 덥고 장마철에는 너무 많은 비가 한꺼번에 쏟아져 연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인간 세상의 편리함이 발달할수록 자연현상은 점점 비정상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예전과는 다른 그런 징후들이 인류의 미래를 불안하고 걱정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숨 막힐 듯한 더위 속에서 초록은 무성해지고 작물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납니다. 뒷마당에 심어 놓은 고추며 가지, 호박이나 상추를 뜯어먹고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나무들은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가지를 뻗고 나뭇잎을 키우며 초록빛으로 진하게 물들어 갑니다. 커다란 여름나무 사이에서는 동네 폐가마저도 목가적으로 보입니다. 녹음 짙은 아름드리나무 아래 그림자 진 오래된 폐가의 지붕처럼 더위를 잠시 쉬어 가고 싶어 <우리 동네 여름 풍경>을 그려 보았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마당이 있는 가정집을 식당으로 리모델링해 맛있고 가성비 좋은 한식을 팔고 있는 집이 있습니다. 그 집 담벼락에는 오월에는 장미가 피고 칠월에는 능소화가 흐드러져 있곤 합니다.
더위가 기승을 부려 걷기에도 버거운 날씨지만 능소화를 보고 그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 집 앞을 가 보았습니다. 다행히 담장 위에서 능소화는 만발해 있었습니다.
능소화는 중국이 원산지로 금등화라고도 불리고 옛날 양반집 마당에 심었던 꽃이라 양반꽃이라고도 불린답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시절, 학교 건너편 문방구 옆 주택에 피어있는 능소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는 꽃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구경했는데 어린 눈에도 활짝 피어 있는 그 꽃이 점잖고 품위 있어 보였습니다.
너무 작지도 그렇다고 아주 크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꽃이 칙칙한 담장에 주황 빛깔로 만발해 있으면 주변을 환하게 밝혀 주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래서 능소화를 바라보고 그리는 일은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들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저 스치듯 보았지만 여름철마다 바라보았던 그 기억이 그림을 그리면서 추억이 되어 몽글몽글 피어오릅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능소화를 바라보게 만듭니다. 천진하고 순수한, 자연의 시간으로 돌아가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