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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 숲 Jan 25. 2022

고흐의 영혼이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

정직한 노동과 진실한 마음을 위하여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1885년 )

오두막은 작고 누추하다. 램프 불빛에 의지한 채 농부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감자와 커피를 먹고 있다. 하루의 고단한 노동을 마치고 온 가족들은 좀 지쳐 있지만 자신들이 땅에서 캐낸 오늘의 일용할 양식, 금방 쪄내 하얗게 김이 오르는 감자를 먹으려 다.  


1885년 4월 30일 자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고흐는 자신이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고흐는 그림에서 거친 수법과 과장된 표현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농부 가족의 얼굴과 손은 실제보다  더 크고 굵어 보인다. 거칠고 투박하고 과장되게 그림으로써 그들의 얼굴과 손을 주목하게 만든다. 그릇에 커피를 따르는 손, 감자를 집으려는 손들을 통해 그들이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한 노동의 대가로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함께 먹는 장면을 보여 준다. 노동으로 몸은 지쳐 있고  표정은 생기가 없지누군가를 속이거나 누군가를 이용하지 않고 가장 정직한 방법으로 어느 때는 자연의 척박함을 이겨내고 어느 때는  대지의 자애로움에 기대어 자신들의 피와 땀방울의 결과물인 감자를 먹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식사는 정직하고 진실하다.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도 말한다


"농부의 삶을 담은 그림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세련되게 그리는 것은 잘못이다. 농촌 그림이 베이컨, 연기, 찐 감자 냄새를 풍긴다고 해서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마구간 그림이 거름 때문에 악취를 풍긴다면 훌륭하다고 해야겠지. 바로 그게 마구간이니까. 밭에서 잘 익은 옥수수나 감자냄새, 비료냄새, 거름냄새가 난다면 지극히 건강한 것이지.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한테는 더욱 그렇지. 그런 그림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농촌생활을 다룬 그림에서 향수냄새가 나서는 안된다."


고흐는 사물의 본질에 직접 맞닥뜨리고 싶어 했다. 세상을 환상이나 가식, 허영이나 위선을 가지고 보고 표현하려 하지 않았다. 고흐가 나고 자란 19세기 네덜란드 농부들에게 하루하루의 은 힘들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것이 농민들의 현실이고 그림 속 농부 가족의 현재다. 고흐는 그들의 고단한 삶을 포장하지 않고 인물의 옷이나 모자, 표정이나 손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 누추하고 초라하고 빈곤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농부 가족의 얼굴에는 살아가는 일에 대한 깊은 고뇌가 있다. 운명을 피해 가지 않고 받아들여 맞닥뜨리는 체념 속의 강인함도 보인다. 그게 삶의 진실이라고... 고흐는 그런 방식으로 사물의 본질을 표현한다.


고흐는 그림을 통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사람들, 무시당하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본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고 역사를 살펴보고 지난 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보고 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 보며 어떻게 표현할지 무엇을 표현할지 고민하면서 그려 나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눈으로 보기 좋은 아름다움, 부드럽고 우아하고 세련되고 화려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거칠지만 정직한 노동으로 굵어진 손마디, 척박한 자연을 일구어 식량을 만들어내는 강인한 삶에 대한 의지, 진실된 눈빛, 고된 삶에 맞서는 용기와 같은, 보이지 않는 삶의 본질에 관계된 아름다움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토탄을 줍는 두 명의 농촌 여인 (1883년)
눈 속에서 땔감 모으는 사람들(1884년)
감자를 심고 있는 농촌 사람들(1885년)


겨울철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토탄을 줍고, 추위를 견디기 위해 땔감을 구하고, 땅을 파서 감자를 심는 사람들, 고흐는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연의 불친절함을 온몸으로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토탄을 줍기 위해 90도로 꺾인 허리와 추위를 견뎌야 하기에 추위를 무릅쓰고 무게 땔감을 지고 발걸음을 옮기는 지친 얼굴들, 감자를 심기 위하여 90도로 숙여진 몸을 그림으로써 살아가는 일에 대한 숙연함과 준엄함을 보여 준다.  


고흐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표현하기 위해 겨울 내내 그리고 또 그리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농부처럼 정직하고 농부처럼 진실된 그림을 그리기 해서 고흐는 농부처럼 힘들고 고단한 삶의 과정을 겪었다.


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간을 건너고 공간을 넘어서 나의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가족의 맏며느리로 재래식 부엌의 낮은 부뚜막에서 어깨를 숙이고 하는 일이 많아서 언젠가부터 어깨가 굽어졌다는 외할머니의 어깨가 생각난다. 그 몸으로 어려운 일을 다니시면서 대학 시절 나의 아침밥과 점심 도시락까지 싸 주시던 그 애씀이 기억된다.


한평생 농사일을 하다 돌아가신 시부모님떠오른다. 여름이면 당신들이 직접 기른 호박이며 감자를, 가을이면 당신들이 직접 재배한 쌀과 고춧가루를 주시던 생각이 난다. 동 준비로 아궁이에 불을 때기 위해 자그마한 체구에 살집도 없는 나이 든 몸으로 나무에 도끼질을 하시던 시아버님의 모습도 떠오른다.

 밭에서 당신들이 기른 배추와 총각무로 김장 김치며 동치미를 만들어 싸 주시던 시어머님 생각도 난다. 아삭거리던 배추김치와 시원하고 깔끔한 치미 국물, 탱글탱글하게 입 안에서 씹히던 동치미 무는 지금도 기억 속에서 그립다.

먹기 위해서 그리고 자식들에게 먹이기 위해서 나이 든 몸으로 쉬지 않고 일했을 그 마음과 정성이 생각난다.


결국 삶은 고되고 힘들지라도 정직한 노동과 진실한 마음은 시대를 초월하고 공간을 뛰어넘어 고흐의 그림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그리운 기억과 삶 속에서 언제나 구현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편지글 참조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예담)

그림 참조   : VAN GOGH (TASCH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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