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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Oct 16. 2023

커피, 몰개성에 개성을 입히다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 #부산(12)

규격화된 프랜차이즈는 그동안 도시의 색을 빼앗는 주범으로 꼽혔다.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에겐 그런 오명이 꽤나 아팠던 듯싶다.


 몰개성의 함정에 빠져있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2014년 그런 노력 중 하나를 우연히 목격했다. 서울 명동 인근에서 스타벅스 관계자와 점심을 먹은 뒤의 일이다.



“몰개성이냐 통일성이냐”


 식사를 마치고 이 관계자는 2013년 문을 연 스타벅스 소공로점(당시 조선호텔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곳(소공로점)은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겐 사진 촬영 명소다. 간판 때문”이라는 얘기.

스타벅스 소공로점 현재 간판과 과거 간판. 출처 : 네이버 지도

 서올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로 가는 골목에 있는 소공로점에 도착하자마자 간판부터 봤다. 스타벅스 간판은 초록색과 하얀색일 거라는 고정관념 때문인지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던 간판인데, ‘황금색’이었다. 


 이 관계자는 “소공로는 조선시대 때 소공주가 살았던 곳이다. 왕가의 권위와 품위를 상징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간판을 황금색으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며 만든 간판인데 예상 밖의 반응을 얻었다. 한국 사람의 호응은 물론 황금색을 부와 명예, 황실의 권위로 여기는 중국 사람들의 호응까지 끌어냈다. 스타벅스가 진행한 ‘현지화 마케팅’의 대표적 성공 사례였다.


 스타벅스의 현지화 마케팅은 소공로점의 간판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선시대 궁중의 말과 기마 목장 마필 등을 관장하던 사복시 터에 자리한 종로의 이마빌딩점은 한국화로 벽면을 장식하고 창호문 간살 형태를 적용한 파티션으로 공간을 분리했다. 경주 대릉원점은 한옥 형태에 좌식 테이블을 마련했다.

 그런데 소공로점의 황금빛 간판은 이제 볼 수 없다. 2018년부터 브랜드 통일감 등을 이유로 간판은 다른 매장과 유사한 형태로 변경됐다.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제3의 공간을 제공한다’는 경영방침을 밝히며 일선에서 물러난 하워드 슐츠 미국 스타벅스 회장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 어디서 스타벅스를 찾아도 안락감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게 스타벅스의 설명이었다. 한글간판을 유지하기로 한 인사동 광화문 경복궁 역 등만 빼고.


 내심 아쉬웠다. 아쉬움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행자 블로그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글부터 소개하려고 한다.

 "한국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스타벅스에 가면 된다"는 글.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들이 유독 스타벅스 매장을 찾는 건 유독 한국에서 익숙한 스타벅스라는 문화가 주는 안락함 때문만은 아니다.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면서 현지인에겐 만족감을, 여행객은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서다.


 2019년 두바이에 갔을 때 구시가지인 알시프의 스타벅스를 기어코 찾아간 이유도 이 때문이다. 흙벽으로 지은 황톳빛 건물에 자리한 스타벅스는 황톳빛 건물색과 같은 색으로 적혀 있었다. 

 물론 초록과 하얀색의 사이렌 로고와 함께.



“풍경에 프레임을 건 현지화"


 다행히도 아쉬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들은 현지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광이야 말로 현지화에 최적화된 인테리어라는 데 주목했다. 여기에 매력을 더한 건 건축이다. 풍광과 건축이 주는 특별한 경험이 입소문을 타면서 전국구 프랜차이즈 카페는 지역 핫플레이스가 되기도 했다.


 이는 부산도 다르지 않았다. 이색 스타벅스 매장, 이색 투썸플레이스 매장은 부산에 오면 방문해야 할 목록에 올랐다.


2018년 문을 연 기장의 일광 투썸플레이스. 출처 : 라움건축사사무소 홈페이지

 2018년 문을 연 기장군 일광 투썸플레이스는 해안가와 녹아드는 이색 건축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라움건축사사무소의 오신욱 건축가가 설계한 이 건물은 새 날개 모양의 두 개 덩어리를 살짝 엇갈리게 얹은 구조다. 일광 해수욕장의 모래사장 곡선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라움건축의 홈페이지에는 이 건물을 ‘파도의 움직임과 해변을 형상, 파도의 물보라 등을 이미지화하고 형상을 만드는 스키마(도식)’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효율적인 바다 조망을 끌어내는 데 집중했다. 상승하는 형상을 가진 1층에선 외부 난간을 통해 수평선만 볼 수 있다. 2층은 단차를 둬 다양한 지점에서 바다를 보도록 했다. 

 무엇보다 2층 외부 테라스와 건물 루프탑은 바람 소리, 파도 소리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2018부산다운건축 금상을 수상했다.

출처 : 스타벅스

 스타벅스도 2019년 말부터 산, 바닷가, 강 등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에 매장을 열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교외 여행객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이 같은 흐름은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그중 하나가 부산 명지강변DT점(사진)이다. 이곳은 건물 외관도 멋지지만 낙동강뷰로 유명하다. 낙동강과 접한 면을 통창으로 구성해 낙동강과 을숙도가 시원하게 보인다. 


 그러다 보니 1, 2층 건물을 모두 사용할 정도로 넓은 매장인데도 창가는 늘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풍경에 특별함을 더한 매장도 있다. 바로 높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타벅스 매장이 바로 부산에 있는데 대만에선 ‘부산을 여행할 때 꼭 가야 할 대표 명소로 선정하기도 했다. 

해운대 엘시티 99층 전망대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타벅스 매장(아래). 출처 : 엘시티 홈페이지, 스타벅스

 2020년 11월 개장한 스타벅스 해운대엑스더스카이점이다. 최고 101층인 해운대 주상복합시설 ‘엘시티’의 99층 전망대에 자리하고 있다. 이전까지 대만 101빌딩 내 35층에 있는 매장이 스타벅스 최고 높이 매장이었다.


 넓게 낸 창문 아래로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달맞이고개 동백섬 등 부산 일대 주요 관광 명소를 볼 때면 전 세계 최고 높이 매장이라는 걸 절감할 수 있다. 


 이 독특한 매장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커피값보다 비싼 전망대 입장료도 아낌없이 지불한다. 


 광안리 해수욕장 앞 광안비치점도 바다를 면한 창을 통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바다 앞 소나무, 광안대교,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지면서 맑은 날엔 풍경화가 되고 비 오는 날엔 수묵화가 된다.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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