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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처롭고 웃긴 부부

by 휴지기

그저께 밤, 남편과 둘이 예능을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남편은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으면서 이미 반주로 소주를 한 병 넘게 마시고 온 상태였다. 남편이 말했다.


"오늘 만난 내 친구 있잖아, 못 본 사이에 둘째를 낳았더라. 그래서 딸이 둘이야."

"그래?"

"근데 너무 부럽더라. 딸들이 너무 귀엽대. 나도 아들은 키워봤으니까 딸을 좀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지? 니가 아들을 언제 키웠어? 내가 키우는 거 구경만 했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찰나의 순간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아빠로 살았으면서 아들을 '키웠다'라고 표현하는 게 너무나 뻔뻔하고 양심이 없게 느껴졌다. 내 말을 들은 남편은


"우리 아들 불러서 물어본다?"


라고 말했다. 나는 '뭐? 불러서 뭘 물어보는데?'라고 대거리를 하듯 말했고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나는 남편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냥 또 빵 터져버렸다. 그리고는 '오빤 역시 또라이야'라고 결론지으며 아이 육아에 대한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요즘 우리 대화는 자주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내가 남편을 구박하면 남편이 나를 웃긴다. 그러면서 자꾸


"야, 맨날 구박받으면서도 이렇게 맨날 애교 부리는 남편이 어딨냐?"


라고 생색을 낸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남편이 이렇게 바뀐 건, 호되게 망하고 나서부터이다. 남편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고 모든 걸 걸며 일을 했었다. 나와 아이는 남편의 개인적인 삶의 일부였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포기되는 쪽의 대상들이었다.


남편은, 토요일에 있는 아이의 유치원 운동회에 오는 대신 회사를 가야 했고, 명절날 처가에 가는 대신 일을 해야 했으며, 주말에 가족인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대신 사람들을 만나 영업을 해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이 운동회에 혼자 가서 달리기를 했었고, 숱하게 흩뿌려져 있는 명절과 기념일에는 360km가 떨어진 충청도 친정에 아이와 단 둘이 다녀왔으며, 주말에는 자주, 아주 자주 쓸쓸했다.


그 모든 걸 바쳤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래서 이제서야 결국엔 가족밖에 남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지, 아니면 자신이 과거에 나와 아이를 쓸쓸하게 버려뒀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인지, 아니면 이제 돈도 잃고 명예도 잃어 남은 것이라고는 개그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망하고 난 후 사람이 좀 달라진 것 같기는 하다.


예전엔, 남편 때문에 죽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늦은 밤 남편이 들어왔을 때, 나와 아이를 찾을 수 없도록 어딘가로 증발해버리고 싶기도 했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었다. 결혼 전에는 한 번도 와보지 못한 곳으로 나를 데려와놓고, 심지어 아이까지 낳게 해 놓고 나를 방치하는 남편을, 나에게 어떤 시간도, 어떤 에너지도 내어 주지 않는 남편을, 미치도록 미워했고, 또, 기다렸다.


그때 남편은 심지어, 우는 나를 앞에 두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 포크레인으로 훅 파낸 것처럼 마음이 아프게 텅 비기도, 속에서 활화산이 솟구치는 듯 분노가 치솟기도 했었다.


지금은 이런 격한 감정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오랜 인내와 숙련, 체념과 순응의 결과인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남편을 많이 원망하고 이 결혼을 후회하고 있지만, 점점 짠한 마음이 진해져 간다. 그리고 남편과 나 모두, 이 비극을, 애쓰지 않아도 웃어넘기는 기술이 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어제 남편이 퇴근하기 전 전화통화할 때였다.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오빠, 카드값 연체됐다고 연락 왔어. 나 이러다가 카드사 안내원이랑 절친되는 거 아니야?"

"응. 괜찮아. 난 이미 여러 명이랑 절친이야."


이런 망할!! 근데 좀 웃겼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우리는 점점 더, 애처롭고 웃긴 부부가 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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