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의중을 들여다보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 봅니다

by 홍고롱

한때 인물 잡지에서 인터뷰 기자를 했었다.
그 사람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지금의 자신이 되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듣다 보면,
“와,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 싶을 정도로 감탄하게 된다.
덕분에 얻은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짧은 만남 안에 인터뷰를 끝내야 하다 보니,

사람 자체보다 직업군에 집중하게 됐고,
언젠가부터 “아, 이 계열 사람은 보통 이런 스타일이지” 같은 결론을 습관처럼 내리고 있었다.

그걸 자각한 순간, 미련 없이 그만뒀다.
사람을 틀에 넣는 일은, 내 몫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나는 원래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은 편이다.
특히 진솔하고 순수한 모습을 간직한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된다.
그들이 가진 고유한 눈빛, 쑥스럽고 어색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미소 짓는 모습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은 내 장점이 “사람의 장점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나면, 될 수 있으면 좋은 점부터 보려 애썼다.
단점이 보이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부드럽게 덮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은 내 진심을 늘 곧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나는 그냥 잘 반응한 것뿐인데,
“쟨 누구든 다 좋아하잖아”라는 말이 돌아올 때면, 왠지 가볍게 소비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 후로는 좋아 보여도, 말은 조금 아끼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눈빛이 반짝이더라도,
그 말투가 귀엽더라도,
‘내가 이걸 지금 말해도 될까?’ 하는 망설임이 자꾸 들었다.


한때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에 “무해한 사람”이라고 답했더니,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해한 사람...? 그게 어떤 사람이에요?”


… 그러게. 나도 설명은 어렵다.
그냥, 떼가 덜 묻어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으며,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결론적으로는, 아이처럼 순수하고, 조심스러운 사람.




요즘 ‘경청이 중요하다’는 말,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거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게 중요하다는 유튜브 영상은 넘쳐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무 말에나 내 인내심을 바칠 수는 없다.
우리의 시간은, 생각보다 소중하니까.


나는 사실 말 돌리기의 달인이다.
상대가 지루한 이야기를 꺼내면,
스무스하게 화제를 전환하는 데 꽤 일가견이 있다.


예를 들어, 소개팅에서 전 남친 이야기 나오길래,
“아, 근데 MBTI 뭐세요?” 하고 휙 돌렸다.
아무도 눈치 못 챘다. 완벽한 전환이었다.


듣기 싫은 이야기가 나오면 내 관심사로 유도했고,
스몰토크용 소재는 항상 준비돼 있었다.

덕분에 어디서든 무난하게 어울릴 수 있었지만—

문제는, 쉽게 소비되고 만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정말 많이 스쳐갔고,
난 바빴고,
어느 순간 의미 없다고 느껴지면,
망설임 없이 그 세계를 떠났다.
과부하에 당할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요즘은 많은 사람과의 대화보다,
한 사람의 깊은 속내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이 훨씬 더 즐겁다.

눈을 맞추고, 상대의 템포에 맞춰 숨을 고르다 보면,
그 사람이 꽁꽁 싸매놓은 마음이
슬며시 얼굴을 내민다.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누군가 조용히 촛불 하나를 켠 것처럼.
작지만 선명하게, 그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예전엔 그런 장면이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누구에게든, 그런 면은 있다.
결국 문제는, 내가 그걸 보려 하지 않았던 거였다.


게다가,
내가 기술적으로 접근한 대화는 상대도 다 느끼고 있었다.
“리액션에 영혼 좀 넣어줄래?”라는 말,
솔직히 여러 번 들었다.


결국은,

내가 얼마나 들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그 사람을 바라봤는지가 더 중요했다.


친구의 수가 20대 때와 30대 때가 다르다고들 하잖나.
정말 그렇다.
급격히 줄었지만, 그만큼 관계는 깊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나를 조금만 덜어내면,
그 사이를 상대의 진심으로 채울 수 있다는 걸.


그렇게,
진짜 관계는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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