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시리즈 中 '여름'
[2장]
폭우 소리가 들린다.
기태, 온 몸이 젖은 채로 작업실로 들어온다.
거친 숨을 몰아쉬다 잠시 쉬며 주변을 둘러보는 기태.
기태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기태, 이리저리 둘러보다 스위치를 발견한다.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기태 밖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잠시 들어왔어요. 누구 없어요?
산사태가 나서…. (울먹) 죽을 뻔해서….
기태, 흐느낀다.
기태 죄송합니다. 누가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잠시만 있다 갈게요.
(사이)이든이! 든아, 혹시 여기 있어?
기태, 이든을 부르며 안쪽으로 들어간다. 다시 나온다.
반복한다.
기태 든아! 여기 없어? 내가 미안해. 나 혼자 살아남았어. 부디 그곳에선 평안하길.
기태, 앉아서 기도한다.
승현, 등장.
앉아서 기도하고 있는 기태를 빤히 보다가 스위치를 켠다.
불이 들어온다.
가운데 소파를 두고 설계도와 시계가 어지럽게 놓여 있는 작업실이 보인다.
기태 뭐야, 깜짝이야! 망할!
승현 (놀라며) 왜요 왜?
기태 불이…?
승현 내가 켰어요. (사이) 왜 욕을 하고 그래?
스위치로 다가가는 기태.
스위치를 누른다. 불이 꺼진다.
스위치를 다시 누른다. 불이 켜진다.
승현 뭐하시는 거예요?
기태 아니, 아깐 안 들어오던데.
승현 잠깐 나갔나 봐요. 비가 많이 와서 조심해야 되요. 누전 될 수….
기태, 스위치 뒤쪽 전선을 만진다.
승현 안 돼!
기태 (전기가 올라) 으악!
승현 이러다 불납니다. 누전 화재는 비가 와도 안 잡혀요.
기태, 정신 차리고 소파에 앉는다.
핸드폰을 꺼낸다. 망가졌는지 켜지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가 슬픈지 다시 흐느낀다.
승현 조금 쉬었다 가요. 산사태도 났던데. (사이)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기태 산사태만 아니었어도 든이가 그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승현 큰일이네. 여긴 신고해도 소용없을 텐데. 전화도 안 될 거고.
기태 비만 조금 그치면 다시 나가봐야지. 든이 시신이라도 찾아야 해.
승현 곧 여기로 올 거예요. 불도 환하고. 살아있다면 말이죠.
확신은 못하겠네요. 저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작업실 안쪽에서 아라의 ‘아이고 죽겠다’ 소리가 들린다.
기태 (목소리를 따라) 든이야? 든아! 나 기태오빠야!
기태, 작업실 안쪽으로 퇴장.
잠시 후, 아라 시계가 든 박스를 들고 등장.
승현, 아라의 박스를 들어준다.
우울한 음악을 트는 아라.
아라 오빠의 작업실 겸 우리의 신혼집! 이 정도 분위기는 내야지.
승현 곧 무너질 것만 음악인데?
아라 왜? 너무 아름다운데.
승현, 다른 음악을 튼다.
흥겨운 음악이 나온다.
아라 (뾰로통) 나쁘지 않네.
아라, 시계들을 벽에 건다. 매우 이상하다.
승현, 아라의 뒤를 따라다니며 시계들을 다시 배치한다.
다른 박스들을 정리하는 아라. 중요 부속품과 설계도를 쓰레기통에 넣는다.
승현 식겁하며 다시 원래 자리에 놓는다.
아라, 승현 소파에 다가가 위치를 잡는다. 함께 들고 알맞은 위치에 옮겨 놓는다.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리는 아라.
설계도를 정리하는 승현.
천천히 사라지는 음악.
아라 이승현씨! 정리 다 끝난 것 같은데 조금 쉬어.
승현 (설계도를 보며) 응.
아라 또 생각에 잠겼어?
승현 ….
아라 오빠?
승현 ….
아라 승현 오빠!
승현 응, 아라야. 나도 사랑해.
아라 (다가가며) 뒤진다. 다 찢어버리기 전에 소파에 앉아.
승현 (놀라며) 미안, 미안.
승현, 소파에 앉는다.
아라, 소파에 앉아 승현에게 기댄다.
아라 이렇게 쉬니까 얼마나 좋아.
승현 (작업실을 둘러보며) 응, 좋네.
아라 나랑 다른 의미로 좋은 것 같은데?
승현 아니야. 똑같은 거야.
아라 거짓말. (사이) 오빠는 시계가 왜 좋아?
승현 글쎄…. 뭐, 그냥.
아라 아무 이유 없어?
승현 굳이 말하자면 시계 소리가 좋아서?
아라 똑딱똑딱?
승현 (웃으며) 응. 똑딱똑딱 (사이) 아라는 어때? 시계 이제 지겹지?
아라 아니. 난 시계 좋아.
승현 그래?
아라 응. 오빠 심장소리 같거든.
승현 (사이) 1초에 한 번씩 뛰면 괜찮은 건가?
아라 아니 그 뜻이 아니잖아. 시계 초침 소리를 들으면 오빠 생각이 난다는 거지.
승현 (깨달으며) 아-.
아라 아- 는 무슨 아- 야. 그것도 못 알아들어? 답답해 죽겠네.
승현 아니. 심장 소리가 맞는 것 같아서.
아라 응?
승현 모두 시계 속에 살고 있잖아. 각자의 시계가 있는 거야.
아라 시계는 전부 똑같잖아. 항상 일정하게 똑딱똑딱.
승현 맞아. 오차 없이 똑같이 돌아가. 똑딱똑딱.
그런데 누군가는 느린 시침에게 쫓기고, 또 누군가는 빠른 초침에서 여유를 느껴.
다른 누군가는 시계가 느리게 가서 답답하고, 같은 시간에 또 다른 누군가는 시계 가 너무 빨리
가서 정신없거든.
아라 맞는 말이네.
승현 시계 하나하나는 심장소리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 똑딱똑딱.
아라 오, 멋있는데 우리 오빠?
승현 난 아라랑 있을 때 시계가 너무 빨리 가. 정신없을 정도로.
아라 너무 좋아서?
승현 아니, 진짜 정신없어. 바둑을 한번 배워봐. 집중력을 키울 필요가 있어.
아라 로맨틱한 면이 요만큼도 없어.
아라, 소파에서 일어나 시계들을 본다.
아라 그래, 사람이 살아가는 소리는 언제 보내줄 거야?
승현 보내주다니?
아라 계약된 곳 있다며. 얼마에 팔 거냐고.
승현 아, 그게 계약된 곳이 아니라 계약할 수도 있다는….
아라 (싸늘하게) 다시 말해봐.
승현 계약할 수도….
아라 내가 듣고 싶은 말 하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야.
승현 (진지하게) 아라야, 우린 이제 작업실이 있잖아. 계약이 들어 올수 밖에 없어.
왜? 작업실 자체가 보증이 되는거거든. 말만 시계 만드는 애들이 아니구나. 작업실도 있구나
하는….
아라 내 돈 쓸 생각 하지 마. 내 월급은 내가 관리해.
승현 아라야, 우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라 충분히 이성적이야. (달려들며) 시계 태엽처럼 네 몸도 돌아가게 해줄까?
승현 잠깐, 잠깐! 진정해. (사이) 아, 침실 옆에 물새던데. 확인해봐야겠다.
승현, 퇴장.
아라 너 이리 안 와? 야! 알바라도 해!
아라, 퇴장.
폭우 소리가 들린다.
기태가 작업실 안쪽에서 등장해 소파에 앉는다.
한숨 쉬는 기태.
잠시 후, 자신이 앉아 있는 소파와 벽에 걸린 시계들을 본다.
기태 뭔가 바뀐 것 같은데?
기태,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기태 오-! 디자인 느낌있어-!
아라, 작업실 안쪽에서 고개만 내밀고 기태를 보다가 들어간다.
기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주변을 살핀다.
아라, 반대편에서 고개를 내밀고 기태를 보다가 들어간다.
기태, 다시 한 번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소파에 앉는다.
불이 살짝 어두워진다.
기태 (큰 소리로) 뭐야? 나와! 다 나와! 오늘 내가 기분이 좋지 않아! 다 나와!
작업실 밖에서 크게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기태 (떨며)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진짜 하지 말라고! 밖에 누구야! 아니야, 오해입니다.
화 안 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살려 달라고!
물에 젖은 외투를 걸친 여자가 천천히 등장한다.
기태, 울다 못해 실신 직전이다.
기태 (소리치며) 아, 뭐야 진짜! 하지 마! 으악!
여자, 외투를 땅에 놓는다.
연재다.
연재 기태야!
기태 연재야, 너 여기 어떻게 왔어?
연재 (울먹이며) 길을 잃어서…. 계속 같은 곳을 돌다가…. 여기 불빛이 있어서….
연재, 기태에게 안긴다.
기태, 연재를 안아주며 달랜다.
순간 놀라 떨어지는 연재.
기태 늦게 온다고 하지 않았어? 산사태 때문에 산엔 못 들어올 줄 알았는데.
연재 응. 내가 산에 들어온 다음에 산사태가 났어. 운도 더럽게 없지.
기태 그래도 다행이다. 무사해서.
연재 응. 다행이지.
(사이)
기태 이렇게 보니 반갑네.
연재 나도.
(사이)
기태 연재야, 왜 나랑 같이 여행….
연재 여기 뭐야? 산장이야? 주인은?
기태 (두리번거리며) 글쎄, 어디 갔나?
연재 없는 거야? 깨끗하네. 무인텔 같은 덴가?
기태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사이) 너 뭐야? 무인텔을 어떻게 알아?
연재 뭐가? 알 수도 있지. 너도 알잖아.
기태 그때 걔냐?
연재 뭐가 걔야?
기태 그럼 또 누구냐?
연재 또 누구는 뭐야?
기태 비싼 시계 선물해 준 애 있잖아! 우산 같이 쓰고!
연재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산은 또 뭐….
작업실 안쪽에서 아라가 고개만 내밀고 보다가 사라진다.
기태와 연재,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돌아본다.
천천히 작업실 안쪽으로 다가가는 둘.
잠시 후, 작업실 밖에서 ‘쿵’하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이내 물에 젖은 외투를 입은 여자가 천천히 등장한다.
기태와 연재 서로 안고 비명을 지른다.
여자, 외투를 던진다.
이든이다.
이든 기태 오빠, 연재 언니!
기태 든아! 너 살아 있었어?
연재 든아, 괜찮아?
이든 (울먹이며) 길을 잃어서…. 계속 같은 곳을 돌다가…. 여기 불빛이 있어서….
연재 이든아, 발에… 냄새가….
기태 똥 밟았네.
이든 (울며) 아, 더러워. 나 어떡해-!
이든, 기태에게 안기려고 다가간다.
피하는 기태.
이든, 연재에게 안기려고 다가가지만 연재도 피한다.
서럽게 우는 이든.
기태와 연재, 멀찌감치 서서 이든을 바라본다.
아라, 작업실 안쪽에서 등장해 이든 뒤에 서 있다.
이든은 알지 못한다.
얼어붙는 기태와 연재.
이든 기태와 연재에게 다가간다. 아라는 이든의 뒤를 따라간다.
반대편으로 피하는 기태와 연재.
이든 나도 알아. 지금 냄새나는 거. 그렇다고 겨우 살아서 온 사람한테 그런 표정을 지 어? 너무해.
기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드, 든아. 뒤에….
이든 뭐! 뒤에 뭐!
다시 기태와 연재에게 다가가는 이든. 이전과 같이 따라가는 아라.
다시 피하는 기태와 연재.
이든 서운하다 진짜. 설마 등에도 똥 묻은 거야? (등을 돌리려 한다)
연재 아니야, 든아. 뒤에 안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이든 왜 그러는 건데?
아라, 손을 뻗어 이든의 어깨 위에 놓는다.
기태와 연재 작게 비명 지른다.
이든, 어깨에 올려 진 손을 본다.
기태 든아, 네 뒤에 지금….
이든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하지마.
기태 그게 아니라 지금 귀, 귀신이….
이든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난 아무렇지도 않아.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행동 하면 돼.
이든, 흥얼거리며 소파에 앉는다.
아라 이든을 따라가 뒤에 선다.
이든 이거 봐. 난 괜찮아.
연재 든아….
이든 (소리치며) 내 이름 부르지 마! 그냥 이렇게 있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무 일도.
아라, 천천히 뒤 돌아 기태와 연재를 본다.
아라똑딱똑딱. 방해하지 마. 나가.
기태와 연재 기절한다.
이든 (애써 웃으며) 기태 오빠, 연재 언니! 이렇게 같이 놀러 와서 너무 좋다. 그렇지?
물론 폭우에 산사태에 너무 힘들었지만 나름 영화 속 주인공 같고 재미있었어.
(사이) 기태 오빠, 연재 언니! 듣고 있는 거지? 우리 함께라 너무 행복해.
나 버리고 어디 가지 마. 여행 내내 꼭 붙어 있는 거야, 알겠지?
(사이) 무슨 대답이라도 해 봐. 제발.
아라, 천천히 앞으로 온다.
이든 (외면하며) 왜 아무 말도 없어? 벌써 술 게임 하는 거야? 벌칙은 뭐야?
나도 같이하자. 나도 같이….
아라, 이든 옆에 앉는다.
천천히 이든을 본다.
이든, 아라를 본다.
이든 (웃으며) 힘든 하루였어. 그래서 악몽을 꾸나봐. 이제 그만 꿈에서 깼으면 좋겠어.
아라, 이든을 빤히 본다.
이든 제발 꿈에서 깼으면 좋겠는데. (웃으며) 내 꿈 속 언니.
아라, 손으로 이든의 얼굴을 만진다.
이든, 눈물이 흐른다.
아라 괜찮아, 울지 마. 그리고… (웃으며) 이거 꿈 아니야. 여기서 나가 줘.
이든, 기절한다.
아라, 우울한 음악을 튼다.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