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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캘리그래피 수업

사람사이. 수업 마지막날

by 샤이니


아직 먼 곳까지 나들이는 무리인데 가까운 거리에 있는 복지센터 수업이 몇 번 남지 않아서 힘들지만 수업에 참석했다. 여행 가느라 빠졌던 3주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빠지게 된 한 달, 5개월 수업을 거의 두어 달을 결석하다 보니 몇 번 나가지 않고 마지막 수업날이 돼버렸다. 결코 무책임하거나 성의 없는 사람은 아닌데 결론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이사하고 일주일 만에 시작한 수업이었다. 처음 찾아간 복지관에 첫 수업이 낯설었지만 선생님을 비롯해 수강생들의 수업시간이 편안했다. 어디나 사람이 모이는 곳은 텃세가 있기 마련인데 이곳 분위기는 달랐던 거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오래된 동기들처럼 동화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수업이 더 재미있고 적응이

빨랐다.


여행 다녀오면 그곳에 특산품을 사 와서 나눠 먹기도 하고, 농사지은 애호박이 잘 자랐다고 하나씩 가져가라며 무거운 걸 챙겨 오는 따뜻한 마음, 친정집에 보리수와 앵두 따러 가자는 수강생들의 부담 없는 푸근함이 너무 좋았고, 집에서 간식거리를 챙겨 와 쉬는 시간에 수다 떨며 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수업시간이 너무 재미있다. 자아도취인지 몰라도 나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나 싶다.

좀 더 일찍 재능을 발견했다면 다른 길이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이제라도 열심히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마음의 여유로움을 느껴보자.


캘리그래피와 수채화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사고 후유증의 통증도 잊어버리고 아무런 잡념도 생기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상하다. 요가시간에 명상을 하려 해도 집중이 잘 되질 않고 평소에 생각조차 안 해본 엉뚱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도는데 상상조차 못 한 곳에서 깊은 명상에 잠기는 듯한 기분이다.


수업시간에 과제물을 다 할 수 없으니 집에 들어서면서 시작한다. 몇 시간씩 붙들고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든다. 식사시간도 한참을 지나있다.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그렇게 재미있어? 우리 저녁 먹고 하면 안 될까? 한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식사가 끝나면 설거지는 남편 몫이다. 하던 거 마무리하라며 말없이 도맡아 뒷정리해 주는 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하고 싶은 만큼 하다 잠을 청한다.


오늘은 한 학기 수강이 끝나는 날이다. 7월 한 달은 쉬고 다시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며 마지막 수업이니 식사하고 헤어지기로 했다. 다들 식사 후 서운한지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자리에서 선뜻 일어서는 사람이 없다. 태어난 곳도 성장과정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가 제 각각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은퇴 후 모인 사람들이다. 남편이 태어난 고향이어서, 전원생활이 그리워서, 우리처럼 텃밭에서 농사짓고 싶어서 나름대로 이유와 목표를 가지고 삶의 터전을 옮겨온 외지인들이 대부분이다. 공통점은 나이가 환갑을 다 넘었다는 점이다. 60년 이상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대화의 폭은 무한정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살아온 삶을 책으로 써도 몇 권은 채워질 것 같다. 그중에 무시할 수 없는 게 건강이야기다. 건강상식 대화 중에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민간요법을 한 가지 이야기하고 싶다.


결혼초에 시아버님이 모임 가서 식사를 하고 오셨는데 식중독인지 엄지손가락 크기만 한 두드러기가 온 얼굴을 빨갛게 뒤덮었다. "아버님은 급하게 생녹두를 학독에 갈아라 " 허셨다는 말에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동생이 왜 믹서기에 안 갈고요? 묻는데 내 기억으로는 집집마다 믹서기를 사용했던 시절인지? 우리 집에만 없었는지 모르겠다.

물과 섞어 곱게 간 생녹두물을 그대로 한 컵 드시고 난 이후 10여분 지나니 곧바로 붉은색 두드러기가 옅어지며 줄어드는 게 확연히 눈에 띈다. 30분쯤 지나니 이제 괜찮아졌다며 편안해하셨다. 요즘 세상이 얼마나 살기가 편해졌고 의료기술도 좋은 시대에 무슨 구 시대적인 소리냐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요긴하게 쓰일 수도 있다 "녹두는 찬 성분으로 해열해독 작용을 한다고 알고 있다." 우리 집 열체질인 남편을 위해 상비약으로 오리지널 국산녹두는 항상 대기 중이다.(시중에 국산 녹두를 구입하기 어려워 직접 재배했다.)





다음 수강신청 빠짐없이 등록하고 남은 이야기는 다음 학기에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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