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이. 남해여행 2박 3일.
의도치 않은 실수로 하루 밤 남녀 합방을 하고 나니 한층 더 편안하다.
남자들은 편백나무 숲으로 아침 산책을 나가고 여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주방으로 모여든다.
매년 아침 식사 메뉴는 떡국이다.
공복에 뜨거운 물을 찬물에 섞어 마시는 음양수를 마신 후, 무가당 요플레와 사과 반쪽씩.
아침 식사는 소고기 양지를 듬뿍 넣고 달걀과 대파로 마무리한 떡국을 먹었다.
반찬은 여행 출발전날 담근 김장김치와 직접 만든 토하젓, 견과류 볶음이다.
전라도 토박이로 음식 솜씨 좋은 동료 부인 덕분에 아침부터 배부르게 먹으며, 다이어트는 여행 끝나고 시작하는 거야.
비타민, 단백질, 탄수화물로 완벽한 한 끼 다.
"맛있다~아'를 외치며 "우린 자격증 없는 요리사들이잖아!" 하며 자화자찬을 한다.
아침식사가 끝나니 약속이나 한 듯 약 보따리를 들고 와서 한주먹씩 약을 챙겨 먹는다.
허리 아픈 사람, 무릎관절이 안 좋은 시람,
각종 성인병으로 약을 복용하는 사람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대화의 주제도 당연히 건강 이야기다.
매스컴의 영향인지 모든 사람들이 의학박사다.
허리 아픈 사람에게는 요가를 잘하는 사람이 강사로 나서 시범을 보여주면 다 따라 한다.
당뇨병은 거꾸로 먹는 식사법과 하루 세 번 식후 20분 걷기를 알려준다.
20년 넘게 당뇨병을 합병증 없이 유지하고 계신 분 이야기다.
건강하게 몇 년을 더 여행 다닐 수 있을까? 십 년은 다니겠지? 가능할까? 무슨 소리 20년은 더 다녀야지!
충분히 가능하니 관리 잘합시다.
가장 인상 깊은 다랭이 마을.
높은 산과 앞으로 펼쳐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가파른 비탈길에 석축을 쌓아 계단식 논을 일구어 놓은 곳으로, 이곳 마을 사람들의 억척스러움과 고생스러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겨울에 남해 시금치는 해풍을 맞고 자라 달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마을 입구에서 시금치를 팔기에 바닷가까지 내려갔다 오면 다 팔리고 없을까 봐 미리 사서 차에 넣어뒀다.
한참을 내려가는데 나이 드신 어르신이 "시금치 좀 사가세요" 한다.
"어쩌지요?" 다 사버렸는데 하며 여기서 팔면 안 팔릴 테니 입구로 올라가서 파세요. 말씀드리니,
"내가 다리가 아파서 올라갈 수가 없어요". 그 말을 뒤로하고 바닷가까지 다녀오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시금치 사드려야 할 것 같다는 내 말에 일행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그냥 못지나 가겠지요?
마음 편하게 사 드립시다.
그 말 만으로도 편안해졌다.
올라오니 또 "시금치 좀 사가세요." 한다. "세 봉지 주세요."
나물도 무쳐먹고, 국도 끊여 먹고, 소고기전골도 해 먹고, 요즘 채식위주로 식사하는 며늘아기도 한 봉지 주면 되지.
건강하세요! 인사하고 돌아서며, 1만 5천 원 쓰고 나니 마음이 이렇게 홀가분한걸...
근데 많아도 너무 많다. 세 팀 모두 커다란 비닐봉지로 한가득씩 담긴 시금치가 두 봉지씩이다.
당분간은 날마다 시금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