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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iinterest Jul 17. 2024

어라? 이상한데? 이게 맞나?

배려 좀 해주세요.

24.07.12(금)

퇴근길 한강에서 러닝을 하자는 지후의 말에 고민을 했다. 아무 일 없이 집에서 쉴 생각에 저녁에 택배를 예약 배송을 해놨기 때문이다. 일반 택배라면 상관없지만 냉동식품과 아이스크림이 있었기에 갔다 오면 나의 소중한 식량들이 처참한 상태일 것이란 생각에 선뜻 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집에 도착해서 밥을 먹으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불금에 혼자 집에 있기 싫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갈게."


비장한 마음을 담아 카톡을 보냈다. 그도 그랬던 것은 지후의 러닝 크루원들과 함께 달리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참석 버튼을 누르고 보니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뛰는 것이 아닌가. 조용히 여유롭게 달리고 싶었는데 사람이 많으면 조금 불편한 감이 올 것 같았다. 그래도 한 번 경험하는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젠장. 늦었다. 부지런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와서 출발 시간이 늦어졌다. 생각보다 늦을 것 같은 시간이라 가지 말까 고민하면서 지후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너무 늦으면 둘이 뛰면 된다는 말에 힘을 얻어 부지런히 달렸다. 약속시간보다 15분 정도 늦게 도착하기에 그냥 둘이 달릴 생각을 했다.

도착 전 지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나 걸려?" 10-15분은 걸릴 것 같다고 답을 하니 기다려보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아니다 싶은 마음에 뛰기 시작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거친 숨이 나왔지만 애써 숨기면서 죄송하다고 말하고 합류했다. 다행히도 오늘은 크루원들에게 티를 나눠주고 갈아입느라 일정이 늦춰졌다는 것이었다. (지후야... 말해줬으면 안 뛰어왔지... 흑 내 잘못이니 딱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각자의 페이스에 맞게 3팀으로 나눠서 뛰기로 했다. 첫 번째 그룹은 6:00, 두 번째 그룹은 6:30~7:00 그리고 마지막 그룹은 아주 천천히 뛰는 그룹으로 정했다. 너무 빨리 뛰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나는 두 번째 그룹에, 지후는 첫 번째 그룹에서 뛰기로 하고 드디어 크루원들과 함께하는 첫 러닝이 시작되었다.

선선한 밤공기를 마시며 한강을 달리는 기분은 역시나 짜릿했다. 딱 좋은 페이스로 달리는 중 그룹 리더가 크루의 리더임을 알았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여유 있게 달리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점 꼬이기 시작했다. 페이스가 말이다. 첫 번째 그룹은 우리보다 빠르기에 점점 안 보여야 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리더가 이상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앞 그룹이 좀 멀어졌네요. 페이스를 조금 올려볼까요?"


어이가 없었지만 다들 알겠다며 페이스를 올렸다. 점점 빨라지는 페이스에 다들 말 수가 적어지고 달리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앞 그룹에서 페이스가 빠르다고 느꼈는지 우리 그룹으로 내려온 사람도 있었는데 멀어져야 할 앞 그룹과의 간격이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조금만 가면 쉬는 곳이 나오니까 좀 더 빨리 뛸게요."


아, 장난하나. 심지어 오르막길이다. 화가 날 것 같았다. 일단 뛰었고 도착했다. 숨이 거칠었고 먼저 도착해 있던 지후가 괜찮냐고 물어왔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속으로는 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그룹이 올 때까지는 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또 어이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다음 그룹 오려면 좀 걸릴 것 같은데 더 뛰고 있을까요?"


"뛰고 싶은 분들 이쪽으로 한 바퀴만 뛰고 오죠."


여기까지는 그래도 들을만했다. 그래, 뛸 사람들은 더 뛰고 오세요. 다들 에너지가 넘치는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 나온 이 크루의 리더의 말이 정말 소름이 돋았다.


"안 뛸 사람 없죠? 출발하죠."


응? 뭔 개소리인가. 대답을 들을 생각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정말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황당한 순간이었다. 몸은 이미 뛰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이 모임은 도대체 사람에 대한 배려가 있긴 한 건가 수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더 놀라운 건 페이스였다. 순간 속도는 4분대를 찍기도 하고 평균 5분대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뒤처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 선두 그룹이 정말 뒤통수를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왔다.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도착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달리기가 시작됐다. 지후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사람들은 배려가 없어? 원래이래?"


"오늘따라 왜 이러지. 하하하"


사람들이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지후와 페이스를 낮추기로 했다. 심지어 다른 분은 쫓아가지도 못하는 상황인데도 뒤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은 분에게 저희랑 천천히 뛰자고 제안을 하고 걷다 싶은 속도로 뛰었다. 남은 분의 페이스를 맞추다 보니 속도는 점점 늦춰졌지만 그래도 여유가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다시 밤공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지쳐있기에 상쾌해야 할 밤공기가 마냥 상쾌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페이스로 뛰면서 얘기를 나누면서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밤공기는 상쾌한 바람으로 바뀌어있었다. 물론 나의 마음이 바뀐 것이겠지만 말이다.


"아까 페이스로 완주했으면 욕하면서 집에 갔을 것 같아. 다행이야. 기분 좋게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은 가라앉았고 리더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미숙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이해했다. 물론 다음에도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굳이 이 모임에 더 나올 일은 없을 것 같은 순간이었다.


아직 달리기가 미친 듯이 좋은 순간은 아니지만 달리는 순간이 좋아지고 있다. 특히 한강을 달리는 순간은 특별한 것 같은 생각이다. 누군가와 함께 달리기 때문일까. 혼자 한강을 달리는 순간에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나에게 찾아오는 사소한 감정들, 이 모든 감정에 인격을 만들고 있는 요즘이다. 오늘 잠깐 들른 불만이라는 친구와 마지막까지 함께 해준 상쾌함이라는 친구 덕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하루. 상쾌한 친구는 한강에서 뿐 아니라 삶 곳곳에서도 나에게 찾아왔으면 좋겠다. 자주 너를 만나고 싶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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