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창준 Oct 30. 2024

긴 목이 필요한 망각


             

너도 더 검은 혀를 갖지 그랬니. 

그랬더라면 아무리 까마득한 높이의 슬픔도 

천천히 목을 빼고 하알짤 하알짝

친절하고 낯설게 핥아줄 수 있었을텐데      


어때, 모딜리아니, 별에 가까워진 느낌이야?

높아서 차가운 공기 속에 날숨을 하얗게 밀어넣어 봐

길다라는 말 보다 높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우월함과 이퀄은 아니겠지, 오늘 밤만은

등호로 서로를 연결하지 말자.     


 진실을 발설하고 싶어 서성이던 새벽, 중앙지와 서울과 낡은 힘에 대해서 말하던 밤, 나는 취하고 싶어하는 너에게 기린에 대해 말하고 있었지. 너는 기린을 직접 본 적이 없어 자꾸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흔들리는 몸 대신 기울이고 그만큼 기린은 십자가 보다 높아지고 있었지. 옆에서는 등단을 준비하는 후배가 젖은 눈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이 후배, 흰 등을 자꾸 드러내지 마. 네 끈끈한 목소리가 자꾸 속으로만 스며들고 있어. 치킨 포장지처럼. 쓴다는 일은 어쩐지 바닥에 가까워지는 일 같아요. 아, 그러네. 여기가 이미 지하군락이었네. 긴 시간을 보내고 진화하면 조금 더 높아질 수 있을까요, 내려다 볼 수 있을까요. 천천히 오라구, 미리 와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 늦게 와도 마찬가지겠지만     


밤새 기린을 말했는데 당신은 문자로 

기꺼이 슬픔을 들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밀렵꾼이 되어 서로의 슬픔을 향해 난사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긴 목을 빼서 구부린 채 지난 밤을 다시 돌아보다

망각이야말로 긴 목이 필요하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