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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멧새 2 06화

그림자 발자국

by 최연수

공룡은 잘 나서

만만년 까딱없는

바위 위에다,


갈매기는

파도치면 지워지는

모래톱 위에다,


소금쟁이는

바람 일면 흔들리는

연못 위에다,


강아지는

해 뜨면 녹아버린

눈밭 위에다,


저렇게도

남기고 싶은

발자국 발자국 발자국.


해는 서산에 댕그랗게 걸리고

땅거미가 잠자리를 펴는데,

그림자는 언제 어디다

제 발자국을 남기랴.


* ‘그림자의 발자국(1)’에 게재(揭載)




떠나간 분들의 발자국을 보면서, 나도 뒤를 돌아본다. 내가 남긴 발자국은 무엇인가? 잠깐 왔다간 흔적이 무덤인가? 비석(碑石)인가? 아니면 영정(影幀)인가? 흙으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면 그나마도 흔적은 없다. 자손(子孫)들에게 넘겨줄만한 유산(遺産)이나 유업(遺業)도 없다. 신앙(信仰)만을 상속하고 싶은데, 주변(周邊)을 둘러보면 이것도 확실한 보장(保障)이 있는 건 아니다.

뒤를 돌보는 것은 늙었다는 증거(證據)이다. 젊은 시절에는 앞을 보고 뛰기도 바쁜데 언제 뒤를 돌아볼 새나 있는가? 회갑(回甲)을 지나면서부터 깊은 구석에서 자고 있는 일기장(日記帳)을 깨워, 읽어보는 일이 잦았다. 시시콜콜하고 자질구레한 일들....그러나 눈물을 찍어서 쓴 일기, 기름땀이 밴 일기, 드문드문 핏자국까지도 남아 있는 일기...이제는 없애고 정리(整理)할 때가 되었는데, 그러기에는 또 아쉬워 책으로 엮었다. 자서전(自敍傳)이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 회고록(回顧錄)이라 하여, 현제 2권을 썼다. ‘그림자의 발자국’이라 이름으로.

실체(實體)도 아닌 그림자가 무슨 발자국을 남기랴. 그러나 발자국을 남겼으니 그림자는 멀지 않아 사라지겠지만, 희미하나마 남아 있겠지.

회고록(1)(2)를 비롯해서 스무 권의 책을 엮었다. 이 글로 돈을 벌기는커녕, 문밖에 나가지 않고 햇빛도 쬐지 못한 채, 그늘에서 곰팡이만 피었는데, 무슨 읽을거리라고.....

너희들 날마다 먹고 살기에 바쁜데, 어느 틈에 꺼내어 보기나 하겠니? 어쩌다 생각이 나면 읽어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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