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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Jan 17. 2024

올해도 시작해 본다

미니멀 리스트 재도전기

많이 가지면 행복할까?


많은 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하나 사 모으며 살림살이를 늘려가는 것이 잘 사는 거라 여겼다. 착실히 벌어 재산을 늘리면 행복의 크기도 커진다고 생각했다. 남이 가진 거를 나도 갖게 되면서 행복을 얻었다고 믿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상처받았을 때,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마다 뭔가 나에게 주고 싶었다. 보상이란 이름으로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은 빈자리처럼 늘 결핍의 상태로 존재했다.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사하고 처음엔 기뻤지만, 기쁨도 곧 시들해지면서 새집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다. 늘리고 채워나가는 게 인생인 것처럼 살아왔다. 당연히 가진 게 많으면 신경 쓸 게 많아 퇴근해도 집에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쉼이 없는 삶을 살아 내는 기분이었다.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갑작스럽게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우울한 마음에 온라인 쇼핑을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소유로 잠시 우울한 상태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있다 보니 혼자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사색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심플한 공간을 가지고 싶어졌다. 


미니멀 관련 책을 보고 미니멀리스트가 하루 종일 청소하는 장면을 유튜브로 시청하면서 묘한 해방감을 느끼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구와 물건으로 가득 채워진 집은 마음먹고 청소해도 화면 속 집이 되지 못하고 다시 어질러졌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청소를 하다 벌컥벌컥 화가 나기도 하고 물건을 버렸다가 후회하기도 했다. 과도한 의욕으로 시작한 미니멀라이프는 손목과 팔에 심한 염증을 남기며 흐지부지 종말을 맞이했다.



어느 공간에서 살고 싶은가?


지난 주말 딸이 직장을 강남으로 옮기게 되면서 자취방을 구하러 서울에 갔었다. 직장 근처는 비싸 엄두도 못 내고 송파 부근으로 돌아다녔다. 전철역에서 꽤 먼 곳에 있는 10평도 안 되는 원룸이 월 백만 원이 넘었다. 사회 초년생인 딸에게 월 백만 원씩 매달 지불해야 하는 건 큰 부담이다. 협소한 공간과 위치, 허름한 집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종일 돌아다니다 해가 져 다음 주 다른 지역을 더 알아보기로 했다.  


어둠이 내려와도 낮처럼 밝은 이 거대한 도시에서 발 디딜 곳을 찾아 한낮에 어둡고 허름한 곳만 찾아다니는 모습이라니 씁쓸했다. 빌딩에서 나오는 화려한 조명 아래 잔뜩 주눅 든 딸의 얼굴을 보며 복잡한 심경으로 버스를 탔다. 서울 월세에 경기도민이 한껏 모욕받고 온 기분이랄까? 이럴 줄 알았으면 경기도가 아닌 서울에서 살았어야 했는데 후회스러운 감정만 들었다. 


어디서 살아야 행복한가? 나에게 있어 집은 무엇이었나?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어수선한 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은 공간을 잠시 이용만 하는데도 지불해야 할 돈이 엄청난데 내 소중한 집을 아무렇게나 방치하며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가 하룻밤 묵은 숙소의 방은 하얀색 벽지와 침대만 있는 심플한 공간이지만 편안하고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과잉 사회를 살다 보니 텅 빈 공간이 언젠가부터 그리웠다. 몇 차례 시도했던 미니멀라이프, 원점으로 돌아간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미니멀라이프 한다고 물건을 싹 다 버리거나 끝없이 정리하고 물건을 재배치하는 방식을 몇 차례 해봤다. 버리고 사들이고 버리고 다시 사들이는 행동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기존에 해오던 습관과 미니멀리스트로 살고 싶은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청소나 정리보다 습관적으로 쇼핑을 하며 불필요한 것을 너무 많이 가진 게 문제다.

법정 스님도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올해 다시 한번 미니멀리스트가 돼보려 한다. 버리고 청소하고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형태를 바꿔나가는 방향으로 전환해 보려 한다.


실패는 실패 그대로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물건 때문에 시간과 마음을 쓰는 일을 줄이기 위해 사고 들이는 습관을 고치며 실천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일단 올해도 다시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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