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게 남기고 간 이별 선물 오이소박이
너무 빨리 떠나는 것 같잖아
이제 막 겨울을 견뎌낸 몸에 네 햇살이 스며들었는데
너는 벌써 이별할 채비를 하는구나
희망도 움츠러들고
마음조차 얼어붙은 계절 속에서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단 말이야
이제 막 꽃이 피었다고 좋아했는데
네 향기는 바람에 흩날리고
너의 상큼한 봄 햇살은 점점 여름의 열기를 닮아가고 있어
너와 함께한 이 짧은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그래
네가 내 삶에 머무른 이 시간이
지친 내게 얼마나 따뜻한 위로였는지
얼마나 살고 싶게 만들었는지
넌 아마 모를 거야
영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조금만 더
내 곁에 머물러 줄 수는 없을까
푸른 잎도 꽃도, 바람도 그대로 둔 채
시간이 잠시 멈추는 봄의 공기를 계속 마시고 싶어
내가 이렇게 간절히 바래도 너는 떠나겠지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잖아
내 사랑 내 노래 내 기쁨아
조금만 더
내 곁에 머물러 줄 수 있을까
소녀야 소녀야
너의 마음에 내향기와 맛을 영원한 기억으로 남겨 둘 수 있을까
곧 다시 만날 그날까지
햇살 향기, 바람의 맛, 땅기운까지 담아
내가 그 안에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한입
시원하게, 아삭하게, 상큼하게 지내길
봄이 소녀에게 남기고 간 선물 오이소박이
오이의 아삭한 소리가 소녀의 입안에 퍼지고
부추와 마늘, 고춧가루가 뒤따라 춤추듯 퍼졌다
봄의 경쾌한 맛에 혀끝이 반짝였고
소박한 그 조각 안에
내 사랑 봄은 그의 온기와 생기를 두고 갔다
무겁던 이별이 새콤달콤하게 변하는 순간
답답했던 내 마음이 시원하게 뚫리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