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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환 Jan 04. 2022

진정한 사랑은 무엇일까?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배우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라고 기억되는 어린 시절 나는 하루 용돈이 100원이었다.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기억된 어린 시절 그날이 생각난다. 엄마는 마루에서 이불 홑청을 바느질하고 계셨다. 나는 평소처럼 엄마에게 100원을 달라고 했다. 그 당시 100원은 가난한 우리 집에서는 매일 100원을 받을 수 없을 정도로 부담스러운 돈이었다. 매일 받지 못했지만, 그 100원으로 여러 가지 군것질을 하는 것이 어린 시절 낙이었다. 그날 엄마는 돈이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날만큼은 계속 100원을 달라고 악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떼를 쓰기 시작한 지 1시간쯤 되었을 무렵 엄마는 1만 원 지폐를 주머니에서 꺼내 주시면서 우시는 것이었다.


너무나 귀한 아들이라서 떼를 쓰는 나를 때리지도 못하고 1시간 동안 속만 상하시다가 그렇게 우셨다. 엄마의 우는 모습을 보고, 나 또한 가슴속 깊은 속에서부터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느끼게 되었다. 뭐지? 이 감정은? 그 어린 시절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그 감정이 너무나 강렬했었기에 아직도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그때부터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울게 만들면, 나 또한 그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은 나의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어머니는 나에게 사랑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몸소 가르쳐준 분이다. 술주정하고 행패 부리는 아버지 때문에 나는 지옥 같은 환경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 더 힘든 어머니는 항상 나를 볼 때는 웃어주셨다. 


밤새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어머니는 새벽에 집에서 쫓겨난 적도 많았다. 추운 겨울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에서 쫓겨났지만, 아침이면 어김없이 들어와서 등교하는 자식들을 위해서 아침밥을 하셨다. 어머니는 추운 겨울의 차가운 고통보다 자식들의 아침밥이 더 중요하셨다. 어머니의 이런 희생과 사랑 덕분에 나는 별 탈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별 탈 없이 성인이 되어가는 것으로 어머니는 그런 환경에서도 얼굴에 미소를 띨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자식이 잘 자라고 행복할 수 있다면 고생도 기꺼이 하시는 분이었다. 자식이 잘 자라는 것만으로 이미 고생에 대한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해지기 때문에 나중에 따로 대가나 보상을 받을 필요가 없다. 갓난아기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갓난아기가 엄마의 그런 희생 덕분에 무럭무럭 자란다면 세상의 엄마는 건강한 아기의 모습에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반려견을 키운다. 공원에 가면 애지중지 애견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지극정성으로 강아지를 돌본다. 그렇게 강아지를 돌보는 사람이 강아지에게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사랑할까? 내가 이렇게 애지중지 너(강아지)를 돌보고 있으니 너(강아지)가 나중에 나에게 효도를 해라고 기대하면서 돌보는 사람은 없다. 강아지에게는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무엇을 잔뜩 기대하면서 사랑을 할까? 


돈이 급할 때 우리는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 가족이라도 돈을 쉽게 빌려주지 않는다. 아무도 쉽게 돈을 빌려주지 않지만,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고 은행의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은행은 이자를 얻기 위해서 나에게 투자를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은행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고 있으니, 너 또한 나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라는 마음으로 보상을 갈구하게 되면 그건 은행처럼 이자를 바라고 투자하는 사랑이다. 이런 투자 같은 사랑에 감동할 사람은 없다. 이런 잘못된 사랑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 수가 없는 것이며 그런 사랑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고 부작용이 심해지는 것이다. 주변에 이런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자신들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위에 자신은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허무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뭔가 잔뜩 기대하고 배우자와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면서 열심히 살았는데, 내 노력만큼 기대만큼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허무함을 느끼는 것이다. 


사랑은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그것으로 상대방이 행복해졌다면 그것으로 이미 보상이 된 것이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정도만 노력해야 보상을 바라지 않게 된다. 그런데 상대방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노력을 한다면 반드시 많은 보상을 바라게 되고 불행의 씨앗이 된다. 사람은 노력이란 것을 하게 되면 반드시 보상을 바라게 된다. 미래에 충분한 보상이 온다면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노력에 대한 보상은 오지 않게 된다. 그래서 허무하고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강아지가 나의 정성으로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란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된 것처럼 나의 노력과 희생으로 나의 배우자와 나의 가족이 무탈하게 산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보상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고 강요를 하니 서로가 불편하고 불행해지는 것이다. 보상을 기대한다는 것은 상대방은 원하지도 않는데 내가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이고 이건 사랑이 아니라 투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반드시 보상해줘야 하는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을 굳이 받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반드시 보상해줘야 할 사랑이라면 많이 부담스러운 사랑인 것이다. 은행처럼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인데,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다. 보상을 따로 바라지 않는 수준에서 노력해야 한다. 그 수준이 자신의 현재 사랑의 크기인 것이다.


갓난아기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어떠한 희생과 노력도 한다. 정말 위대하고 감동적이라고 할 정도의 사랑이다.


그러나 이제 갓 사귀는 연인의 사랑은 어떠할까? 상대방을 위해서 어떤 노력과 희생을 할 수 있을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도 심하게 싸우는 경우가 많다. 알량한 자존심 하나도 숙일 수가 없는 그런 사랑이 너무나 초라해 보이고 작아 보이기 때문에 과장되게 노력이란 것을 하게 된다. 즉, 보상을 기대하고 많은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과장되게 노력하는 사랑은 반드시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초라하고 작아 보이는 사랑이라도 보상을 바라지 않는 수준에서 노력해야 한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그것이 현재 자신의 사랑의 크기이다. 사랑의 크기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고, 많은 노력을 해도 보상을 바라지 않게 된다. 


내가 현재 감당할 수 없는 그 이상의 노력을 하는 순간 보상을 반드시 바라게 된다. 바라는 보상이 오지 않을 때, 그 배신감과 후폭풍은 생각보다 크다. 이렇듯 거짓된 사랑은 많은 부작용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많은 노력과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고 자신이 아무리 우겨도 진정한 사랑은 될 수가 없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행복을 느끼는 것이 사랑이다. 나도 행복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미 보상이 된 것이고 나도 행복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다. 남녀의 사랑은 2~3년 정도 지나면 식는다고 흔히들 말한다. 지속 가능한 사랑을 하려면 상대방의 행복이 나의 행복으로 다가와야 한다. 상대방의 행복이 나의 행복으로 느껴져야 사랑이다. 


사춘기 시절부터 고통을 초월하는 행복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고통을 초월하여 행복을 느끼는 경지에 있는 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초월하는 크기가 사랑의 크기일 것이다. 사랑의 크기가 작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고통도 참아내기 힘들어진다. 반면 사랑의 크기가 커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어떠한 고통도 초월하여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이런 사랑과 행복을 배워, 아내에게 어머니의 사랑을 흉내 내고 있다. 아내가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내가 괴롭더라도 조금 참아가면서 괴로움이 행복으로 다가오는지? 어머니처럼 고통을 초월할 수 있는지? 어머니의 사랑과 행복을 실천해보고 있다. 다행히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괴로움은 맞서지 않고 피하는 수준에서도 아내는 행복하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조금 더 참아보고 노력해볼게'라는 마음을 서로가 가진다면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노력하는 그 마음이 순수해야 한다. 나의 노력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졌다면 그것으로 이미 보상이 된 것이다. 그런데, 나의 노력에 대한 또 다른 보상을 바란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투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 투자로 인정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투자를 해놓고 사랑이라고 주장할 때 많은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온 나의 어머니지만, 그런 어머니에게서 나는 사랑과 행복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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