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납골당에서

막내 작은 아삐를 기억하며

by 휴지기

아침에 또 일찍 눈이 떠졌다. 암막 커튼이 없는 아이 방에서 잠을 자다보니, 아침 해가 뜨면 자연스레 눈도 떠진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북엇국을 끓였다. 출근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식탁에 앉아 필사를 시작했다.


오늘은 소설의 주인공 용대가 얼마나 가족의 천덕꾸러기였는지에 대한 부분을 베껴썼다. 그러다가 용대와 비슷했던 막내 작은 아빠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막내 작은 아빠를 당신의 큰딸이 아들을 낳던 해에, 같이 낳았다. 그러니까 엄마와 딸이 한 해에 출산을 한 것이다. 할머니는 마흔 넘어 낳은 막내, 당신이 일곱 번째로 낳은 자식을(사실은 아홉 번째로 낳은 자식인데 자식 둘은 출산 직후에 죽었다고 들었다) 끔찍이 아꼈고, 막내 작은 아빠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둥글둥글 귀엽게 자라났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막내 작은 아빠는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둥글둥글 귀여운 어린이 같았다. 일곱 남매 중 유일하게 고등학교 씩이나 졸업시켜놨더니 공부는 안하고 계속 놀러만 다녔다. 국민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아빠는 일곱 남매 중 장남으로서, 막내 동생 밥벌이라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온갖 인맥을 다 동원하여 신협으로 어디로 취업을 시켜줬지만 막내 작은 아빠는 석 달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아빠가 어느 날 밤에 만취해 들어와 막내 작은 아빠를 부르며, 내가 너 거기 넣으려고 무슨 짓을 했는데, 니가 또 뛰쳐나오냐며, 이제 니 살 길 니가 알아서 찾으라며 소리쳤던 기억이 있다.


막내 작은 아빠에게 신기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막내 작은 아빠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딸기를 심기 위해 만든 비닐하우스 철봉에 매달려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 막내 작은 아빠는 우리 집(그러니까 나와 동생들과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 둘째 작은 아빠와 막내 작은 아빠가 함께 살던)으로 종종 여자들을 데리고 왔다.


내가 기억하는 여자는 세 명인데 첫번째 여자는 검은 색 원피스를 입은 서울에서 온 느낌이 나는 세련된 여자였고, 두번째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키카 큰 여자였다. 마지막 여자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리여리하고 예뻤던 것 같다. 막내 작은 아빠는 키가 작고 통통하며 얼굴은 못생겼다고 하기는 좀 억울하겠지만 그렇다고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아주 후하게 표현하면 귀여운 곰돌이 상이었고 좀 박하게 표현하면 어디 있어도 눈에 띄지 않을 평범하고 평범한 외모였다.


결정적으로 막내 작은 아빠는 능력이 없었다. 아빠가 열심히 주선해준, 그당시 어른들이 얘기하는 미래가 있는 직업들 몇 개를 뛰쳐나온 후 순간 순간의 밥벌이는 하고 있었겠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런 막내 작은 아빠가 끊이지 않고 여자 친구들을 사귄다는 것이, 심지어 그 여자 친구들이 다 괜찮다는 것이 초등학생인 나에게도 믿기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도 막내 작은 아빠의 매력이 뭔지 곰곰히 생각해보곤 했었던 것 같다.


이후 막내 작은 아빠는 막내 작은 엄마를 만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고, 결혼식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가 둘째인 딸이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 무렵 결혼식을 치르게 되었다. 막내 작은 아빠가 낳은 남매는, 학교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아이들이었지만 정이 많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큰 소리로 울었던 것도 막내 작은 아빠의 딸, 그러니까 나의 사촌동생이었다. 나는, 자타공인 할머니의 애정을 가장 크게 받은 첫 친손주였는데 그 여섯살짜리 아이보다 눈물이 많이 나오지 않아 조금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이 둘 다 성인이 되고 난 후 막내 작은 아빠는, 바람을 피웠다. 막내 작은 엄마 말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했다. 막내 작은 아빠의 바람과 관련하여 많은 떠들석한 일들이 있었고 그 사건들은 도파민 터지는 가십거리가 되어 친척들 사이를 활기차게 누비고 다녔다. 아빠와 엄마는 막내 작은 아빠의 통속성과 무책임함, 철들지 않음을 비난하며 혀를 찼고 그때는 나도 똑같이 그랬다. 쉰 넘어서 아직도 철이 안 들었네.


몇 년 뒤, 막내 작은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이년쯤 뒤의 일이다. 아빠 장례식장에서 가장 많이, 가장 크게, 가장 자주 울었던 사람은 엄마도 아빠의 딸들인 우리 자매들도 아닌 막내 작은 아빠였다. 막내 작은 아빠는 연신 '형님 죄송해여'를 외치며 울부짖었고, 그 울부짖음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한 누군가가 막내 작은 아빠를 바깥으로 모시고 나가기도 했다. 나는 뭐가 그렇게 죄송할까 생각했다. 오십 넘은 아저씨가, 육십 넘어 돌아가신 형에게, 무엇을 그리 크게 잘못했길래 저렇게 크게 울부짖을까.


막내 작은 아빠의 장례식에 오래 있지 못해 나는 잘 알지 못했지만,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여러 장례 절차절차마다 막내 작은 아빠의 가족들이 최선을 다해 슬퍼하고 어느 시의 유명하 구절처럼 있는 대로의 울음을 다 울었다고 한다. 이혼한 막내 작은 엄마를 포함한 막내 작은 아빠의 가족들이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막내 작은 아빠는 참,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물론 그 사랑 때문에 많은 것들을 망쳤고 자주 가족들의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사랑을 나눠주는 데 인색하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외롭게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막내 작은 엄마도 막내 작은 아빠의 바람으로 이혼을 하기는 했으나 아직도 함께 살다 사별한 남편처럼 막내 작은 아빠의 기일을, 한때 시댁 식구였던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신다고 한다. 막내 작은 아빠의 가족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대책 없어 보였겠지만 서로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빠가 계신 추모공원 납골당에 가면 아빠와 막내 작은 아빠, 큰 고모, 동네 동창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 막내 작은 아빠의 유골에 가면 그 딸이 붙여놓은, 동글동글한 가족 넷이 함께 얼굴을 맞대고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어렸을 적 찾지 못했던 막내 작은 아빠의 매력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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