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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Jan 24. 2024

이쁜 쓰레기는 이제 그만

지름신의 축복이 깃든 맥시멀 세상

소비 부추기는 사회


스마트폰, 티브이, DM, 전광판 등 시선이 잠시라도 머무는 곳이라면 우리는 어김없이 광고를 보며 살고 있다. 매일 새로운 기능이 탑재된 신상품과 세련된 인테리어 제품, 오감을 자극하는 소품들이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SNS에서 지인들의 해외여행 사진, 유명 셀럽들의 최고급 외제 차와 명품 가방을 보면서 나 빼고 다 잘살고 있는 것 같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돈 있는 사람만 쇼핑하는 시대는 아니다. 가벼운 주머니마저 털어 가려는 기업이 도처에 있다. 직장 다닐 때 점심 먹고 오는 길에 팀원들이랑 다이소에서 가끔 쇼핑을 했었다. 만원으로 아이템 2~3개쯤은 살 수 있는 그곳은 현실 직장인에게 일터에서 빠져나오는 해방구 같은 거였다. '억만장자처럼 쇼핑하라'의 테무(Temu), '남다른 직구'의 알리 익스프레스(AliExpress)와 같은 글로벌 이커머스 회사들은 불경기에도 판매실적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익일 배송까지 일사천리로 구매를 돕는 시스템도 한몫한다. 소비자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기업 마케팅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 알고리즘이 나의 취향까지 저격하며 지름신의 축복이 깃든 땅, 맥시멀 세상으로 안착하게 도와준다. 카드 명세서를 보며 소비 습관과 낭비벽에 대해 잠시 반성하다가도 다시 카드를 긁어가며 오늘도 행복한 소비생활을 이어간다. 




오랜 덕질의 역사


어린 시절, 부잣집 친구의 마론인형을 보고 단식투쟁 끝에 9등신 서양 미녀를 닮은 인형을 손에 넣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했다. 중학생이 되고는 멋진 연예인 사진이 있는 책받침을 사며 자랑을 하고 고등학교 때는 좋아하는 가수의 엘피판을 사서 모았다.


액세서리, 구두, 가방 등 어른이 돼도 덕질은 끝나지 않았다. 작년 그림을 배우며 물감, 붓, 드로잉북, 이젤과 같은 그림 도구들을 사들였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전문가나 사용할 법한 화방 제품을 구매했다. 전시 보고 뮤지엄숍에서 여행 가면 기념품 가계에서 한두 개씩 물건들을 집으로 들고 왔다. 


예쁜 쓰레기, 텅장, 탕진잼, 티끌 모아 티끌, 인싸템, 플렉스, 소소잼 등 소비문화에 부합하는 신조어들이 SNS에서 유행하고 있다. 쓸모는 없지만 살 수밖에 없는 마력의 제품들은 가격이 착해 기분 전환용으로 그만이다. 무료함을 달래주고 현실 세계를 잊게 해 준 예쁜 쓰레기는 이쁜 것 자체로 쓸모를 다 했기 때문에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이 정도 작은 사치는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다.               

 



원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김경일 심리학 교수가 딸이 놀이동산에서 풍선을 사달라 졸라 사줬더니 10분 만에 날려 보낸 이야기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화가 나 딸을 혼내고 집에 와 사진을 보니 딸의 행동을 이해하게 됐다. 풍선을 산 장소에서 아이들이 모두 풍선을 가지고 있었지만, 풍선을 버린 장소에서는 풍선을 가진 아이가 없었다고 한다. 딸은 풍선을 원했지만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원하는 걸 사고도 처박아 두는 이유가 물건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니 좀 놀라웠지만 맞는 말 같다. 연초에 눈이 내린 겨울 산을 가고 싶어 아이젠을 찾았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언젠가 쓰겠지'라며 모아둔 물품을 뒤죽박죽 쟁여 놓다 보니 정작 사용해야 할 때 못 쓴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오래된 박스 두 개를 정리하고도 아이젠의 행방은 끝내 알 수가 없다. 끊임없이 물건이 쌓인다면 좋아하는 물건을 소유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젠은 못 찾았지만, 미니멀라이프의 원칙을 만들었다. 물건을 바로 찾아 사용할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는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시선을 내면의 상태로 돌리기 위해서는 신경 쓰이는 것들이 적어야 한다. 하루 일을 끝내고 편히 쉴 수 있는 집,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진짜 좋은 것만 두는 간소한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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