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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Oct 05. 2023

‘美味’ ch.2… 상생의 맛을 살리다

[걷다 보니 ‘발품 컨셉’-커피] #부산(10)

간판(看板). 명사.

 1. 기관, 상점, 영업소 따위에서 이름이나 판매 상품, 업종 따위를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걸거나 붙이는 표지(標識).

 2. 대표하여 내세울 만한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겉으로 내세우는 외모, 학벌, 경력, 명분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간판’이라는 단어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이다. 커피 이야기를 하다가 생뚱맞게 웬 간판의 뜻풀이일까.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부산에서 우연히 만난 작은 카페에서 시작된다. 


“장사할 생각 없는 줄 알았다"


 애매한 데다 불친절했다. 장소도 그런데, 간판의 형태까지. 

 국제적인 규모를 자랑하는 전시컨벤션센터 벡스코(BEXCO)는 물론 백화점 등 대형 쇼핑몰이 몰려 있으니 제법 사람들이 오갈 듯한데, 그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번화가에서 비껴 나 있어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이면 도로에 자리했다. 거기다 무슨 자신감인지 간판은 애써 찾지 않으면 볼 수 없었다. 하마터면 놓치고 지나갈 뻔했으니 찾는 이들에게 불친절한 게 맞았다.


 그런데… 간판…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1번 설명처럼 사람들이 보기 쉬우려면 간판 상호는 전면이 보이게 배치해야 하는데, 어딘지 이상하게 달려 있었다. 출입구 위, 상호가 바닥을 보도록 붙은 간판은 고개를 들어야 비로소 보였다.


 매장 이름 ‘커피프론트’. 

 사실 이 카페를 알게 된 과정도 굳이 설명하자면, ‘얻어걸렸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부산에 온 김에 커피만 마시는 게 아쉬워 또 하나 도전한 게 요트 자격증이었다. 일주일간 매일 아침 수영구 민락수변로의 부산조종면허시험장에 가야 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커피였다. 


 아침이면 커피를 마시는 일상 루틴을 지켜야 하는 데다, 아침잠을 깨워야 한다는 이유까지 더하니 카페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인터넷에서 아침 7시에도 커피를 살 수 있는 곳이 시험장 근처에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면허시험장까지 거리가 1.4km니 시간도 충분했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으로 끝났다. 카페의 문 여는 시간은 인터넷 정보와 달랐고 시험장 수업 시간과는 맞지 않았다.

 

 요트 면허를 따던 날, 계획에 그칠뻔한 그 카페를 찾았다. 해질녁 그 카페에서 여유있게 커피를 마시면서 일주일간 수고하며 면허를 취득한 스스로에게 축하를 건네기 위해서다. 

 알고 보니 이 여유,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카페로 들어서는 순간 오후 7시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어진 시간이 제한돼 여유는 사라졌다. 


 서둘러 주문부터 했다. 커피프론트의 시그니처 메뉴가 ‘라떼'라는 인터넷 정보는 참고만 하고 ‘그냥’ 필터 커피를 주문했다.

 메뉴판에 적힌 원두 중 선택한 건 ‘두완초(Duwancho)’. 바리스타가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면서 선택한 커피에 대해 설명해 준다. 원두별로, 중량에 맞춰 소분해 뒀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갈아서 내려준다는 얘기도 해 줬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몰랐던 정보도 알려준다. 2019년 이곳에 문을 연 커피프론트는 스트럿(STRUT)커피의 2호점이고 카페들이 많은 전포동에 가면 본점을 만날 수 있다는 정보.


 그제야 진열대 원두 브랜드들이 보인다. 모두 스트럿이다.


주문을 마치고 앉을자리를 찾기 위해 비로소 매장을 둘러봤다. 공간은 한눈에 훑을 정도로 작았다. 무엇보다 이 카페는 위치나 간판만 불친절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좌석도 불친절했다. 


 브루잉바 왼쪽 세 자리와 입구 오른쪽 창가의 네 자리가 전부였다. 더구나 입구와 브루잉바 사이 공간엔 ‘발레바’처럼 생긴 게 생뚱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딱 커피만 올려놓을 수 있는 바 주위에 사람들이 둘러서서 커피를 마시는 스탠딩 좌석이다. 


 그럼에도 ‘자리가 없다’는 요구가 꽤 있지 않았을까, 짐작할 만한 게 있었다. 추가, 또는 급조된 듯 보이는 좌석 때문이었다. 입구 왼쪽, 전면 창의 창틀 프레임이 색다른 테이블로 사용됐다. 


 창틀에 커피를 올리고 의자에 앉으니 자연스럽게 바가 된다는 걸 경험했다.



 이런 불친절,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사람들이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건 커피의 가치이자 본질인 맛 때문이었다. 그 맛을 만들어내는 스트럿커피도 궁금해졌다.


 “2016년 김해 안동공단에 첫 문을 연 로스터리입니다. 좋은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이 나는 커피를 추구합니다. 고민 많은 한 잔의 커피를 담백하게 전달합니다.”


 스트럿커피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이다. 브랜드의 이유도 설명한다. 


 “Strut은 사전적 의미로 지주대를 뜻하며, 주로 건축물의 전체 밸런스를 위해 사용됩니다. 스트럿커피는 커피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하고 아름다운 향미를 밸런스 좋게 내어드리고자 합니다. 전포 매장에서는 두 가지 블렌드와 싱글 오리진 커피를 준비해두고 있습니다. 에스프레소 메뉴 외의 싱글오리진 커피는 필터로 제공해 드립니다.”

김해 안동공단 식당(왼쪽) 자리에 문을 연 스트럿커피. 출처 : 스트럿커피 인스타그램

 홈페이지 설명대로 스트럿커피는 김해 공장이 즐비한 곳, 안동공단에서 문을 열었다. 퇴식구 화장실 등 15년간 비어있던 옛 식당 공간의 구조를 그대로 살렸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SNS에도 사진 맛집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무심한 듯 보이는 인테리어가 커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손님을 배려한 카페 주인의 의도로 해석되기도 했다. 그리고… 낯선 풍경에 매력을 느껴 스트럿커피를 찾은 사람들은 ‘커피 찐맛집’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스트럿커피는 2022년 9월 8일 안동공단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지금의 전포로 장소를 옮겼다. 무심한 인테리어 양식은 가정집을 개조한 전포 본점도 다르지 않았다. 원두에 대한 진심도 이어갔다. 


스트럿커피의 커핑 장면. 출처 : 스트럿커피 인스타그램

 2017년 지역지에 실린 기사를 보면 스트럿커피는 더 좋은 생두를 구매하기 위해 기준을 세우고 지켜왔다. 재포장되지 않은 산지 커피를 사는 게 바로 기준이다.

 산지 커피농장과 직접 거래를 할 수는 없지만, 좋은 품질의 생두를 거래하는 업체를 선별해서 거래하려고 했다. 업체를 고를 때 자체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도 했다.


 스트럿커피를 방문한 사람들의 인터넷 후기엔 카페 주인이 '커핑'한 흔적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커핑이란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고 커피 맛의 객관성을 찾기 위한 본질적인 맛 테스트다.

 

그렇게 원두에 대한 자신감은 스트럿커피와 커피프론트의 메뉴판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치 출연진은 ‘커피’ 뿐인 1인극 같다.


 커피프론트의 메뉴판엔 필터 커피와 에스프레소로 큰 맥을 잡은 게 보인다. 필터 커피는 원두별로 메뉴를 나누고 에스프레소는 아메리카노, 플랫화이트, 라떼 등으로 갈라서 판매한다. 

 달달한 커피를 찾는 이들을 위해 개발한 ‘씨플랫(C-Flat)'도 있다. 사탕수수가 든 커피 메뉴인데 크게 달지 않다고 한다.


“상생으로 맛을 키우다”  

 커피를 받아 창틀 프레임이 탁자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맛이 좋다. 


 개인 취향에 맞게 산미가 느껴지고, 뒷맛은 깔끔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양이다.

 평소 스타벅스에 가면 톨(355mL) 사이즈에 만족하지 못해 473mL의 그란데로 주문하는데 톨 사이즈보다도 작은 머그잔에 주니 커피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아쉬움이 더해지면서 커피프론트의 커피는 더 맛있게 기억됐다.


 선택한 커피의 원두는 ‘두완초’다. 이 커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산미있는 원두 자체보다 그 이름 앞에 붙여진 ‘*’ 표시와 ‘TREASURES’라는 메뉴판 표기


 학창 시절 시험에 나올 법하거나 중요한 내용에 늘 붙이던 ‘*’로도 모자라, ‘보물(TREASURES)’이라니. 안 마시면 후회할 거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망설임없이 시키고 나니 바리스타가 그라인더로 분쇄한 원두를 필터에 넣고 내리기 시작했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바리스타가 ‘두완초’라는 원두에 숨겨진 내용을 알려준다. 

 “두완초는 메뉴판에 있다시피 전포에 있는 트레저스에서 로스팅한 원두다. 로스터리 카페들의 원두를 제공하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타지에서 온 손님에게 전포카페거리 방문을 추천했다.


 아차 싶었다. ‘보물’이라는 설명과 표시를 직관적이면서 자의적으로 해석해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카페 상호였다.


 스트럿커피를 비롯해 부산의 스몰로스터리 카페들은 상생을 고민하던 중 원두를 교류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여기서 주관을 섞어 강조하게 싶은 게 있다. 카페 간 상생을 넘어 커피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협업이라는 점. 몰라서 표식만 보고 고른 원두가 알고 보니 진짜 ‘보물’이었으니 말이다.


 특히나 커피프론트를 찾지 않았다면 트래져스라는 카페를 알 턱이 없었다. 트레져스 커피는 2016년 8월 수영동에서 문을 열었고 2019년 8월 다시 열었다. 

 "이름처럼 커피를 보물에 비유해 보물같은 좋은 커피를 정성껏 만들어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

 트래져스가 SNS에 올린 설명이다. 

출처 : BICF 인스타그램

 로스터리 카페들과의 협업은 원두 교류 등 소극적인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20여개의 작은 카페들은 ‘부산의 개성있는 스몰로스터리가 한 자리에 모인다’는 취지의 부산인디페스티벌(Busan Independent Coffee Festival, BICF)을 열기도 했다. 

 

 2019년엔 5월과 10월 두 차례 오프라인으로 열었고, 2020년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이후 페스티벌은 열리지 않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시작되기를 기다려 보려고 한다. 그 기다림이 길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지역 예술인들과도 협업한다. 지난 7월 스트럿커피의 전포 매장은 극장이 됐다. 2023 ‘카페거리 창작극장’을 통해서다. 부산시가 공모한 청년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된 ‘카페거리 창작극장’은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즐기는 공연이다. 


출처 : '카페거리 창작극장' 홈페이지, 스트럿커피 인스타그램'

4개 극단이 전포동에 있는 4개 카페에서 각자의 공연을 올렸다. 스트럿커피에선 극단 드러그맨션이 심야카페에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주인공 은주의 이야기를 담은 ‘심야커피’를 공연했다. 공연 후엔 스트럿커피를 운영하는 바리스타와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다.


출처 : 스트럿커피 홈페이지

 환경 운동도 실천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구매한 원두는 종이박스에 담아 친환경 접착제를 사용한 종이검 테이프로 밀봉한다.

 포장봉투는 재생종이, 빨대는 PLA로 만든 걸 사용한다. PLA는 옥수수와 사탕수수 등의 식물로 만드는 생분해성 수지다. 매장에서 텀블러를 사용하면 500원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친환경 활동이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홈페이지엔 리포트 형식으로 실천사항을 보고한다.


 그런 점에서 '간판'이라는 단어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 2번 설명 ‘대표하여 내세울 만한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스트럿커피, 커피프론트와 함께 떠오른다.


 "커피의 본질인 맛과 상생의 가치를 찾고자 노력하는 카페"라는 간판과 함께.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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