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s: 겨울이 온다.

그리고 눈은 모든 소리를 잡아먹는다.

by 사못

겨울은 나에게 설렘이지만 동시에 두려움이기도 하다.

눈이라도 내리려는 일기 예보에 밤새 잠 못 이루며 기다리는 어린아이로 만들었다가도,

퇴근 시간이 되기도 전에 깜깜해지는 하늘은 외로움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그런 겨울이 다가온다.

이번 겨울도 어떻게 견뎌내야 좋은 겨울로 추억될 수 있을까?


1. 겨울잠을 자고 싶다.


겨울이 되면 동면을 취하는 동물이 있다. 음식을 가득 저장하고 잠이 들다 봄이 오는 소리에 깨어나는 동물이다.

겨울이 되면 나도 잠을 오랫동안 자고 싶다.

잠에 대한 애착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1.1 습관적 낮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시간이 되면 낮잠을 잔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이제 더 이상 낮잠은 자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낮잠을 청했고, 지금은 퇴근 후 지쳐 쓰러지듯이 잠이 든다. 어릴 적 상상하던 어른이 되진 못했지만, 어른에 대한 환상은 아직도 품고 있다. 낮잠을 자는 어른도 듣기 나쁘진 않으니 괜찮다.


1.2 잠을 청하기 위한 노력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잠의 유형은 쓰러지듯이 잠을 자는 것이다. 너무나도 졸려서 기절하듯이 잠이 드는 순간이 좋다.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수면제를 처방받거나, 약국에서 수면 유도제를 구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면의 질이 좋아지지 않았다. 잠들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고, 또 잠에서 깨어난 후에 몸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들었다. 좋았던 점은 역시, 잠으로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현실에서 잠시라도 멀어지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수면유도제의 장기 복용은 치매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있다고 하여 관뒀다.


결론을 말하자면, 얼굴의 반을 가려주는 천으로 만들어진 커다랗고 폭신한 수면 안대의 도움을 받고 있다.

빛을 확실히 가려주는 것이 썩 마음에 든다.


2. 행복은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다.


학창 시절 본 '식탐정 쿠이탕'이라는 일본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이다. 그리고 정답이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으로도 확실하게 행복은 찾아온다.


퇴근길에 먹는 2500원짜리 호떡은 비싸지만, 행복의 값어치를 한다.

서울 호떡이라는 매장이 지하철 역에서 집으로 가는 길목에 개점했다. 2500원이라는 가격에 충격을 받아 단념했지만, 날이 추워지니 하나는 꼭 먹어야겠더라.


종이컵에 담긴 호떡을 받아 들고 집에 가는 길은 가벼웠다. 무거운 가방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의 건널 타이밍을 잴 때도, 좁은 인도에 앞의 무리가 천천히 걸을 때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오직 '어떻게 종이컵 속의 설탕시럽까지 알차게 긁어먹을까?'라는 생각만 하고 걸었기 때문이다.

집에 도착할 쯔음엔 호떡은 이미 내 뱃속으로 안착하고, 가벼운 손으로 귀가한다.

만족스러운 저녁의 시작이었다.


3. 눈이 오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는다. 눈은 꼭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눈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시간대 별로 나와있는 일기 예보를 보고 눈 예보가 있는 시간에 창 밖을 바라본다.

눈은 소리가 없어 왔는지도 모르게 찾아왔다 떠나기 때문이다.

내 경험 상, 눈 예보는 기약 없이 늦어지거나 사라지는 때가 잦았다.

새벽 3시까지 창 밖을 바라봐도 찬바람만 쌩쌩 불고, 다시 확인한 휴대폰의 눈 예보는 말끔하게 사라지기도 했다.


눈을 기다리며 하는 생각은

- 눈 내리는 것을 집 안에서 촬영할까? 밖에 나가서 촬영할까?

- 이 영상과 사진을 누구에게 보내줄까?

- 눈이 쌓일까?

- 혹시 눈이 많이 오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될까?

이 정도이다.

더욱 철저히 눈을 맞이하기 위해서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구름의 흐름을 보기도 하고, 누군가가 추천한 더 정확하다던 북유럽 기상청에 접속하기도 한다.


3.1 눈은 꼭 온다.

기상 예보가 맞지 않더라도 괜찮다. 눈은 꼭 온다.

눈은 차갑고, 주위의 소리를 다 집어삼키지만, 골목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설렘이 담긴 목소리가 있다.

늦은 시간이라도 눈이 쌓이면 안면이 트이지 않은 동네 사람들이 나와 비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 의미 없이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밟고, 얼음이 언 곳을 괜스레 밟아보기도 한다.

엉덩이에 힘을 주고 종종걸음을 걸으며 미끄러지지 않게 산책을 한다.

주먹보다 작은 눈 사람을 만든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 어차피 다들 눈 구경하느라 정신없다.

내 멋대로 골목을 휘젓다가 집에 들어가면 따듯한 보일러 온기에 콧물이 주룩 나온다.

손끝과 발끝은 퉁퉁 부어 느낌이 잘 나지 않지만, 이불에 쏙 들어가면 되니까 괜찮다.


눈은 추운 날씨가 가져온 여러 귀찮은 일을 괜찮게 만든다.


겨울이 또 찾아왔다.

날씨에 의해 여러 감정이 찾아왔다.

어차피 찾아온 것 나만의 방식으로 마음껏 즐긴다면, 이 겨울도 조금은 따뜻해지지 않을까?


- 한 겨울의 회피 팁-

keyword
이전 01화해피한 회피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