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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킁킁총총 Jun 11. 2024

퇴근 아니지 퇴사하겠습니다.

내일부터 백수

24.06.06(목)

드디어 마지막 날! 숙취로 아침을 시작했다. 역시 새로 때문인가. 두통이 밀려오지만 마지막 출근에 지각을 할 수 없지. 부지런히 출근을 했다. 도착하니 지후가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역시 부지런한 놈.

다른 분들도 보통 일찍 출근을 하시는데 오늘은 시간이 지나도 오시지 않아 이상했다. 부지런히 할 것만 하고 빠르게 퇴근을 하자고 지후와 의견을 모았다.


10시가 돼서야 주방 이모님께서 오셨다. 별말 없이 일을 하다가 늦었지만 오늘이 저희 마지막 날이라는 말을 전하게 되었다. 무슨 일이냐며 되려 화를 내주시는 이모님의 모습에 짧지만 꽤 마음을 주고받았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고 감사한 마음에 저희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일을 이어갔다. 부지런히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할 일들을 끝냈다. 이제 커피를 마시며 좀 쉬자는 말에 셋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이모님을 통해 알았지만, 오늘 출근 시간을 늦췄고 주방 실장님은 일정이 있으셔서 오지 않는다고 미리 말을 했던 상황이었다. 그냥 웃으면서 넘겼지만 지후도 나도 어이없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긴 이야기를 나눴지만 주로 이모님의 사생활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이모님께서 해주신 말 중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람 너무 믿지 말라는 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능구렁이가 되고 앞뒤가 다른 사람이 되기 쉽다는 내용이었다. 어제 우리가 가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정확히 이야기해 주시지 않으셨지만 이 말로 비춰봤을 때 어느 정도 상상이 되는 것 같았다. 사람을 쉽게 믿는 나에게는 더욱이 와닿는 말이기에 일기로 한 번 더 기록하면서 마음에 새겨본다.


오래 남아서 할 일도 없을뿐더러 그럴 이유조차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마지막을 즐겁게 퇴근 아니지 퇴사를 하고자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우리가 다시 같이 일을 할 날은 없을 거야. 좋은 경험이었고 재밌었어 지후야."


"그렇겠지. 많이 배웠다. 앞으로 더 뭘 하든 잘할 거야."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우리의 짧지만 길었던 7개월을 마무리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좋았던 기억보다는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많았지만 내 성격상 시간이 지나면 좋았던 순간들만 기억에 남을 것을 알기에 덤덤하게 자리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낮잠을 청했다. 피곤했는지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잠에 들었다. 알람을 맞춰 놓은 시간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아 진짜 이제 백수구나. 조금 답답한 마음이 밀려왔다. 너무 갑작스러웠기에 아직 아무 계획도 생각도 없는 이 시간을 즐겨보려 하지만 마음은 답답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 집에만 있으면 더 답답할 것 같아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찾아봤다. 근처에 스타필드가 있으니 구경이나 좀 할까 생각하다 문득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원더랜드, 박보검과 수지가 주연인 작품. 박보검을 좋아한다던 나형이가 떠올라 카톡을 보내봤다.


"혹시 이 영화 보신 건가요?"


"박보검 좋아해요. 수지 좋아해요. 이거 슬프다고 하던데 눈화장 안 하고 봐야 하나요?"


"눈화장 안 하고 같이 보러 가실래요?"


"언제요?"


"지금?"


흔쾌히 받아 준 나형이에게 일단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우리는 스타필드로 향했다. 조금 여유롭게 도착해 스타필드릴 구경하며 영화를 보며 먹을 간식을 하나 둘 사기 시작했다. 식단 하는 나형이는 먹을 수 있는 게 없지만 디저트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여기저기 먹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엔티앤스, 하트 크로플, 커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영화가 꽤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시작 전 사온 디저트를 냠냠 쩝쩝 먹기 시작했다. 조금씩 잘라서 나형이에게 물었다. "먹을래?" 거절하는 척하지만 조금씩 잘라서 주니 잘 받아서 먹었다. 디저트를 상당히 좋아한다는데 저렇게 식단을 하는 걸 보면 정말 독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아직 나에게는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영화가 시작했다. 꽤 집중해서 보면서 느낀 점은 딱 하나다. 박보검은 정말 잘 생겼다. 영화의 소재는 정말 좋았지만 내용은 조금 난해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다지 추천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영화. 원더랜드가 정말 존재한다면 나는 그곳을 살고 싶을까? 지금은 그다지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조금 더 살다가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내일이면 진짜 백수 1일 차다. 일단 암막 커튼과 핸드폰 알람을 꺼놓고 원 없이 자보자. 그리고 생각해 보자. 아니 생각하지 말자. 백수 10일 차까지의 목표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너무 많은 생각이 나를 옮아 매는 삶에서 조금 벗아나 보자. 자, 이제 시작이다. 요이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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