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2018년도 수련을 받았다. 그때, 슈퍼바이저 선생님 프로필 사진엔 추모 사진이 있었다. 나는 솔직히 너무 부끄럽지만. 잘 몰랐다. 크게 알지도 못했다. 현장에 나와서도 임세원 교수님 성함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보고 듣고 말하기는 들었지만 이걸 만드신 분이 누군지 잘 몰랐다. 최근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 가서 보듣말 자료가 필요해서 학교 선배한테 자료 좀 달라고 그랬다. 물론 그전에 어떤 상황으로 돌아가셨는지는 알았지만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생각하기 싫고 물론 나도 트라우마처럼 겪은 일들이 있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수련받을 시기 라포를 쌓겠다 생각해서 병동라운딩을 하면 모든 환우분들의 이야기에, 면담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서 5분이라도 10분이라도 면담을 면담실이든 병실이든 복도 바닥이든 휴게실이든 이야기를 나누고 그랬다. 남성 환우분들 같은 경우엔 퇴원하시고 번호를 물어보시기도, 비싼 머리핀을 주려고 하시기도, 그때 난 무서웠다. 물론 문을 등지고 앉아 있어도 무서웠다. 무서워하면 안 되지만 무서운 걸 어째? 아무리 보호받는 공간이라도 무서울 땐 무섭다. 그게 질환이 있든 없든 밀폐된 공간이라면 혹여나 기분 나쁘실까 봐 나쁜 티도 내기 어렵다. 그렇게 면담을 받아주다.
안 받아주면 그 서운함에 날 죽여버린다고 말하신 분도 계셨다. 그걸 간호 실습생이 귓속말로 말해줬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그렇게 아픈 얘기를 들어줬지만. 한 순간에 변심을 하신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조언을 구했을 때, "그래서 뭐 수련 그만두고 싶다고요?" 진짜 지금 생각하면 죽탱이를 날리고 싶다.
하지만 수련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아니지 않나요?
아무튼 남자 병동 한 달간 금지령이었고, 어쩔 수 없이 산책시간에 만나 뵙게 되었고, 죄송하다며 쪽지를 나한테 주셨는데 eye contact 하며 i-message 기법으로 또박또박 말씀드리니, 그리고 이젠 죽어도 면담 안 해드린다고 하니 알겠다고 하시곤 산책을 하셨던.. 물론 그 뒤로 다시 살갑게 인사를 주고받고 병동생활 잘하시라고 말씀드렸다.
마음이 여린 분이셨다. 그가 사회에 나와서 어떤 범죄를 저질렀든 그건 내게 중요치 않다. 내 관할이 아니다.
그건 판검사나 다른 직종이 관여할 일이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난 그저 이분이 치료를 잘 받고 병동생활에 적응하는 것에 도움을 드릴 뿐이다. 프로그램 진행을 통해서 답답한 병동생활에 조금이라도 활력을 주는 그것뿐이다.
아무튼 살인을 하셨든, 성범죄를 하고 오셨든 나에겐 마음이 아프신 분들이고 치료가 필요하신 분들이다.
그래도 위기상황들을 마주하면 나도 겁이 날 때도, 일이 쉽지 않을 때도, 경찰들도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동탄 그 반말 사건. 잘한 건 없지만. 다시는 그러면 안 되지만. 거칠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들에 노출된다. 그럼에도 치료진은 애쓴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많은 인력들이 많은 기관들이 애쓴다.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일들은 감당해 내야 한다...
p.7
직장에서는 잘 웃지도 않고 독일 병정처럼 무표정한 모습, 가족을 웃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함께 막춤을 추며 노래를 하기도 하는 등 친구처럼 좋은 아빠 항상 작은 것까지 챙겨주는 따뜻한 남편 제게 전화해 안부를 물었고, 결혼한 다음부터는 거의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해 잘 출근했는지, 언제 퇴근하는지를 물어보던 사람. 풍부한 감성, 순수한 마음,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
의사로서 늘 최선을 다했습니다.
p.8 그 사람답다. 의사자로 인정.
p.9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던 원인 모를 통증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쳐 가면서도, 이에 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담아서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p.10 조각 글들, 짧지만 뭉클한 글들을 새롭게 수록했습니다. 희망의 근거
보고 듣고 말하기 요약하여 실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자살하려고 하는 이들의 자살 징후를 알아차려 그들을 돕기 위한 것으로 생전에 남편이 무척이나 심혈을 기울였던 과업 중 하나.
p.11 아이들에게, 비록 아빠와 엄마가 서로 있는 곳은 달라도 항상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18.p 행복을 찾아주는 것, 우울증을 치료하는 것, 나는 내일에 꽤 잘하는 편이라고 자부,
알맞은 약을 처방, 적절한 수준에서 조언이나 충고, 심연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도 의망의 상실 때문이라 확신 전력으로 돕기 시작 희망을 되찾는 일.. 모르고 있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p.
타인의 감정에 제대로 공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되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가 절망에 빠지고 보니 그것이 내 온전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내가 너무 우울하고 자살사고가 심할 때, 그때 난 내 생각보다. 그동안 스쳐갔던 환우, 회원, 위기자들이 떠올랐다. 감히 너무 죄송했다. 내가 했던 면담들이 질문들이 혹여나, 더 상처가 되진 않았을까. 그 뒤로 면담이 더 무서웠다. 그렇게 느끼실 까봐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그런 나를 되려 위로해 주고, 솔직하게 본인의 아픔을 덤덤히 그 창문 없는 사무실에서 얘기해 주신 50대 남성 내담자.
상담실 자리가 없어서. 병원 회의실이든 어디든 상담은 해야겠고, 자리는 마땅치 않고. 나에게 음료를 사시겠다던. 나에겐 음료가 중요한 게 아닌데, 그동안 얘기를 잘 들어줘서 고맙다고 해주시던.
그렇게 난 돌아와서 면담지를 작성하고 엑셀에 정리하고 실적을 적는다.
실적을 위해서가 아니지만. 내 업무가 그렇다. (*발표 자료와 통계치를 내기 위함이다.)
자살자분들의 상담 동의를 이끌어 내는 건 진짜 쉽지 않다. 어떤 보호자분은 더 잘 아신다. 이거 나라에서 실적 어쩌고 하는 거 아니냐. 그럼 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부터. 실적으로 된다 할지라도 얘기를 나눌 상대를 안전장치를 늘리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설득한다.
보호자가 교수여도, 박사님이셔도,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설득이 어려웠다. 국가에서 진행하는 것에 신뢰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난 설득하고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실적을 위한 동의가 아니라 자살시도자의 도움의 선택지를 좀 넓혀보고자 얻어내는 동의다.
근데 뭐? 비전공자 주제에 그렇게 그냥 자리에 앉아서. 전화방? 뭐라고 했더라?
하는 게 별로 없다고. 사건 사고가 없으면 일이 없으니 이일 저일.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위기대응팀을 할 때도 타 팀에선 놀고먹는 팀처럼 보였을까?
행정서류에 치이지 않으니? 그렇지만 팀의 특성상. 대상 군의 특성상
자살/위기/중증/아동/청소년/급성 뭐 다양하게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증상의 정도별로 나뉘어 있다.
세부적으로 알지 못하면 공부를 하던가 아님 파악 후 발언을 하던가 하길 바랐는데 말이다.
무슨 키스방처럼 말하는 것처럼 뭐라고 했는데 내가 녹음기 안 한 게 한이다. 근데 너네는 녹음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하긴 이제 보니까 병원 돌아가는 꼴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다신 병원 쪽은 처다도 안 본다. 지역사회에서 빵이 쳤음 쳤지.
이쪽 일 안 해본 사람들은 제발 그냥 입 좀 닥치고 그랬으면 합니다.
그 해당팀 일을 해보지 않은 이상 모르는 겁니다.
쉬워 보이나요?
놀고먹고 그래 보이 나요?
직접 해보고도 그렇게 느낀다면 그렇게 말하고 다니세요.
근데요. 직접 해보고도 쉬운데? 하신다면 그건 일을 대충 한다는 겁니다.
저도 뭐 다른 분야 모르면 입 다물고 지냈는데..
지금은 또 그게 아니긴 한데..
전 먼저 비하한 적 없습니다.
북을 치든 꽹과리를 치든
왜냐? 저는 그 일을 모르기 때문이죠.
돌아가는 상황을 알아도
자살자에 대한 이해도가 1도 없는 사람
아무리 설명해도
"네가 많이 알고 있어서 그래 아는 게 많으니 보이는 게 많아서 그래."
이런 글 그만 써야 하는 데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면 나오게 된다.
저는 없는 말 지어내지 않아요.
기억력도 상당히 좋고, 섬세할 땐 섬세하고 아닐 땐 아닌데
아닐 때는 보통 별 대수롭지 않은 일엔 날을 세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본업이었던 위기/자살시도자 앞에선
제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없습니다.
10대 친구들이야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 장난도 치고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랬기도 했지만요.
아무튼.
내 위치는 딱 여기였던 것 같다. 소 경험, 유 이론 전문가? 아니다. 소경험, 겉핥기 유 이론 전문가? 소경험, 무이론 전문가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 빈약한 경험과 이론을 치장하기 위해 유명인사와의 관계, 방송출연 등 자신을 포장하는 주 무기.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하는 나쁜 사람을 매우 혐오한다.
(예 : 사이비 집단, 성폭행하는 아울러 갤러리? 또 뭐가 있을까? 불안하고 약해 보이면 바로 강자처럼 구는 약자한테 강하고 강자한테 강한 사람들을 매우 진저리 치게 면전에 싸대기를 때려주고 싶은 사람이다. 보통 나는 싫은 소리를 잘 안 하는 편인데 내가 싫은 소리를 했다면 진짜 싫은 것이고 내 기준에서 정말 벗어난 사람이다.)
(*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