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3년의 시간을 거슬러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화창한 어느 가을이다.
오후 일곱 시, 비행기는 연변 상공을 날고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연변시가지는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라지만 아직은 중국에서도 작은 도시답게 소박한 불빛들에 둘러싸인 황량한 느낌이다.
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원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민족의 영원한 고토 간도 땅을 밟게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사실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몇 시간을 참았던 담배가 간절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수속을 마치자마자 서둘러서 공항건물을 빠져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역시 은하는 보이지 않는다.
건물의 맨 꼭대기, 굳이 한글과 한자로 병기한 연길이라고 적힌 대형 간판에서 발산되는 불빛만이 주변을 밝히고 있을 뿐 허허벌판에 혼자 있는 기분이다.
어쩌면 그건 스산한 바람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처음 방문한 곳 치고는 웬일인지 다른 나라에 왔다는 생각보다는 오랜만에 고향땅을 밟는다는 편안한 생각이 드는 건 어쩐 일일까.
아마도 여기 간도 땅 일대가 오천 년 전부터 우리 민족의 땅이었던 까닭일 테다.
우리 선조들이 세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는 모두 간도 땅을 활동무대로 삼지 않았던가.
국내의 정치적 논쟁에 휩싸여 어렵게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하던 날,
서 교수님께서는 내손을 힘주어 잡으시며 또 한 손으론 당신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계셨지,
교수님께서 흘리시던 눈물의 의미와 내손을 꼭 부여잡으시며 하시고자 했던 그 말씀의 의미를 난 잘 알고 있다.
영토침입과 역사날조를 통해 티베트를 완전히 복속시킨 서남공정이 끝나자 곧바로 시작한 중국의 동북공정은 정면으로 우리 민족을 겨냥한 프로젝트였다.
미국 중심의 세계화 질서에 맞서기 위해 대중국 건설이라는 중화제국주의의 숨겨진 음모로 추진하는 것이 바로 중국 변경지역의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공정 작업이다.
이것은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그들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것으로서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우리 민족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민족이 일본 제국주의와 중화 제국주의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보다 충실한 연구를 바탕으로 적절한 정책을 신속하게 수립하여 정부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교육부산하 기구로 설립된 민관합작 연구기관이 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이다.
나는 잘 알고 있다.
백척간두에 선 우리 민족의 운명이 재단의 양어깨에 걸려있음을.
서 교수님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내가 재단의 창립멤버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우리 학계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사학자 중 한 분이신 서 교수님은 재단의 전신인 고구려연구재단의 창립 이사로도 활동하셨다.
이번에 고구려연구재단이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또다시 창립이사로 동참하게 되셨다.
나에겐 학문적 스승이며 아버지와 같은 분으로서 이번에도 연로하신 교수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그 덕분에 난 재단의 출범과 함께 중국문제를 전담하는 연구 2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재단의 연구원으로서 나에게 부여된 첫 과제는 ‘동북공정프로젝트가 조선족 자치주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미치는 영향 분석’이라는 주제의 자료수집 활동이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자료수집차 6박 7일간의 일정으로 연변으로 출장을 오게 되었고, 며칠 전 은하에게 이메일로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과연 은하가 나와 줄까? 은하의 메일에는 마중 나오겠다는 말은 없었다.
나 또한 몇 시쯤에 도착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없이 그저 오늘쯤 연길공항에 도착할 것 같다는 성의 없는 메일만 보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일 년 내내 은하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성의 없는 메일을 보냈는지 내가 생각해도 도무지 모를 일이다.
마음속 한가운데 슬며시 여인으로 자리 잡고 있는 은하였지만 그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 은하에게만큼은.
이런 걸 짝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 마흔둘이나 먹도록 처량한 독수공방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생각해도 난 정말 바보 멍청이다.
남이 만들어 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정말 한심한 인생이다.
자학하는 기분을 떨쳐버리려고 머리를 세차게 흔든 후 다 피운 담배를 구둣발로 지근지근 밟아버렸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굳이 변명하자면 은하는 이제 겨우 스물여덟의 아름다운 꽃처녀,
난 허우대만 멀쩡할 뿐, 이 나이 되도록 모아놓은 돈도 없고 이제 겨우 말단 연구원신분의 무능력자가 아닌가.
재작년 이맘때였다. 북경대학에서 교환연구원 신분으로 유학할 당시 은하를 처음 만났다.
그것도 시간강사로 세월만 축내며 모교를 전전하고 있던 나에게 경력이라도 쌓으라며 어렵게 기회를 만들어준 서 교수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사실 특별한 실력도 없으면서 융통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한마디로 주변머리 없는 나로선, 졸업 후 남들 다 나가는 사회에 진출하는 게 두려웠다.
사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아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육지책으로 선택했던 방법이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지만 끝까지 학교에 빌붙어있는 것이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서 교수님은 본의 아니게 나의 지도교수역할을 하고 계신다.
교수님 입장에서는 악연이라면 악연이겠지만 한번 지도교수면 영원한 지도교수라 하지 않던가.
교수님 바짓가랑이만 잡고서 살아온 인생이었기에 당시 난 북경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박사 후 과정의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은하는 북경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관광가이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만리장성에 놀러 갔다가 한국인 관광객을 인솔하고 온 은하를 처음 만났다.
수줍음 많은 조선시대의 여인을 생각게 하는 참한 얼굴에 목까지 기른 머릿결을 예쁜 머리핀으로 단정하게 꼽은 자태,
늘 입고 있는 청바지와 잘 어울리는 단정한 몸매,
그리고 몸에 뵌 듯 한 자연스러운 지성미를 가진 그런 아가씨였다.
그녀를 보자마자 별안간 내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렸고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마치 잃어버린 나의 분신을 만난 것처럼 공허하기만 했던 내 가슴을 꽉 채워주는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그녀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으므로 케이블카를 탈 때는 맨 마지막 순서로 함께 탈 수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케이블카가 무서운 속도로 급경사를 올라갈 때 엄청난 공포감에 휩싸였다.
내 얼굴은 이미 창백한 색깔로 변해 있었고, 내 몸은 통나무처럼 굳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본 순간, 오금이 저려오면서 현기증이 몰려왔다.
옆에 앉은 은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마음을 편안히 가져보라고 말했다.
케이블카는 안전한 시설물이니 걱정하지 말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껏 감상해 보라고 했다.
그러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거라고 하면서…
고운 머리칼을 흩날리며 오색물결로 펼쳐진 단풍의 절경을 마음껏 탐닉하던 은하의 자태에서 포근함이 느껴졌고 엄습해 왔던 공포감도 이내 사라졌다.
이때 난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은하의 채취에서 우러나는 향기는 가을 산에 올랐을 때 간혹 맡을 수 있던 자연 그대로의 향기다.
심신을 나른하게 만들면서도 온갖 잡념이 사라진 후의 평온함, 이것이 바로 은하의 향기였다.
연변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은하는 경제적인 자립을 하고 싶어 기회가 많은 북경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런데 근무하던 출판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그녀의 오빠가 추천해 준 관광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했다.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하는 관광 가이드 생활을 하게 된 지는 삼 년쯤 되었다고 한다.
은하는 날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선생님 대하듯 했고, 난 마치 은하의 보호자인 냥 친동생을 대하듯 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마음을 철저히 숨겼기 때문이지 은하는 이미 내 마음속의 여인으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1년 전, 학기를 모두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온 뒤에도 우린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대부분 평면적이고 상투적인 대화였지만 나는 메일을 읽을 때면 언제나 그 속에서 은하의 모습을 보았고 그녀의 향기를 느꼈다.
그건 어찌 보면 나의 그리움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월 초인데도 연변의 밤공기는 제법 찬 기운이 섞여있다.
담배한대를 더 입에 물고, 근처의 나무벤치에 앉았다.
은하에게 와달라고 하지도 않았고, 또 온다는 언질도 없었는데 마냥 기다리고 있는 나 자신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쯤 북경에서 일하고 있을 은하가 단지 나를 만나기 위하여 연변으로 온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도착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체념하고 일어서려는데, 어디선가 나의 뇌리에 기억되어 있던 기분 좋은 냄새가 다가오고 있다.
화장이나 향수와 같은 가공된 물질에서 연출되는 그런 차원의 냄새가 아닌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기분 좋은 냄새, 사랑스러운 그녀에게서만 맡을 수 있는 그 향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은하였다.
기적 같은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내가 본 은하의 모습 중 가장 아름다웠다.
“선생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살짝 흩날리는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면서 특유의 연변 말씨로 은하가 가벼운 목례를 하고 서 있다.
그녀의 눈망울엔 어느 사이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목소리에도 눈물이 배어있는 듯했다.
“선생님, 많이 뵙고 싶었습니다.”
순간 나는 들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져버리며 와락 그녀를 껴안았다. 난생처음으로 고루한 가식 따위는 모두 걷어치우고 오직 본능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은하의 눈물이 내 가슴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다.
밀착된 가슴과 가슴으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우리 두 사람의 감정이 동시에 분출되는 순간이다.
은하의 두 어깨에 내 양손을 얹은 후 똑바로 그녀의 두 눈을 바라봤다.
그리고 또다시 힘주어 껴안았다.
잠시 후 손수건을 꺼내 은하의 눈가와 볼 주위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주자 그제야 자신의 흩뜨려진 머리칼을 정돈하고는 수줍은 미소로 내 시선과 마주했다.
“은하가 안 나오는 줄 알았지.
하긴 내가 몇 시에 도착한다는 말도 안 해주었으니 은하가 나와줄 거라고는 기대하진 않았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냥 기다렸던 건데…”
“사실은 하루 종일 공항에서 기다렸습니다.
몇 시 비행기로 오실 줄을 몰라서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첫 비행기가 낮 열한 시에 도착한다기에 그때부터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친 그녀의 눈가에 맺힌 이슬이 그녀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짙은 향기 때문에 내 심장은 터질 듯 진동하면서 제대로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도 한참을 찾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서 저쪽 기둥 뒤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몰라서…”
잠시 전까지만 하더라도 황량한 느낌마저 주던 그 나무벤치에 우린 나란히 앉았다.
왼손으로 은하의 손을 잡은 채 또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감쌌다.
“은하, 보고 싶었어. 벌써부터 이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워낙이 주변머리가 없어서 내 감정을 잘 표현하질 못해.
그러나 이제부턴 은하에게만은 내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아.”
“저도 선생님 참 많이 좋아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국으로 돌아가신 뒤로는 제 마음을 이기기가 어려웠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우리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나는 달리 생각이 나지 않아 무작정 걷자고 했고 한 팔로 은하의 어깨를 감싼 채 걷기 시작했다.
연길시내까지는 택시를 타야 했지만 가로등이 켜져 있는 구간까지 만이라도 은하와 걷고 싶었다.
“연길에는 언제 왔어?”
“선생님께서 연길로 오신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북경에서의 생활을 완전히 청산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어제저녁에 내려왔습니다,”
“그럼 완전히 내려온 거네?”
“네, 그렇잖아도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북경생활은 무의미하게 생각되어 심적인 갈등이 심했습니다.
연길로 다시 내려오라는 아버지의 성화도 빗발쳤고요. 그래서 이번 참에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남들이 보면 우리 두 사람을 아주 오래된 연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린 자연스럽게 손을 맞잡고 걷고 있었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들도 우리의 사랑을 축하해 주려는지 가을바람에 흔들리며 춤추고 있었다.
내가 연변으로 출장오기 한 달 전인 9월 초의 어느 토요일 오후다.
연길 시장 인근에 위치한 백여 평 규모의 작은 극장 앞, 일단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건물이 지어진지 백 년도 더 됐을법한 낡은 극장에는 붉은색의 한글로 ‘민족극장’이라는 현판이 위풍도 당당하게 걸려있다.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 명의로 된 전단지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 조작을 고발한다’는 제목의 격한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다.
극장 안에는 이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자리를 가득 채웠다.
무대 위에는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의 분기토론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무대 왼편의 작은 단상에서는 촌스러운 콤비양복을 입은 이십 대 중반의 사회자가 행사를 시작하려는지 마이크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아, 아, 마이크상태 괜찮습니까?”
뒤편의 객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잘 들린다고 화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연변조선인 향토연구소가 주최하는 분기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예년에 비해서 두 배나 많은 동포 여러분들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사회를 보는 저로서도 이렇게까지 많은 동포들이 참석하실 줄은 몰라 솔직히 얼떨떨합니다.
아무튼 참석해 주신 동포 여러분들께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쪼록 오늘의 토론회가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에게 유익한 토론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토론에 앞서 본 연구소의 소장님이신 배우석 교수님께서 주제발표를 하시겠습니다.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배 교수가 단상으로 걸어 나오자 객석의 중간부터 앞쪽으로 앉아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기립박수로 그를 환영했다.
그 광경은 배 교수에 대한 존경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기 충분했다.
단상에 선 배 교수가 특유의 표정 없는 얼굴로 객석을 세심하게 훑어봤다.
그러더니 아래로 편 양손으로 모두 앉으라는 신호를 보낸 뒤에야 일어선 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다.
배 교수의 주제발표가 시작되었다.
“최근에 나는 고구려의 첫 번째 수도였던 오녀산성이 있는 요녕성 환인시와 발해의 수도 상경성이 있는 길림성 영안을 비롯하여 요동 일대를 둘러보고 왔댔습니다.
가는 곳마다 입구의 안내판에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고구려는 중국 변방에 있던 민족정권이라고 써놓았어요.
오골 산성과 박작산성은 대표적인 고구려의 축성양식이쟎아요?
그런데 그곳조차도 고구려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완전히 중국성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더란 말입니다.
중국식 문화를 상징하는 사자석상을 입구에 설치해 놓고는 버젓이 당나라의 장성이라고 선전하고 있었어요.
한 마디로 기가 찰 노릇입니다.
심지어는 박작산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지경이에요,
만리장성이 무슨 고무줄이라도 되는 냥 자기들 마음대로 쭉쭉 늘리고 있어요,
역사가 무슨 장난도 아니고 지금 이 자들의 하는 짓거리가 우습지도 않아요,
집안의 환도산성, 환인의 오녀산성, 장화의 성산산성, 요동반도 대련에 있는 비자산성, 이런 성들도 전부 관광자원화 시키면서 하나같이 중국성이라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었어요.”
이 대목에서 배 교수는 격한 감정을 이기기가 어려웠던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극장 안을 한 번 쭉 둘러봤다.
“발해는 그 정도가 더 심해서 차마 눈을 뜨고서는 바라볼 수가 없었어요.
이번에 가보니까 지난 2년 동안 비밀리에 상경성을 정비해 놓았는데, 완전히 당나라 식으로 조작을 해 놓았더란 말입니다.
온돌의 흔적이며 우물 터의 양식이며 발해고유의 특징을 모두 지워버리고 완전히 당나라 식으로 복원해 놓았는데 정말이지 기가 막혀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어요!”
지금 배 교수는 최근에 우리 고대사의 유적지를 체계적으로 둘러보았을 때를 회상하면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동북공정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우리 고대사의 역사현장 왜곡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를 설명하면서, 특히 그가 둘러본 상경성의 모습을 설명할 때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치듯 말했다.
갑자기 배 교수가 아무 말 없이 객석 뒤편의 천장을 응시했다.
아마도 흥분된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모양이다.
배 교수는 단상을 오른손으로 내리치면서 격정적인 연설을 계속해 나갔다.
“중국이 지금 이런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를 자기네들의 역사로 왜곡시키기 위해서 중국에 있는 우리 민족의 모든 유적지를 철저하게 조작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저지르는 중대한 범죄행위로써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원래의 상태대로 복원시켜 놓아야 합니다!.”
이때 객석의 앞쪽에서부터 일제히 ‘옳소!’하는 고함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여기에 고무된 배 교수는 한층 상기된 표정으로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중국의 이런 행위는 대국답지 못한 옹졸한 행위로써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중국이 그런다고 해서 엄연히 존재했던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저들의 역사로 뒤바뀔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말과 함께 앞의 단상을 또다시 힘차게 내리쳤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노 교수의 열정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여기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이 이 같은 중국의 패악질을 막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일치단결해서 우리 민족의 숨결이 서려있는 이 땅을 반드시 지켜내야 합니다!”
배 교수의 연설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았고 객석에서는 “옳소!”를 연발하면서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때였다. 중간쯤의 객석에 앉아있던 깍두기머리를 한 사내가 벌떡 일어서더니 배 교수를 향해 벽력같이 큰 소리로 고함쳤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쇠를 깎는듯한 쇳소리처럼 가늘면서도 악센트 높은 쉰소리로 대단히 듣기가 불편했다.
“이것 봐, 영감! 그럼 지금 이 땅이 도대체 누구 땅이란 말인가?
조선 땅이야? 중국 땅이야?”
배 교수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 사내를 지켜보고 있었다.
앞쪽에 앉은 이들도 모두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이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을 주시했다.
그러자 그의 날카로운 쇳소리는 계속되었다.
“지금 당신이 밟고 있는 이 땅이 마치 중국 땅이 아니라 조선 땅이라도 된다는 듯이 말하고 있는데 당신 혹시 미친것 아니야?”
이 말을 신호로 “끌어내!, 박살 내 버려!”와 같은 험한 말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난동을 부리는 자들은 극장객석의 중간 이후에 앉아있던 백여 명에 이르는 자들이었다.
이 고함소리에 맞춰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극장의 뒤쪽 문들이 일제히 열렸다.
몽둥이를 든 건장한 청년들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나와 순식간에 무대 앞과 양옆을 에워쌌다.
이렇게 되니 앞 좌석을 중심으로 앉아있던 채 백 명이 되지 않는 우리 동포들을 백 수십 명에 이르는 정체불명의 중국인들이 둘러싸는 형국이 되었다.
조금 전 배 교수에게 악다구니를 하며 고함을 치던 사내가 갑자기 무대 위로 뛰어올라갔다.
사회석에서 이 말도 안 되는 돌발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던 성주를 무대 밑으로 밀쳐버리고 우격다짐으로 사회자의 단상을 차지한 그가 바로 장백산천지회의 행동대장 훠치산이다,
훠치산은 단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배 교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봐, 영감! 답을 해 보란 말이야.
당신이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이 조선 땅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까는 잘도 지껄여대더니만 왜 이제는 겁이 나서 말을 못 하겠나?”
배 교수는 피곤했던지 두툼한 검정색 뿔테안경을 벗었고, 손수건으로 눈가 주위를 닦은 후 다시 안경을 섰다.
그는 정색을 하며 이 무례한 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대체 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요?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남의 학술행사를 이런 식으로 방해한단 말이오?”
“학술대회? 무슨 놈의 학술대회가 이따위가 다 있단 말인가!
얌전히 살아가는 조선족들을 선동하는 이따위의 불순한 행사를 겉포장만 학술대회라고 위장하면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배 교수가 이 무례한 자의 말을 받으며 나름으로는 위엄을 갖추어 준엄하게 꾸짖었다.
“우린 지금 그 옛날 이 동북삼성지방 일대에서 엄연히 존재했던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인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지키고자 토론회를 가지는 것이오!
그런데 당신들이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당신네들의 역사인 냥 왜곡시키고 또 그 현장을 조작하고 있으니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외다!”
배 교수의 이 말에 그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사회석의 단상을 양손으로 내려쳤다.
그 바람에 마이크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극장 안은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훠치산이 마이크를 다시 단상에 올린 후 고함을 질러댔다.
“지금 이 땅은 우리 중국 땅이야!
따라서 우리 중국 땅에서 있었던 과거의 모든 역사는 당연히 우리 중국의 역사란 말이지.
고구려건 발해건 우리 중국의 소수 민족 중 하나였던 예맥족이라는 부족이 세운 우리 중국의 지방정권이었어.
그런데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당신네 조선족들은 지금껏 우리 한족보다도 오히려 더한 혜택을 누리며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아오지 않았나.
그런데 배은망덕하게도 당신들은 지금 이 땅이 중국 땅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인가?”
훠치산의 악다구니에 가까운 발언이 이어지는 동안 몽둥이를 들고 있던 패거리들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수십 명의 괴한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폼새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배 교수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한바탕 시원하게 웃은 뒤 더욱 위엄 있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지금 당신들이 하고 있는 짓거리를 보시오!.
이것이 어디 세계를 품을 만큼 배포가 크다는 사람들이 할 짓이라 생각하시오?
왜 이리도 여유가 없소이까? 무엇이 그대들을 이토록 초조하게 만들고 있소이까?
역사유적지를 조작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치사한 짓이외다!,
한번 조작한 유적지는 원상으로 회복하기도 쉽지 않을 터인데 그대들은 이번에 인류사에 씻지 못할 유치하고도 치졸한 짓을 한 것이외다!.
대국답지가 않아요? 당신들이 제정신을 찾아야 합니다!.”
배 교수의 이 말을 끝으로 무지막지한 폭력잔치가 시작되었다.
몽둥이를 쥐고 있던 자들이 객석 앞쪽에 앉아있던 우리 동포들에게 마구잡이식의 몽둥이찜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배 교수는 이들의 난동을 막아보려고 울부짖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몽둥이세례는 더욱 가혹해질 뿐이다.
그렇게 삼십여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지켜보던 훠치산의 명령이 있고서야 몽둥이찜질은 중단되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배 교수를 바라보며 훠치산의 기분 나쁜 쉰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우리 중국이 이 땅에서 연변조선족 자치주라는 자치행정을 허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당신들의 언어와 문자 그리고 당신들의 문화까지도 보장하는 우리들의 선의를 이런 식으로 되갚는다면 앞으로는 더 이상의 선의를 베풀어주기가 어려워지겠지.
이 땅에서 조선족의 자멸을 초래하지 않으려면 차후로는 자중 또 자중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야.
영감! 오늘은 이 정도에서 그칠 것이나 차후로 또다시 이런 분열반동적인 작태가 재현될 때는 뼈마디도 추리지 못할 줄 아시오.
우린 결단코 허튼소리를 하지 않소, 똑똑히 명심하시오!”
그 말과 동시에 청년들 몇 명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와 대형 걸개현수막을 떼어낸 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때 이들의 손목에는 파란색의 천지문양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훠치산이 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향하자 그를 필두로 몽둥이를 든 수십 명의 패거리들과 뒷좌석에 앉아있던 백여 명에 이르는 한통속들이 일시에 극장을 빠져나갔다.
극장의 맨 뒤에서 줄담배를 피워대며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자가 있었다. 모자부터 구두까지 올 백색 차림인 천지회의 왕징(王卿) 회장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들이 빠져나간 극장 안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범벅이 된 피 냄새로 역겨운 냄새들이 진동했고, 머리가 깨어지고 팔이 부러지고 어깨가 탈골되어 그 고통으로 사방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한 시간 가까이나 난동과 폭행이 이어졌는데도 그 어디에도 중국 공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중국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동포들이 처한 현실이었다.
배 교수는 무릎을 꿇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말았다.
그의 통곡은 오랜 세월 분명 우리의 영토였건만 지금은 남의 나라가 되어버린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 민족의 비애를 대변하는 것이다.
무거운 검정색 뿔테 안경을 바닥에 벗어놓고 어깨가 들썩이도록 통곡하고 있는 그에게로 처참한 몰골의 우리 동포들이 다가왔다.
연길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다.
한통의 문자 메시지가 달콤한 단잠을 깨워 주었다.
휴대폰 화면에 비친 시간은 이미 아홉 시 십 분을 가리키고 있다. 늦잠을 잔 것이다.
『선생님, 일어나셨습니까, 로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은하가 보낸 문자였다.
창문을 열어 객실 안을 환기시키자 화창한 햇살과 함께 짙은 가을 냄새가 확 몰려온다. 정신이 맑아졌다.
간단한 샤워를 하고 로션을 바르면서도 아래에 은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행복한 느낌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심장의 박동소리마저 빨라지고 있다.
택시를 타고 십여분 거리에 있는 연길시장에 도착했다.
우리의 재래시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분위기의 연길시장은 그 규모부터가 대단했다.
어제는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꼬치 몇 개와 맥주로 과음을 하고 말았다.
마침 시원한 해장국이 생각나던 차에 은하는 그런 내 마음을 용케도 알아차리고 나를 순두부집으로 안내했다.
열 평 남짓한 식당을 들어서자 순두부 찌는 냄새로 홀 안 가득 구수한 냄새가 진동했다.
한국에서도 순두부를 잘한다는 식당은 여럿 다녀봤지만 여기서처럼 식당에서 직접 순두부를 찌는 집은 처음이다.
우리 동포가 운영한다는 이 식당은 새벽부터 주인아주머니가 직접 콩을 쪄서 순두부를 만든다는데, 인근에 사는 우리 동포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맛집이라고 한다.
은하는 아버지와 함께 이미 식사를 하고 왔다고 하여 한 그릇만 주문한 후 기다렸다.
이때 범상치 않은 청년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시선이 온통 그에게 집중되었다.
훤칠한 키의 미남형 청년이 세련된 검정색 양복을 입고 동백꽃 아름송이를 들고 있었다.
은하가 이 청년을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하려는지 다소곳한 눈빛으로 인사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은하의 눈빛과 교차하자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오랜만에 만나는 듯한 그런 심오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은하! 오랜만이다!, 너 북경에 있다며?, 여긴 언제 내려온 거야?”
이렇게 청년이 반갑게 인사하는데도 은하는 앉은 자세 그대로 수줍게 인사했다.
“응, 그저께 내려왔댔어!”
청년은 내가 있다는 것을 의식했던지 나를 바라보며 은하에게 묻는 눈치다.
그제야 은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참, 선생님 인사하십시오!, 저와 함께 여기 연길에서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친구입니다”
은하로부터 이 청년의 소개를 받고서야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목례하면서 청년과 인사 나누었다.
“안녕하십니까, 마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은하와는…”
이렇게 말하는 청년의 눈빛에서 은하를 보통이상으로 생각하는 어떤 애틋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질문은 내게 했지만 곧바로 은하가 대답했다.
“내가 잘 아는 한국분이신데 윤 선생님이시라고…,
연변에 볼일이 있어 출장을 오셨어!”
은하의 소개가 있고서야 내가 먼저 악수를 청하며 다시 정식으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한국에서 온 윤준노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여기같이 앉으시죠!”
이렇게 해서 이국땅에서 처음 인사한 청년과 아침식사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고, 마오는 당연하다는 듯이 은하의 옆자리에 앉았다.
운동 꽤나 한 다부진 체격의 소유자지만 인상만큼은 선량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마오가 은근한 눈빛으로 은하를 살피며 다시 말했다.
“여전하네?, 몇 년 만에 다시 보는데도 아직도 여전해?”
마오의 이 말에 은하가 영문을 몰라하며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뭐가 여전하다는 것이네?”
마오는 은하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빤히 마주 보며 미소만 보일뿐이다.
은하가 다시 물었다.
“이 꽃은 무엇이네?”
마오가 동백꽃 아름송이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말했다.
“오늘이 내 동생 기일이야!, 찾아가 보려고… 동생이 동백꽃을 무척 좋아했었거든!”
은하가 정색을 하며 다시 물었다.
“우리 두해 후배였던 너 남동생이…, 왜 그렇게 된 거야?, 사고로…?”
“응, 인민해방군에 입대해서 사고로 그렇게 되었어!”,
마오가 또다시 동백꽃을 또렷하게 응시하더니 더욱 가까이 코를 갖다 됐다.
냄새를 깊게 들이마신 후 동백꽃을 바라보며 말했다.
“조선군 개새끼들한테 내 동생 리량이 그렇게 되었어!”
이렇게 말하는 마오의 표정에서는 지금까지의 선량한 이미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적개심으로 가득 찼다.
“오늘부터 꼭 일 년 전이니 작년 10월 오늘이었어!,
리량은 제16집단군 포병여단에 소속된 인민해방군 병사였어!,
그런데 새벽에 중국정보원을 납치하려고 국경을 넘어온 조선군인 다섯 명한테 몽둥이로 맞아서 살해됐던 거야!”
마오의 오른손이 적개심으로 부덜부덜 떨었다.
마오는 동생의 사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첩보수집임무를 맡고 있던 중국정보원을 연변 광핑의 한 별장에서 조선군인들이 납치하려는 것을 리량이 저지하다가 몽둥이로 맞아 죽었어!”
은하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분노에 떨고 있는 마오의 얼굴을 바라봤다.
“미안스럽구나!,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어!,
마오!, 이런 때일수록 용기 잃지 말고 더욱 힘을 내!, 알았지?, 마오는 언제나 씩씩하잖아!”
은하로부터 위로의 말을 들은 마오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다.
“윤 선생님!, 사실은 제가 은하 참 많이 쫓아다녔습니다,
은하아버지가 민족주의 성향이 뚜렷하셔서 그 영향 때문인지 은하가 저 같은 한족아이들한테는 눈길도 안주는 바람에 끝내는 제가 포기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은하가 수줍다며 더 이상은 말을 못 하게 하여 마오의 첫사랑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하지만 마오의 눈빛에서 은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의 사연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마오!, 요즘 무슨 일 하고 있네?”
은하의 이 말에 마오는 쓴 미소를 지으며 주저 없이 내뱉듯 말했다.
“리량 복수하는 일!”
은하가 두려운 눈빛으로 ‘뭐?’하며 다시 물었을 때 마오는 농담이라고 웃었다,
하지만 곧 그의 표정은 누군가를 증오하는 정색의 표정으로 돌변했다.
농담이 아닌 듯했다.
잠시 후 벌건 고추 다진 양념이 순두부 속살 위에서 작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고 있는 순두부 백반이 나왔다.
다진 양념을 풀어 한 숟갈 먹어보니 과연 어릴 적 고향에서 먹던 맛 그대로다.
이제야 어제 과음하여 불편했던 내속이 확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마오도 순두부를 한두 번 먹어보는 자세가 아닌 듯 반쯤 남은 공깃밥까지 말아서는 깨끗이 먹어치웠다.
우린 주인아주머니가 냄비채 가져온 구수한 숭늉을 단번에 들이마심으로써 아침식사를 마무리했다.
식사를 마친 마오가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내가 먹은 밥값까지 함께 계산한 뒤 또 보자며 인사하는 마오의 표정에선 동백꽃의 사연 속에 숨겨진 어떤 비장감이 묻어났다.
식사를 마친 탁자를 주인아주머니가 깨끗이 정리하고 나자 은하가 길림성관광 안내 지도를 펼쳐서 보여주었다.
뜻밖에도 오늘부터 나의 현지답사 안내를 자청하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오늘부터의 일정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일자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거리에서 시간도 많이 허비하고 교통비 낭비도 심하단 말입니다.”
여기로 오기 전, 서울에서 짠 일정표는 대부분 이곳 영사관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사실 난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던 순간부터 연길에서의 일정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 계획대로라면 고지식한 영사관 직원의 안내로 유적지나 방문하면서 아까운 시간을 다 허비해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보고서의 내용이 자칫 알맹이가 빠진 수박 겉핥기식의 무미건조한 내용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재단사무실에서 협조 차 영사관에 전화했을 때도 담당자는 외교적 마찰을 거론하며 내가 원했던 우리 동포 가정의 탐방이라든가, 연변대학에 재직 중인 우리 동포출신 교수들과의 면담일정도 잡아주지 않았다.
단지 고구려유적지가 있는 집안시와 환인시 그리고 발해의 상경성 탐방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함께 동행을 할 수 있을지는 그날이 되어 보아야 알 수 있다는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은하가 나의 모든 일정을 동행하여 주기로 한 이상 굳이 영사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은하 아버지가 연변대 사학과 교수출신이라고 하니 그분을 만나본다면 이곳 지식인들의 동북공정에 대한 분위기도 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은하와의 문제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도 아버지는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렇다면 첫 일정으로 부딪혀 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은하에게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아버님을 만나 뵈면 동북공정에 대해서 이곳 동포들의 현장감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이유 말고라도 어차피 인사도 드려야 하고…”
“네, 그렇기는 합니다만…”
지금 당장 아버지를 만나겠다는 나의 제안에 머뭇거리는 은하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어찌 되었건 사랑하는 남자를 아버지에게 소개하는 일이 아닌가.
그것도 북경에 있던 은하에게 늘 당부하던 말이 한국 남자 조심하라는 말일 정도로 한국 남자들에 대한 지독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던 아버지에게 말이다.
은하는 머뭇거렸다.
“아버지께서 날 못마땅하게 생각하실까 봐 걱정이 되는가 보군.”
나의 이 말에 은하의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만, 아버지의 편견이 너무 완고하셔서 그게 걱정입니다. 선생님께서 싫은 소리를 들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마음에 걸립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두 손을 무릎 위에 얌전히 모은 채 머리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어깨에 내 손을 가만히 얹었다.
“아마 그러실 거야. 내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시겠지.”
은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이 때문은 아니라는 표정이다.
“선생님께는 죄송스러운 말씀입니다만,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최 씨 아저씨의 따님께서 한국으로 시집갔다 소박맞고 다시 연변으로 돌아왔단 말입니다.
그 후로 아버지의 편견이 더욱 심해지셨어요.
그래서 혹시라도 선생님께서 싫은 소리라도 들으시면 어쩌나 해서...”
은하의 설명에 따르면 최 씨의 딸은 한국에서도 제법 큰 농장을 소유했다는 사람에게 시집을 갔었다 한다.
연변에 체류하면서 온갖 졸부행세로 최 씨 부녀에게 환심을 샀던 터라 순진한 부녀는 이 남자의 감언이설에 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시집을 가보니 이 남자는 허구한 날 술타령에 술만 먹으면 손찌검까지 하는 못난 버릇이 있었고, 그것도 모자라 농사일은 아예 최 씨 딸에게 맡겨놓은 채 날마다 노름이나 하며 세월을 축내더라는 것이다.
인내의 한계를 느낀 최 씨의 딸은 결국 집을 나와 지금은 연길 시내의 어느 노래방에서 지낸다는데 최 씨도 아직 만나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은하 아버지는 딸에게 당부하는 말이 한국남자 조심하라는 말뿐이라고 한다.
그런 아버지에게 나를 소개하기란 사실 은하로서도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난감해하는 은하의 고민을 이해하면서도 이제 더는 둘러가지 않겠다는 내 결심은 확고했다.
그래서 거의 강압적으로 나의 의지를 밀어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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