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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도 즐겁게

당신의 오늘이 나들이 같기를

by 강유랑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살리라.

이거저거 복잡한 마음일랑 저만치 던져두고,

불어오는 바람을 가슴 열고 가만히 맞으며,

좋아하는 이들의 웃음소리 가득히 담고,

본 적 없는 이에게도 밝은 소리로 인사하는,

그렇게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살리라.


‘나들이’라는 단어가 참 좋습니다. 소풍은 참 많은 것이 떠오르게 합니다. 먼저 소풍 가기 전날 그리운 학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단짝 친구와 같이 앉아 가려고 소란스러워진 교실, 무슨 이야기 하며 갈지 도시락은 뭘 챙길지 왁자지껄한 교실의 모습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입니다. 지금은 모양이 많이 달라진 팬더 모양 음료수도 떠오릅니다. 정말이지 몇 번이고 먹고 싶은 유혹을 참아가다 보면 어느새 밤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잠은 또 왜 이렇게 안 오는지. 계속 뒤척이다 억지로 잠시 잠에 들었는데, 새벽부터 요리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당근이 잔뜩 들어간 주황색 주먹밥. 야채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 주먹밥은 참 맛있었습니다. 비결을 여쭤보니 당근도, 양파도 들어가지만, 감자와 햄도 엄청나게 들어갔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떠난 소풍은 언제나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가평으로, 제주도로 떠난 적이 있습니다. 학군단 시절 만난 친구들과 지하철을 타고 떠난 가평,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떠난 제주도. 그 두 여행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입니다. ‘자동차’가 없는 여행이었거든요. 지금은 얼마나 훌쩍 컸는지 그때 여행 간 친구들의 반 이상이 차를 타고 다니고, 저만해도 전국 곳곳을 차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근데 그때는 겁도 없이 자동차 없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평의 깊숙한 곳에 있는 숙소를 찾아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여기 내려달라는 말이 뭐가 그리도 어려운지 간신히 이야기해 숙소 근처에 잠시 세워주셨던 버스 기사 아저씨도. 차도 없는 것들(?)이 제주도 큰지 모르고 성산에서 중문에 이르는 커다란 여행 계획을 세웠던 것도.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는 추억이 되었지요. 이 두 여행이 즐거웠던 것은 차도, 돈도, 아무것도 없어도 서로가 있기에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죠.

‘신의 한 수’라는 바둑을 빙자한 액션 영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와 좋아하는 영화인데요. 그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이 세상이 고수에게는 놀이터요, 하수에게는 생지옥이 아닌가?’. 복수도, 액션도 화려하고 강렬했지만, 시간이 지난 남는 것은 이 대사 한 줄인 것을 보면 글이라는 게 참 대단합니다. 어쨌거나 이 대사를 곱씹을수록 나는 하수인가 고수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대학 시절 저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누구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다 절망감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다 떠난 여행에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가 되어서야 조금은 즐겁게, 조금은 가볍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하수의 그 생지옥으로 들어가 하루하루를 버티며, 다른 이들에게 우스워 보이지 않게 냉대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를 버리며 살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문제로 마음이 복잡한 정말로 하수가 돼버린 어느 날들 중에, 한 아이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하랠루야, 선생님 잘 개시죠?’ 맞춤법도 다 틀린 그 문자가 얼마나 귀엽던지요. 어른들을 어려워하는 저는 명절에나 한번 보내는 문자를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그냥 제 생각이 나 보냈답니다. 그 따뜻한 문자처럼, 요즈음 주변에 모르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봅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건넬 때면, 나들이를 떠난 좋은 기분을 느낍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는 어떠한 비밀도 말할 수 있다는 것처럼, 좋은 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을. 그저 불어오는 바람에 한없는 감사를.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했던 그 즐거움으로 이제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고수가 되려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들이 가는 마음으로 그 설렘으로 사는 것이 즐거우니까요.


‘당신의 오늘이 나들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세상 가장 귀한 당신의 손에 강유랑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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