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내 맘대로 되면 재미없지

여행으로 보는 우당탕탕 인생

by 홍고롱

나는 지극히도 P형 성격이다.
계획도 잘 안 짜지만, 짠다 한들 그대로 흘러가는 법은 거의 없었다.

내 인생의 계획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여행을 가면 그 성향이 폭발했다.




프랑스에 1년 정도 있었던 나는,
안일한 마음으로 사촌동생과 유럽 여행을 계획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의 원성을 사도 할 말이 하나도 없지만,
그때의 나는 어린 패기로

"세 나라만 돌고, 오래 머물자!"며 주장했다.

(빠듯하게 이곳저곳 찍고 다니는 여행은 나에게 여행이 아니었다.)

게다가 프랑스 은행 계좌가 있다는 이유로
모든 여행경비를 내 계좌에 모으자고 제안했다.
(수수료 아낀다며!)




그렇게 여행이 시작됐다.


파리에서 런던으로 넘어가던 날,

전날 새벽까지 한인 민박에서 제공하는 와인을 마시던 나는

늦잠을 자고,

오페라 역 앞에서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했으며,

런던행 비행기를 놓쳤다.


그뿐이면 좋으련만.

런던에 도착해 돈을 찾으려 했더니,

학생 계좌라 출금이 막혀 있었다.


차비도 없어 사촌동생을 약속에 보내고,

나는 혼자 숙소까지 걸어가며 내 신세를 곱씹었다.


로마에 가서도 여전히 돈을 못 찾아
리옹에 있는 친구를 통해 은행 담당자에게 겨우겨우 전화 연결,
계좌를 풀 수 있었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넘어갈 때도,
"시간 많다"며 '짝'을 보다가,
기차시간을 착각해 열차를 놓쳤다.


그때는 매 순간 좌절의 연속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일들만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혼자 리옹에서 지내던 시절만 생각해도 웃픈 에피소드가 한가득이다.

비행기값을 아끼겠다고 경유를 두 번이나 해서 갔더니,
오스트리아 공항에서 노숙을 해야 했고,


튼튼한 위장을 믿었건만, 변비에 걸려 고생하며
'변비'라는 프랑스어를 열심히 찾아 까먹을까 되뇌며,

약국을 찾아야 했다.


어학원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는
크루즈에서 칵테일을 다섯 잔이나 마시고,
"각자 계산입니다."이라는 말에 뒤늦게 당황하기도 했고,


광장에서 만난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갔더니,
벽에 여성들의 누드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어
숨 막히게 웃으며 빠르게 나왔다.


이렇게 한 줄로 말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하면,

이런 이야기들은 굳이 꺼낼 일도 없으니까.



20대 초반,

나는 약속을 잘 지키지 못했고,
타인을 대하는 법도 몰랐다.

맨땅에 헤딩하며 배웠다.


"아, 이런 건 하면 안 되는구나."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조금씩, 나만의 방법을 터득해 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관념이 없으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j형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다툼이 생긴다'는 것도 배웠다.


게다가 SNS가 발달하면서,

친구들의 멋진 여행 사진을 보며

욕심이 덕지덕지 붙기 시작했다.


더 좋은 곳에 가야 해.

실패 없는 맛집을 찾아야지.

멋진 인증샷은 필수.


원래 나는
한 도시에서 오래 머물며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카페에 앉아 구경하는 걸 좋아했는데,


'가야 할 곳' 리스트가 늘어나고,
평점을 검색하고, 웨이팅에 예민해지며,
사람이 많으면 투덜거리는 내가 되어 있었다.


바쁘고 전전긍긍하는 여행.
원래 좋아하던 여행과는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후쿠오카 여행에서 하루 5끼를 시전 하고,
오타이산(소화제)까지 먹으며 위장을 단련하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 혼자도 괜찮겠다.'


작년에 혼자 후쿠오카로 떠났다.

혼자였기에 모든 걸 내 선택대로 할 수 있었고,
현지 사람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혼자였기에 느낄 수 있었던 자유와 친밀감.

혼자 걷던 거리, 스쳐간 바람이
오래도록 잔상처럼 남았다.




(여행 이야기는 따로 조금 더 자세히 적어두었어요. 혹시 궁금하다면 조심스레 아래에 남겨둡니다.)

https://blog.naver.com/rachel_hong12/223422320295

https://blog.naver.com/rachel_hong12/223425733931



그리고 현재.


SNS를 정리했다.

누가 어디를 갔는지, 어디가 핫플인지
그런 정보들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자 정말 신선한 일상이 찾아왔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재밌고,

우연히 발견한 맛집에 희열을 느낀다.

화면 속 세상이 아니라,
진짜 내 삶을 살아가는 느낌.

기막힌 이점이다.



물론 단점도 있다.

'맛잘알'이던 나는 가게가 폐점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가게에 갔다가 문 닫은 걸 보고 아쉬워하기 있기 없기..

(정말 맛있었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그래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안 되면 옆 가게 가면 되고, 실패해도 괜찮다.

우당탕탕이든 오동통통이든,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면 되는 거니까.




그래서 이번 방콕 여행.

일주일 남았지만,
아직 비행기 티켓밖에 끊지 않았다.

전에 한 번 가본 곳이기도 하고,
그때 느꼈던 방콕 사람들의 친절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2일 동안, 무일정.
그때그때 마음 가는 대로.
어떤 변수가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만큼 자유로운 적도 없다.


깨알 같은 계획을 던져버리고,

내 맘대로 만들어 갈 거다.

내 인생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거다.


오동통통 플랜으로 채워나가야지!

할 수 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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