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긴 뭘 덜어내! 아무렇게나 살아.

휘청거림의 미학

by 홍고롱


덜어내고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도 되뇌고

글로 옮겨도 보고.


그럼 뭘 해

인생은 여전히 문제 투성이다.

내가 이끄는 대로 따라오지도 않고,


생각지도 못한 난제들은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폭탄처럼 투하된다.


그리고 나는 미친 듯이 휘청인다.

"그건 제가 예상치 못한 부분인데요?"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덜어내고 내려놓고 비우겠다고 다짐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미친 듯이 요동치는 미국 주식 시장에 도파민이 터지기도 하고

유심이며, 숙소 찾기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따지고 싶어 진다.(하지만 누구에게?)


아니 선생님,

저 그래도 이제 어느 정도는 제 감정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입이 닳도록 말하고 다녔는데요,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그렇게 열변을 토하다 보면,

결국은 체념에 이른다.


그래,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냥 잘 해결해 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다.


산도르 마라이의 '하늘과 땅'



[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
불멸의 신(神)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
내 영혼 안에는 인도(印度)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
한 번은 카페에서 술 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
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
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孔子)의 형제지만
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내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
나는 숲 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
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임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리고 사랑을 믿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인들과 함께 지낸다.
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인 탓에 하늘과 땅을 믿는다.

아멘




인간은 모순적이지 않기가 어렵다.

상황은 매 순간 달라지고,

이성과 본능은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도대체 내가 문제인지,

문제가 나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나를 문득 발견한다.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대우해주지 않아 리뷰를 험상궂게 달기도 하고,

다른 사람보다 더 나를 사랑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겉으론 그럴듯하게 굴지만, 속은 여전히 못난 티를 낸다.


이런 나를 마주 보는 게 싫었다.

꾸밈없는 내 모습은, 그야말로 새옹지마의 표본.


더 여유로운 사람이고 싶고, 더 너그럽고 싶은데

녹록지 않은 현실.

다정하게 말 한마디 더 건네고, 눈 마주치면 미소 짓고 싶은데


급격한 에너지 고갈과

아직은 표현하는 게 부끄러운 마냥 어린이.


이게 나다.

그리고 방콕에 오기 전후로, 그걸 더 절실히 느꼈다.


유심 안 터지고, 숙소 못 찾아 좌절하는 나를 보며,


아.. 나 별반 달라진 게 없네

그대로다

그래 이래야 '나'지


감정 컨트롤은 아무나 하는 거냐며,

그냥 되는대로 또 살자.

가면을 벗어던지자.




그리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창밖 뷰가 왜 이리 좋은지.

잠으로 지친 몸이 완화되고,

마사지사님의 다정한 손길이 내 몸을 감싸주니,

다시 잘 정돈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사람이란 게 이렇게 단순하다.

현실에 감정이 짓눌릴 것 같다가도,

금방 또 살아난다.

기분을 끌어올릴 것들 몇 가지만 있으면 된다.


내게는 그게 운동이고, 음식이고, 글이다.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대단할 건 없어도,

아침에 몸을 일으켜 땀 흘리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나고,

정성껏 차린 음식을 내게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거기에 글까지 쓰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래서 관광객 모드는 포기하고,

아침 운동 후 커피 마시며 글 쓰고 있는 중이다.

오롯이, 내 기분을 위해서.




나이 탓도 있겠지만,

예전처럼 불태워 놀고 싶어도

이젠 체력이 말을 듣지 않는다.


태국 시간 밤 10시 반이면

하품과 함께 귀가 본능이 발동한다.


이런 나도 받아 들면서,

엄청난 일들이 나한테 또 몰려와도

뭐 어쩌겠냐며,

그냥 휘청거려야지.


그리고 다시 마음 가다듬고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조금씩 걸어가면 된다.


내가 추구하는 결만 있다면,

인생 뭐 있나.

되는대로 살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