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온 이메일

유럽으로 가는 티켓,

by 파란선


유럽에서 온 이메일


'발신: 브로쵸와프 국제학교

축하합니다. 저희 국제학교에서 귀하를 초등교사로 임용하고자 합니다.

첨부된 계약서를 읽어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브로츠와프 국제학교 교장, A.S 드림’


5월 초에 전화상으로 면접을 본 폴란드의 소도시에 속하는 브로쵸와프 국제학교에서 2년 동안 고용하겠다는 계약서가 담긴 이메일이 도착하였다. 나에게는 전교생 전체 학년 만 3세부터 15세까지의 학생들을 총 열두 학년, 주 1회의 미술수업과 커버 교사를 맡아달라는 풀타임 계약서 내용이었다. 함께 지원한 톰슨 씨도 5학년 담임을 제안받았다고 하였다. 우리는 커플이었기에 월세와 해외 이사비용은 공동으로 적용되었지만, 계약서는 각각 나누어져 있었다. 내 심장이 두근 되는 것은 물론 말도 못 하게 흥분되었다. 메일을 읽는 내내 제대로 읽히지 않아 프린트를 직접 해서 보아야 했을 정도였다. 사실은 내가 가진 학위와 짧은 경험으로 해외에 있는 국제학교 근무가 확정된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왠지 모르게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


내 이름과 여권 번호, 직함과 연봉으로 시작된 고용 계약서는 모든 내용이 생소한 폴란드어와 영어가 함께 적혀 있었다. 월세 보조비, 유급 휴가, 왕복 비행기표, 의료보험 등 지원내역에 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살폈고, 우리가 원하는 지원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었기에 월세와 연봉에 대한 협상만을 남기고 대부분 받아들였다. 솔직히 그 당시에 톰슨 씨도 나도 짧은 국제학교 근무 이력과 늦은 지원 시기 때문에 찬밥 더운밥을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나의 경우는 이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 해까지 한국에서 머물다가 일 년 후 지원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상대방인 국제학교도 늦어진 교사 확보에 다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유럽의 학교들은 8월 중순부터 개학이기 때문에 그들도 우리만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생각보다 낮은 연봉과 월세 보조비 때문에 몇 번의 협상 메일이 오가야 했다. 폴란드의 물가는 지금도 낮은 편이지만, 17년 전에는 상상초월로 낮았다. 그와 맞물려 국제학교 경력이 별로 없었던 우리의 경력은 연봉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한 브로츠와프 국제학교의 경우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신생 사립학교였다. 계약서와 별도로 보내준 학교 브로슈어에는 국제학교에 대한 설명과 교사진에 대해 안내되어 있었지만, 교사로서 알아야 할 폴란드 학교에 대한 이해가 낮았다. 그때는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는 것만큼 폴란드 생활에 있을 어려움과 학교에 대한 인지도, 운영체계 및 재정상태 등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함을 미처 알지 못했다. 또한 이러한 요인이 근무환경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몰랐으며, 폴란드 생활 일 년이 채 되기도 전에 알게 되었다.


서로의 동의 사인이 담긴 고용 계약서를 주고받고 나자, 모든 상황이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6월 말에는 근무 중이었던 한국의 국제학교에 사표를 제출하였고, 곧 서울로 돌아와 필요한 서류와 짐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국제 학교 측에서는 폴란드 정식 노동비자를 허가받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였고, 범죄경력 조회서, 학위, 출생증명서 등 다양한 서류들을 영문으로 요구하였다.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한 후 폴란드까지 두 달 정도 걸린다는 선편에 고작 옷 몇 벌과 책들을 우체국 박스에 담아 보냈다. 대부분의 삶을 한국에서 보낸 나는 폴란드에서 한식을 꽤나 그리워할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 음식이라고는 된장 한 통 보냈으니 말이다.


톰슨 씨는 한국에서의 5월까지였던 일 년 계약을 마치고 고국인 뉴질랜드로 돌아갔다.

그 또한 고국에서 폴란드로 입국하기 위한 서류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기다리는 두 달 동안 전에 근무하던 뉴질랜드 초등학교에서 시간제 커버 교사를 한다고 메일로 전해왔다. 우리 둘 다 7월 중순쯤 떠날 것이라는 추측만 하고 학교 측에서 준비하는 비자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카샤라는 분에게서 새로운 이메일이 도착하였다.


'안녕하세요! 브로쵸와프로 오시는 비행기 티켓을 보내드립니다. 곧 만나 뵙기를 고대합니다.

브로츠와프 국제학교 비서, 카샤 드림'


첨부된 파일을 눌러 열어보자 영어로 적힌 내 이름이 눈에 띄었다. 카샤라는 분이 첨부한 비행기 티켓이었다. 내 이름의 철자가 맞는지 한자씩 몇 번을 읽었다. 다시 한번 숨을 고르고 비행기 티켓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서울로부터 브로츠와프의 여정은 독일의 프랑크 푸르트에서의 스탑오버를 포함하여 약 15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긴 여정이었다. 또다시 나의 심장이 정신없이 뛰기 시작하였다. 눈을 부릅뜨고 천천히 마우스로 페이지를 넘기는 집게손가락조차 살짝 떨렸다. 로또에 당첨이 되면 이런 기분일까. 드디어 유럽의 국제학교에 가는 티켓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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