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말입니다.

가혹한 눈을 따뜻하게 식혀 봐요

by 홍고롱



오늘따라 날씨가 왜 이리 좋은지,

황금연휴를 맞아 많은 가족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완벽한 날에 혼자 남겨져,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달래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나.

그런 마음 덕분에, 이렇게 또 글을 쓰고 있다.

(나의 만족감을 채워 줄 단 하나의 행복 : 글쓰기)




우리는 참 많은 사람을 스쳐 간다.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직장에서, 소개팅에서… 그리고 모임에서.


그래서일까. 사람 만나는 일이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매번 ‘시절인연’이란 말을 꺼내게 된다.


그만큼 한 존재와 존재가 만나는 우연이

아주 쉬우면서도 어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간단하게 모임을 떠올려보자.

특히 모임이라는 공간에서 사람은, 아주 빠르게 스캔당한다.


신입이 들어오면

나이, 직업, MBTI, 눈빛의 밀도까지 빠르게 분석한다.

경계태세 모드 ON. 인간 버전 보안검색대랄까.



나 역시 그랬다.

작년 2월, ‘앙가주망’이라는 이름의 대화 모임을 만들었고

올해 3월, 탈진하며 조용히 닫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났다.


목적은 고상했다.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한 자기 성장”


하지만 현실은
“깊이 있는 개성 충돌을 통한 사회생활 PTSD”였다.

어떤 분은 말이 너무 많았고,

어떤 분은 결혼 상대를 찾으러 왔으며,

어떤 분은... 글쎄, 거의 싸움닭 수준이었다.


나는 밤마다 생각했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그리고 곧 행동했다.

“죄송하지만, 퇴장 부탁드립니다.”
그 시절 내 손에는 퇴장권이 너무 많았다. 여름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올 초에 몇몇 분이 연락이 와서,

그들과 다시 만났다.


그런데 이상하다.
너무 재밌고 유쾌한 거다.
그때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뭐지?


내가 문제였나.
그들이 문제였나.
아니면 그냥, 우리가 너무 감정적 허기짐에 시달렸던 걸까.


결론은 모르겠다.
다만 감만 조금 올뿐이다.


그때의 우리는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지금 보니, 조금 더 성장해 있었다.




요즘은 일반인이 방송에 나오는 일이 많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평가하는 데 푹 빠져 있다.


‘나는솔로’만 봐도 그렇다.
“영수는 또 왜 저래?”
“옥순이는 왜 저런 말을 해?”
카톡보다 더 빠르게 타인을 해석하는 이 시대.


인간 군상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은 동떨어진 세상에 사는 것처럼

사람들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본 주변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 것만 봐서 결혼 못 하는 거야.”

(나름 팩트라 반박 불가)


그런데 이상하게,

그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문득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처음엔 “와, 저런 사람도 있네?” 하다가

그 속에 비춰진 나를 보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번외로, 예전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다.
결혼 이야기가 오갈 정도로 가까웠던 사람.

나는 그의 직업이 멋져 보여 그걸 놓지 않길 바랐고,
그는 그 직업이 지긋지긋해서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했다.

나는 말했다.
“가장이 되려면, 책임감이 있어야지.”
지금 생각하면, 내가 성숙하지 못했다.

우린 결국 헤어졌고,
나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나도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면서, 왜 그렇게 내몰았을까.




사람은, 스스로 느껴야 움직인다.
아무리 옆에서 잔소리를 해도
내 안의 시간이 무르익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다.

그리고,
누구도 타인을 사지로 몰 권리는 없다.


내가 행복하고 싶은 만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도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지만,
자신의 실수는 잘 감싸면서,
남의 실수에는 유독 민감하다.


“쟤는 원래 그래.”
“그 사람은 예전에 그랬잖아.”


고착화된 시선으로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에게도 가혹할뿐더러, 나조차도 달라지는 게 없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마음이 조금 평온해지면
타인을 바라보는 눈도 부드러워진다.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그때의 내가 지금과 다르듯 말이다.


이제는

사람을 재단하기보다는,
조금 더 좋은 쪽으로 안내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꼭 거창한 게 아니어도 된다.


잘 들여다봐 주며,
충고보다는 기다림으로.


30대 초반까지의 나를 본 사람이라면
지금의 나를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그땐 정말… 럭비공이었다.
어디로 튈지 몰랐고,
심지어 공이 튀는 방향을 나도 몰랐다.


그런 내가 이렇게 글을 쓰며 돌아보는 걸 보면,
진짜 사람은 변하긴 변한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갖고 싶다.


나는 역시나 거시사보다 미시사가 좋다.

소소한 것들이 모여 세상을 밝힌다고 믿는다.




이상, 평가 대신 관찰을 연습 중인 한 사람의 소심한 다짐이었다.

오늘도 나를 먼저 내려놓고,

조금 더 따뜻하게, 조금 덜 가혹하게.

그러면 언젠가는

나도, 타인도 조금 더 환해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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