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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14. 2024

당신의 공간에는 누가 사는가?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거기가 나의 공간이다

공간의 주인 


한 번은 지인이 새 아파트로 이사해 집구경을 갔었다. 거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여행하며 수집한 여러 나라의 인형이 빼곡하게 채워진 거실 장이 눈에 들어왔다. 지인은 새로 산 값비싼 가구와 소파, TV가 어디 브랜드며 가격이 얼마인지 은근히 자랑했다. 침실 방에는 커다란 침대와 운동기구로 발 디디기 힘들 정도였고 작은방에도 드럼, 도자기, 꽃병, 모던한 의자가 겹겹이 쌓여 있어 흡사 물류창고 같았다. 값비싼 물건들이 의기양양해 있는 모양을 보며 이 집에 누가 살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살면서 이사를 자주 다닌 편이 아니다. 오랜 기간 시댁에서 살다 보니 주체적으로 물건을 정리하지 못하고 시부모님의 의사결정을 따랐다. 그러다 6년 전 시집오고 처음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하고 맞이한 첫날 아침, 햇빛을 머금은 폭신하고 깨끗한 침구,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 잘 정돈된 집에서 맞이한 아침 풍경이 낯설었다. 깨끗하고 넓은 공간이 내 집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 어색했지만, 이 집에선 무엇이든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채워지지 않은 그릇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여력이 있듯이 여백이 많은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사 와서 몇 년이 지나고 살금살금 물건들이 다시 쌓여갔다. 이번 설에도 대청소를 남편과 하루 종일 했다. 장과 박스, 가방 속 구석구석 숨어있는 물건을 끄집어 정리하며 버렸다. 오래된 졸업앨범, 학위기, 감사패와 같은 가족들의 소중한 물건이라 버리기 힘들어 고민 중인 물건이 두 박스나 있었다. 설에 시누이와 시 동생에게 돌려줬더니 처분하지, 그랬냐며 어색해하며 가져갔다. 30년을 넘게 끌고 다니던 물건을 이제야 정리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내 삶을 좁혀온 물건들을 이제는 망설이지 말고 집에서 내보낼 작정이다. 소중한 것들이 많아 취급을 못 받는다면 이제 처리해야 한다. 팔목도 아프고 에너지를 너무 써 밥 해 먹을 힘도 없이 앓아 누어버렸다. 



여백은 언제나 옳다


3년 전 택시를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는데 기사님이 혹시 미술관에 근무하냐며 말을 걸어왔다. 좁은 택시 안에서 종일 운전하다 미술관에 가면 마음이 편해 전시 보러 자주 온다며 활짝 웃었다. 미술관은 어떻게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공간이 되었을까? 전시실에는 그림과 공간만 있을 뿐이다. 그는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는 공간에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말했던 것 같다.

이것저것 잔뜩 있는 곳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면 제대로 관람할 수가 없다. 이사 갔을 때는 미술관 같았던 내 집도 시선을 빼앗기는 물건들이 들어차 온전히 삶에 집중하기 힘들다. 


내 공간을 처음으로 가졌을 때는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6명의 식구가 방 2개에서 살다 보니 내방이랄 게 없이 4남매가 한방에서 생활했었다. 고학년이 된 나를 위해 엄마는 다락방을 내어주었다. 다락방에 쌓인 먼지를 털고 늘 그곳에서 지냈다. 아무것도 없는 작고 허름한 다락방으로 친구들을 초대하고 하루 종일 내려오질 않았던 기억이 난다. 행복한 집은 지인의 아파트처럼  값비싼 인테리어나 마감재, 조명, 가구가 아니라 편안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면 된다.



삶을 담는 단순한 공간


미술관은 그림이 돋보일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충분한 것처럼 나의 삶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집이어야 한다. 공간은 소유할 때만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림을 감상하고 싶으면 미술관에 가면 된다. 루브르 박물관이나 멋진 커피숍, 아름다운 정원이 내 집 안에 있을 필요는 없다. 모든 것을 집에 두면 물류창고지 집이 아니다. 그래서 집은 하얀 도화지 같은 공간으로 두고 싶다.

 

좋은 집이란 가장 심플한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 집은 비록 오래된 아파트지만 오전부터 오후까지 햇빛이 가득한 집이라 좋다. 자연 채광을 받으며 빨래를 개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 물건을 정리해 글 쓰는 공간을 만드니 마음에도 넉넉한 공간이 생겼다. 내 집은 취향과 관심이 구현되는 곳이 되도록 만들 생각이다. 하루 종일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말이다. 

 

비 오는 날 우산을 펴면 그곳이 내 공간이 된다. 산에 텐트 하나만 쳐도 더없이 멋진 공간이 된다. 공원에 돗자리 하나만 깔면 쉼터가 된다. 채우지 않아도 계속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거기가 나만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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