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롱불 Apr 23. 2023

원래 공무원은 회식이 없나요?

회식을 원하는 너, 특이한 MZ구나

공직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어갈 때쯤 첫 회식을 했다.



  조금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일하는 관내 우체국이 아닌 시 전체 우체국 공무원 노동조합 회식이었다. 사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점심식사부터 시작해서 회식까지 많은 집단생활을 할 줄 알았고 나름 그것에 대 옅은 기대감까지 있었다. 그런데 웬걸? 말로만 들었던 국가직의 개인주의적 특성이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업무에 관련되지 않은 사적인 대화가 별로 없다. (사실 대기인원이 쌓여있어 사담을 할 시간 자체가 별로 없다.)  



  점심시간에는 국장님과 다른 주무관님들은 도시락을 싸와 점심을 드시고 팀장님과 나는 나가서 각자 혼밥을 한다. 사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도시락을 싸 오기에는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밖에서 밥을 먹는 걸 선호하는데 매일 팀장님과 밥을 먹는다면 어색할 테니까. 래도 매일 시간에 쫓겨가며 혼자 밥을 먹다 보면 왠지 모르게 처량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도 가끔씩은 도시락을 싸와야 하는 걸까.



  아무튼, 점심 같이 먹지 않고 회식 또한 없으니 정이 없다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 마음 맞지 않는 사람과 회식을 하면 도망가고 싶 마음이겠지만 우리 관내 우체국은 모두 좋은 분들만 계셔서 같이 회식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들 가정이 있으실뿐더러 출퇴근길이 나처럼 꽤나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 성사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는 지방직 공무원들이 부럽다. 각자의 연고지에 거주하니까 퇴근 후 회식을 하더라도 집에 어떻게 들어가지? 하는 걱정이 적지 않겠는가, "택시 타지 뭐~"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이니까. 방직 공무원이 된 친구들의 시도 때도 없이 회식을 한다는 푸념을 들으면 안쓰러운 마음도 들지만 마음 한편에 말하지 못할 부럽다는 감정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단념한 채로 지내다가 그렇게 원하던 회식을 하게 되었을 때는 기대와 조금 달랐다. '회식 장소는 코다리집입니다.' 코다리라니! 당연히 삼겹살이나 갈비를 파는 고깃집을 생각했었는데. 첫 시작부터 내 예상에서 빗나갔다. 늦지 않게 코다리집에 도착하고 나서 어색한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을 때에도 쉽지 않았다. 나는 출근 첫날에 뵈었던 과장님들 옆 자리에 앉았고 한  차 신입이라 아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다. 대화 몇 번 나눠본 적 없는 상급자 분들과 회식을 가지는 게 편할 리가 있겠는가. 심지어 과장님들 사이에 끼어 앉아있던 나는 양옆에서 나를 칸막이 삼아 하는 대화가 시작되면 시선처리가 매우 곤란해지는 상황까지 겪어야 했다. 회식 자리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술도 알아서 능력껏 마시는 분위기였지만 이런 고충 때문에 잠깐씩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편하게 하라고 하시는 과장님. 이 상황에서 어떻게 편하게 하나요. 그래도 과장님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엿듣는 상황마저도 나에겐 재미있었다. 총괄국장님의 진두지휘를 받는 지원과장님의 고충, 25년째 만나고 있는 동기들, 그 모임 안에서 벌어지는 승진의 차이와 이에 따른 위화감 등 이런 썰을 도대체 어디서 들어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넌지시 말씀해 주시는 빠른 승진을 위한 꿀팁까지. 코다리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즐거운 시간이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를 다음 회식이 벌써 기다려진다.



  회식은 금방 마무리됐다. 짧았던 회식은 노조 지부장님의 작년 하반기 성과와 올해 상반기 계획에 대한 짧은 연설 이후에 기념사진 촬영을 하고 음식을 먹으며 프리토킹을 가지는 순서였다. 스무 명 정도 모여있던 코다리집 회식 이후에는 다른 테이블에 계시던 8,9급 주무관님들끼리 따로 모여 이동했다. 유일하게 안면이 있던 지원과의 주무관님이 따로 모일 건데 같이 가시겠냐는 말에 쾌재를 부르며 대답했다. "무조건 좋습니다." 역시 회식의 백미는 젊은 사람끼리 2차가 아니겠는가! 한껏 들떠서 주무관님들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평범한 포차에 자리 잡은 후에 정말 편하게 대화했다. 회식이라기보단 또래 술자리 느낌일 정도였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몇 번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지, 출근하기가 얼마나 싫은지, 어젠 어떤 민원인이 왔는지와 같은 시시콜콜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것,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내겐 오랫동안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3차까지 남아있던 최후의 4인)






  드라마와 영화 같은 문화콘텐츠부터 신문과 뉴스 같은 언론매체, 심지어 사내 교육에서도 회식은 '나쁜 것'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먹기 싫은 술을 강요하는 부장, 억지로 장기자랑을 하는 신입사원, 추태를 부리는 팀장, 더 나아가 범죄의 위험성까지. 심지어 부정적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공무원은 매 회식자리마다 성비위 예방 담당관과 같은 임시 직책까지 마련해야 할 의무가 있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상황에서 이런 사회 풍토까지 반영된 결과가 회식 없는 문화가 아닐까 싶다.



  공무원은 계층제 조직이다. 상하 위계질서가 뚜렷하게 정해져 있으며 공식화, 문서화와 톱니바퀴처럼 잘 짜 맞춘 시스템화를 지향한다. 언뜻 보기에 효율적인 조직으로 보이지만 관료제가 가지는 부정적 효과들 또한 강하게 나타나는 조직이다. 물론 원치 않는 상황에서 인간관계가 주는 스트레스가 업무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뛰어넘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점차 탈인간화되고 개인주의화 되는 사회에서 서로의 정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기댈 수 있는 조그마한 환경을 제공하던 것이 회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회식을 좋아하는 나는, M세대와 Z세대가 만나는 지점에서 태어난 과도기 세대이며 스물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문턱 앞에 있다.

이전 05화 안녕하세요, 행복을 드리는 우체국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