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반감기에 적어놓았던 흑백의 조각들
집 앞 놀이터에서 280원을 가지고 투닥 거리는 어린 아이들의 간지럽고 귀여운 음성이 나의 달콤한 주말 낮잠을 깨웠다. 시원한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돌아와 책상에 앉으니 문득 내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이 아이들의 장난을 이어받아 다시금 눈을 감게 만든다. 요즘도 인사동을 찾으면 옛날 문구점을 연상케 하는 1평 남짓한 조그만 가게를 볼 수 있는데, 그 가게 안에 진열된 장난감, 스티커, 딱지, 액세서리 등의 가격이 방금 내 잠을 깨운 280원 넘나드는 그 수준이었다. 100원짜리 하나면 조립식 장난감 한 통, 딱지 몇 개, 종이 인형, 초코파이 하나 정도는 사먹을 수 있었고, 500원이면 어린이로서는 거의 못 할 게 없는 큰 돈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반면 요즘은 어떤가. 80~90년대의 물가에 비하면 ‘동전’이라는 화폐를 가지고 어린이들이 어떤 구매행위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 되어버렸고, 아마 지금 우리가 보는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나와 똑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이 나의 3번째 에세이. 2번째 에세이를 써 내려갈 때만해도 금새 글의 소재가 바닥이 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잠시 떨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펜대, 아니 키보드를 두드리는 요즘, 회사를 오가는 전철과 버스 안에서 사색에 잠길 거리가 내게 새로이 생겨서 생기를 되찾고 있다. 필자 또한 미혼의 남자인지라 아침 출근 전에는 헤어 왁스로 머리 손질을 하는데 3분에서 5분의 시간을 투자한다. 대학생 시절이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왁스가 아닌 젤, 무스 혹은 글레이즈의 제품으로 머리 손질을 했었다. 그리고 모든 제품은 각각의 질감과 향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제품을 다 쓰게 되면, 다른 제품을 사서 써보기도 하고, 손질의 용이함보다는 제품의 향으로 제품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리고 포장을 뜯고 사용을 시작하면서 매번 생각을 했다. 과연 이 제품이 바닥을 보일 때쯤에는 내 인생에는 어떠한 새로운 사건들이 생기고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 있을까.
이는 내 어린 시절에도 같았다. 과연 이 치약을 다 써갈 때쯤이면, 난 키가 얼마나 자라 있을까? 아버지의 자동차 안에서 나던 새 차 냄새가 희미해져 가는 동안, 우리 가족에게는 어떠한 일들이 일어 났었을까? 사람의 기억을 지배하는 ‘냄새’라는 것. 오늘도 비슷하지만 조금은 색다른 짤막한 냄새 여행을 해보자.
/체육복에 배어있던 한의원/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짝꿍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새삼 기억나는 일이지만, 그 친구의 아버님께서는 한의원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당시에는 왜 그 친구의 체육복에서는 한약 냄새가 날까라는 의문을 항상 가졌으나, 정작 친구에게 직접 묻지는 않았다. 좀 색다른 섬유유연제 냄새가 나는 친구의 체취는 별 다른 거부감 없이 맡았으나, 그 한약 냄새, 아니 체육복 냄새는 나로 하여금 그 친구가 살고 있을 법한 한약재 가득 쌓인 한의원 겸 가정집을 상상하게 했다. 지금도 가끔 우연치 않게 한약 냄새를 맡을 때면, 이미 결혼을 했을 수도 있는 그 친구와의 8살, 그 1년의 시간이 떠오른다. 독자 여러분은 한약 향을 맡으면, 어떤 기억을 떠오르실는지.
/미닫이 문을 열고 만난 아기보름달/
지금도 나는 어렵지 않게 구멍가게를 가끔씩 보며, 구멍가게를 즐겨 찾는다. 어린 시절 우리 모두가 보물상자 정도로 여겼던 구멍가게에서 나는 냄새는, 표현력이 그리 나쁜 편이 아닌 필자조차도 묘사하기 어려운 냄새이다. 구멍가게에 다다라서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면, 이미 내 코는 그 냄새를 기대하고 있다. 껌, 라면박스, 우유 그리고 시멘트 바닥 이 모두가 합쳐져 그 냄새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항상 찾던 보물 중의 보물. 100원짜리 동전 하나만 가지면 먹을 수 있었던 아기보름달의 냄새도 이 구멍가게 냄새의 작은 부분이었다. 혹시라도 이 구멍가게 냄새를 공감하실 수 있는 독자 분들께서는 어떤 분이라도, 이 향을 묘사해주시면 좋겠다. 소정의 선물이라도 드리려 한다.
/심통이 나도록 그리운 하이크림 디/
어린 시절 큰 어머니 댁에 놀러 가면 맡을 수 있었던 외제 고급 비누 향. 반면 우리 집 화장실에는 딱딱하고 그다지 향기롭지 못 한 향의 비누가 찬장 가득히 쌓여있었다. 8~9살 정도로 추정되는 그 어느 날, 나는 투정을 부리듯 엄마에게 물었다, 왜 우리 집은 저 비누 밖에 안 쓰냐고. 아직도 기억한다 그 가격표. 요즘이야 권장 소비자 가격이 표시되어있거나, 제품 진열대에 가격이 표기되어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 당시 만해도 ‘XX슈퍼마켙’ 이라는 투박한 스티커에 ‘XXX원’이라고 붙어있었다. 개당 450원이었던 그 비누. 엄마의 대답은 ‘싸고 좋아서’였다. 난 어린 마음임에도 나의 철없는 투정이 미안해졌던 기억이다. 당시 제조사에 문의를 해서 똑 같은 화학 성분으로 내가 직접 비누를 제조해서 써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럴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움은 더욱 진하다.
/카스텔라는 브랜드 명이 없어야 제 맛/
비누 때문에 부린 투정이 미안했던 기억과 함께, 일주일 전 결혼을 하고 出家를 한 내 동생. 내 동생에게 또한 미안했던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나는 어린 녀석이 꽤나 자린고비였다. 그래서 내 동생이 아침마다 학교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그 앞 제과점에서 간식으로 사가던 카스텔라. 난 엄마의 돈이 들어가는 그 빵이 미웠다. 지금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간식으로 카스텔라를 먹곤 하지만, 참 질기게도 그 기억은 항상 향을 따라 나를 찾아온다. 공부할 때의 기억력은 젬병인 나였지만, 냄새에 관한 기억력은 잔인하리만치 좋은 탓에, 아마 앞으로도 카스텔라를 먹을 때마다 좀 더 잘 해주지 못하고 보내버린 내 동생이 떠오를 것이다. 내일 퇴근길에는 시장 근처에 있는 이름 없는 빵집에 들러 카스텔라 3개를 사야겠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나에게 카스텔라는 슬픈 달콤함이다.
/카페트는 나의 미니 놀이동산/
먼지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겨울이면 엄마가 창고에서 낑낑거리며 꺼내와 거실에 깔아놓던 카페트. 카페트의 네모난 모양을 난 내 장난감 자동차의 전용 트랙으로 삼았다. 그리고 카페트에 엎드려 먼지 냄새 비슷한 카페트 냄새를 맡으며 나만의 레이스를 펼쳤다. 가끔씩 특별메뉴가 있어 식탁이 아닌 밥상을 차리고 카페트 위에서 밥을 먹는 날은, 카페트의 따가움과 먼지 냄새 역시 내 반찬이 되었다. 독자 여러분들의 집에도 하나씩은 있을 법한 이 카페트라는 것이 주는 촉감과 탁한 냄새. 항상 말씀 드리는 바이지만, 앞만 보고 달리는 우리네 삶에서 뒤를 돌아보게 해주는 아이템들은 찾기 나름일 것이다.
필자는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신혼여행지로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을 비롯한 주변의 몽롱한 느낌의, 그리고 유화 같은 분위기의 섬들을 생각하고 있다. 나의 미래의 자녀가 청소년이 되었을 때쯤, 나는 과연 그리스의 섬들로부터 어떤 향을 기억해와서 나의 신혼 여행을 추억하게 될까? 허니문이 주는 꿀 같은 맛도 좋겠지만, 지금 당장에서도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유년기가 그립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위의 글들은 내 과거의 시간에 일어난 일이 되어버렸다. 항상 과거지향적인 필자의 이번 호 글을 마치며, 다음에는 조금 더 밝고 미래지향적인 분위기의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