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희 Jan 31. 2024

생각이 많아 삶이 복잡할 때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강한 바람이 부는 날에 풀잎이 되고


나의 미니멀라이프는 마음에도 여유 공간을 만들며 단순한 삶을 사는 거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1년 전 퇴직하고 한동안 힘들어 잠을 못 이룬 적이 있었다. 마음이 힘들면 몸도 아픈지 두통과 소화불량도 심했다. 불쾌한 찌꺼기들이 잔상처럼 쌓여 벌통을 들쑤셔 놓은 것처럼 머릿속은 난리법석이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자 하면 코끼리만 떠오르고 다이어트를 하면 먹을 거만 생각나는 것처럼 잊고 싶은 기억은 또렷했다. 안 좋은 생각이 되새김질 되며 퇴직 이후까지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불안은 위험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알려 주는 “마음의 경계경보”라고 한다.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늘 주위를 경계하여 불을 피우고 무기를 만들며 야생에서 살아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DNA 안에 불안과 걱정이 내재되어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소공포증이 없다면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칠 수도 있고 불안한 마음이 없다면 시험공부는 하지 않았을 거다. 직장에서 원칙 있는 삶을 살아 내기 위해 방어기제로 자주 '불안'이 엄습했던 것 같다.


상처에 딱지가 생겨 떼어내면 아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불안한 마음이나 생각은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한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몸과 마음의 상처도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하더니 일 년 동안 직장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더니 좀 편해졌다. 소식을 접하면 여전히 짜증이 올라와 가급적 불필요한 정보를 갖지 않으려 동료들도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 우리가 살다가 강한 바람과 마주하게 되면, 풀잎이 되어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한다. 다음날 밤새 나를 흔들던 바람도 사라지고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생각이 많은 날엔 걷고


지난주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하루 종일 걷기가 전부일 때가 많다. 햇살이 넘어가는 저녁 무렵 경포 앞바다를 걸었다. 끝없이 이어진 코발트색 바다를 보며 나는 드넓은 바다가 된 것 같다. 해를 등지고 걷다 보니 어느새 어두워진 밤바다에 파도 소리만 침묵 속에 간간이 들릴 뿐이다. 겨울 바다는 묘하게 시간이 정지된 것 같다. 번잡했던 상념들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달빛만 고요하다.


생각이 많아져 힘들 땐 무조건 걸어 보았다. 걷기처럼 사람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한 걸음도 떼지 못할 것 같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걷기만 하면 된다. 동이 트는 도시에서, 새소리 들리는 산길에서, 고요한 바닷가에서, 바람 따라 강가를 걸었다. 호흡에 집중하면서 올라오는 생각들을 다독이며 붙들고 있던 미움과 불안을 이제는 저 길로 보내 준다. 



치유받고 싶은 날엔 그림을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나를 힘들게 한 일들을 겪고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운동, 그림 그리기, 독서, 글쓰기 등 취미 활동을 했다. 여러 가지 취미 중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 힐링에 좋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일주일에 두 번의 수업 시간, 오후에 시작해 해가 져 어둑어둑해지는 줄도 모르고 집중하며 그린다.


"그림의 힘" 저자 김수현 교수는 19세기와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평균 수명을 조사한 결과 일반인보다 20년 이상 오래 사는 것으로 나왔다고 말한다. 화가들은 창작활동을 통해 도파민이 대량 분비되어 좌뇌와 우뇌가 고루 발달하며 스트레스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그림을 그리고 좋은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치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멕시코의 유명한 여류 화가인 프리다 칼로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고 학교 다니면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때까지 32번의 수술을 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 디아고의 바람으로 몸과 마음이 고통 속에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녀는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자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녀만의 방식이 그림이었던 것 같다. 지금 마음이 힘들고 지쳤다면 그림을 그려 보는 것도 좋다.


망각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축복이라고 한다. 고통이 있다면 언젠가 잊게 될 거고 상처가 생기면 언가 아물게 되어 있다. 과거나 알 수도 없는 미래 불안감으로 오늘까지 망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걱정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일어나지 않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전 02화 이쁜 쓰레기는 이제 그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