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리다- 2장(1)>

그리고 시즌 中 '여름'

by 이작가야

[2장-(1)]


작업실 마당.

승현이 의자에 앉아 부품을 정리한다.

의자 밑에는 시계 부품이 담긴 상자가 여러 개 보인다.

그 뒤로 아라가 조심조심 다가와 승현을 안는다.

쏟아지는 부품들.

승현, 정색한다.

승현이 놀란 줄 알고 비웃는 아라.

잠시 후, 상황을 파악하고 기죽는 아라.


아라 미안해.


말없이 땅에 떨어진 부품을 줍는다.


아라 화났어?

승현 ….

아라 오늘 회사에서 스트레스 엄청 받았단 말이야. 그래서 오빠 안고 내 마음을 진정 시 키려고….

승현 발 들어봐.

아라 (발 들고) 화 풀어-.

승현 반대쪽.

아라 (반대쪽 발 들고) 화 풀라니까-.

승현 핸드폰이야 지갑이야?

아라 응?

승현 오늘은 회사에 뭘 놓고 왔나 해서.

아라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꼼꼼한데. (가방을 뒤적이며) 여기 다 있… 핸드폰이다.

승현 모자, 외투, 가방, 우산, 노트북, 핸드폰까지…. 거기 살아도 되겠다.

아라 만일을 대비해서 가져다 놓은 거야. 깜빡한 거 아니야.

승현 그리고 진짜 궁금한 건데 커피 머신은 언제 가져가서 놓고 온 거야?

들고 가기도 힘들겠다.

아라 아, 그건 주문할 때 주소를 잘못 적은 거야.

승현 자랑이다.

아라 뭐-! 오빠야 말로 무리해서 작업실 얻었잖아. 생활력이라곤 전혀 없는 인간아.


아라, 삐진다.

승현, 부품 상자를 옆에 놓고 의자에 앉는다.


승현 아라야.

아라 왜, 뭐?

승현 화났어?

아라 아니. (중얼거리며) 저걸 말이라고 물어 보는 건지.

승현 화난 거 같은데?

아라 아니라고!

승현 알았어. 화난 거 아니네. 삐진 거네.

아라 죽을래 진짜? 그만 열 받게 해라.

승현 (아라에게 다가가며)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아라 아, 저리가. 듣기 싫어.

승현 듣기 싫으면 말고.


승현, 다시 의자에 앉는다.

아라, 궁금하다.


아라 말해봐.

승현 듣기 싫다며.

아라 듣기 싫은데 일단 말해보라고.

승현 싫어. 네가 듣기 싫은 얘기를 왜 해.

아라 그만 장난치고 빨리 말 해!

승현 사랑한다고 말하면.

아라 안 해.

승현 나도 말 안 해.


(사이)


아라 (작게) 사랑해.

승현 크게

아라 사랑한다고! 됐냐? 이제 말해.

승현 싫어.


달려드는 아라.


승현 알겠어. (사이) 나 계약 하나 될 것 같아.

아라 진짜? 무슨 계약?

승현 이 전부터 시계 디자인만 조금씩 해주던 곳이야.

이번에 대량으로 구매 하고 싶대.

아라 (승현에게 달려들며) 오빠, 너무 사랑해. 완전 사랑해!

승현 이럴 때만 진심이 느껴진다?

아라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 오빠 커피 좋아하지? 커피 해줄게!

승현 커피 머신 회사에 있잖아.

아라 아니야. 곧 여기로 올 거야.

승현 오다니?

아라 다시 새로 주문했어. 조금 있으면 택배로 올 거야.

승현 대단하다. (부품 상자를 들고) 덥다. 그만 들어가자.

아라 응, 먼저 들어가. 난 잠깐 앉아 있다가 갈게.

승현 택배?

아라 아니거든. 그냥 마당에 앉아 있고 싶어서.

그런데 오빠, 아침에 일어나보니 방이 온통 물바다던데?

승현 바닥에서 새는 것 같던데. 조심해, 차단기도 잘 안 돼.

아라 안 그래도 미끄러져서 뒤로 넘어졌어.

승현 아라가 넘어졌다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신기해.

아라 무슨 말이야 그건? 죽고 싶단 소린가?

승현 (들어가며) 차단기 손 좀 봐야겠다.


승현, 퇴장.

아라, 잔디 길을 따라 걷다가 작업실로 들어간다.


작업실 불이 켜진다.

창가에 서서 회중시계를 보는 아라.

소파에 앉아 있는 이든과 연재.

잠시 후, 기태가 작업실 밖에서 뛰어 들어온다.


기태 (헐떡이며) 저 사람 말이 맞아. 여기서 나갈 수 없어.

연재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기태 진짜야. 내가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어. 아무리 직진해도 이 집이 다시 나와.

이든 장난치지 마. 우리가 그럼 귀신에 홀린 거야?


아라, 뒤돌아 셋을 본다.

흠칫하고 놀라는 셋.


기태 저기요, 귀신이세요?

연재 ‘귀신이세요?’가 뭐야? 예의 없게.

기태 그럼 뭐라 그래?

이든 언니 죽은 사람이에요?

연재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든 말만하지 말고 언니가 물어봐 그럼.

연재 (헛기침하며) 혹시….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나요?

기태 그게 뭐야.

이든 (비꼬며) 너무 정중하고 좋다.

연재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셋, 투닥 거린다.

아라, 천천히 소파 옆에 있는 의자로 가 앉는다.


아라 내일 아침이에요.

기태 네?

아라 내일 아침이면 나갈 수 있어요. 아마도.

기태 왜 내일 아침인데요?

아라 (사이) 나도 잘 몰라요.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아무튼, 아침이면 모든 게 끝나니까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기태 무슨 말이에요? 자세히 말해 봐요. 우리가 갇힌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아라 그건…. 여긴 마법에 걸렸으니까요.


(정적)


아라 그러니까 여러분 모두 우리의 시계에 갇힌 거예요.


(정적)


아라 (친절하게) 여러분은 여러분 각자의 시계로 살았어요. 저는 저의 시계로 살았고요.

그런데 오늘 여러분이 제 시간 속으로 들어왔어요.

(사이) 제 시간이 여러분 덕분에 꼬인 것 같아요. 똑딱똑딱 항상 똑같은 위치에 있 어야 하는

시계 바늘이… 그러니까… (회중시계를 꺼내며) 갑자기 내 시계가 움직이는 것 같거든요.

이든 뭐, 테마 별장 이런 건가?

연재 그런가본데? 시계로 이렇게 꾸며놓고.

이든 시계 테마 인가봐. (아라에게) 별장 이름이 ‘시간의 방’ 뭐 그런 건가요?

아라 (사이) 아니요, 마법에 걸려 제 시계에 갇힌….

이든 어머, 이 언니 연기 잘하는 것 봐. 연극영화과 나왔어요?

연재 디자인 잘 해 놨다 정말.

기태 아니야. 내가 나가봤잖아. 한 길만 따라가도 이 집만 나온다니까?

정말 마법에 걸린 것처럼.

연재 너 원래 길치잖아. 같이 놀러 갈 때도 매번 헤매….

이든 같이 놀러가요?

연재 아니, 대학교 때 엠티.

이든 나도 같은 학교인데.

연재 동기 엠티. 우리 기수끼리 가는 거.

이든 (사이) 아-.

기태 못 믿겠으면 둘이 나갔다 오던가.

이든 싫어, 밖에 무서워.

연재 비도 너무 많이 오고.

기태 그럼 나랑 같이 갔다 오자. 왜 믿질 않아.

이든 둘이? 그럴까?

연재 (소리치며) 안 돼!

기태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연재 아니, 밖에 위험하잖아. 또 산사태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기태 내 말을 안 믿어 주니까 그렇지.

연재 아니야, 믿어. 정말 믿기지 않지만 믿어야지 어떡해.

폭우에 산사태까지 났으니 나갈 수 없는 건 맞는 말이잖아?

이든 (우산 들고) 기태 오빠, 안 나가?


기태, 아라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기태 아무튼, 그동안 우리는 무슨 저주를 받나요?

아라 무슨 저주요?

기태 아니면 여기서 나가게 된 후 저주를 받는 건가?

아라 그런 거 없어요.

기태 (사이) 여기 있다가 내일 아침에 나가는 게 마법의 전부에요?

아라 네.

기태 우리한테 뭐 안 해요?

아라 뭘 해야 하나요?

기태 영화 같은 거 보면 나가기 전까지 고통 받고 그러던데.

아라 영화잖아요.

기태 그렇죠.

아라 네.

기태 (사이) 이렇게 쓸모없고 무의미한 마법이 다 있네.

아라 뭐라고요?

기태 그렇잖아요. 우리한테 원하는 것도 없는데 왜 밤새도록 붙잡고 있어요?

아라 당신들이 들어온 거잖아요.

기태 아니, 밤새도록 있을 생각은 없었어요.

아라 당신들이 먼저 내 시계로 들어왔고, 당신들이 멋대로 내 시계속에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든 왜 화를 내고 그래요?

아라 같은 날 같은 속도로 같은 곳을 돌아야 하는데….

당신들이 다 헤집어 놓아서 나도 당황스럽거든요?

(사이) 지금 이 순간들이 이상하 고 불안해.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됐어.


아라, 신경질적으로 선반을 뒤져 열쇠를 꺼낸다.


아라 (열쇠를 주며) 위에 방 세 개가 있어요. 가운데 방을 뺀 나머지를 쓰세요.

기태 (열쇠를 받으며) 방이요?

아라 가운데 방에 물이 많이 새서 위험해요. 알겠죠?

기태 네.

아라 특히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사고 날 수 있어요.

조심 또 조심. 안전제일. 따라 해요, 안전제일.

기태 안전제일.

아라 좋아요.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른 척 하시면 되요.

방해하지도 놀라지도 마세요. 이곳은 항상 같은 일이 벌어지니까.


아라, 퇴장한다.


연재비가 많이 와서 그런가? 또라이를 만났어.

이든귀신이라면 캐릭터 강한 귀신이야.


아라, 등장한다.


이든 왜, 왜요? 난 언니 욕 안했어요.

아라 욕실과 화장실은 안쪽에 있어요. 뜨거운 물 나오니까 씻어요.

(이든에게) 특히, 그쪽이요.

이든 네.

아라 (친절하게) 편히 쉬다 가요.


아라, 퇴장.


이든 개또라이네.

기태 든아, 얼른 씻고 와. (신발 가리키며) 냄새가 심해.

keyword
이전 08화<그리고 그리다- 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