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경쟁이라는 거대한 환상
숨 막히는 대한민국, 당신은 행복한가?
알람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설렘이 아닌 조급 함이다. 우리는 아침 식탁에서부터, 아니 꿈속에서조차 누군가에게 뒤처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과 싸운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좀 더 빨리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을 던지고, 회사에 도착해서는 동료보다 더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 쉼 없이 자판기를 두드린다. 아이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로 향하며, 친구보다 영어 단어 하나를 더 외우기 위해 밤을 지새운다.
대한민국은 기적의 나라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우리의 문화는 세계를 매혹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최첨단 도시의 불빛 아래 서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
이 질문 앞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통계는 차가운 진실을 말해준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 가장 낮은 출산율,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 시간과 항우울제 소비량, 바삐 가다가 극한의 공포가 엄습해 오는 공황장애, 이것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성취 뒤에 감춰진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우리는 '생존'했다. 가난을 물리쳤고, 배고픔을 해결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삶의 질을 고민할 줄 알았는데, 우리는 오히려 옆 사람보다 더 좋은 차, 더 넓은 아파트, 더 높은 직급을 얻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공기는 미세먼지로 탁하지만, 우리 마음은 '비교'와 '질투'라는 먼지로 더 탁하게 숨이 막혀온다. 숨 막히는 대한민국,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죽지 않으려고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왜 옆 사람을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나? “
우리는 원래 이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콩 한쪽도 나눠 먹던 민족이었고,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던 공동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 옆의 친구가, 함께 일하는 동료가 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비극의 씨앗은 교실에서부터 뿌려진다. "옆 친구를 이겨야 내가 좋은 대학에 간다." 이 잔인한 명제는 우리 교육의 제1원칙이 되었다. 상대평가라는 시스템 안에서 친구의 성취는 곧 나의 실패를 의미한다. 친구가 문제를 틀려야 내 등급이 올라가는 제로섬(Zero-sum) 게임! 이 살벌한 전쟁터에서 아이들은 '우정' 대신 '전략'을 배우고, '협력' 대신 '각자도생'을 체득한다.
이 슬픈 학습은 사회로 그대로 이어진다. 기업은 성과 연봉제와 승진 누락이라는 채찍으로 구성원들을 몰아세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동료의 실수를 기회로 삼아야 하고,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후배의 성장을 견제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좁은 사다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위로 올라가려면 누군가를 발아래로 밀어내야 하고, 밀려나지 않으려면 아래에서 올라오는 손길을 뿌리쳐야 한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거대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아파트 평수로 계급을 나누고, 연봉으로 인격을 재단하며, 사는 지역으로 사람을 차별한다. 타인은 더 이상 함께 살아갈 이웃이 아니라, 내가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이거나 나를 무시할지 모르는 잠재적 적일 뿐이다. 이 적대적 긴장감이 우리를 외롭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며, 끝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든다.
”경쟁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자연의 법칙이다. 이기지 않으면 죽는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이기는 습관', '1등의 전략', '경쟁 우위'를 다루는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우리는 세뇌되었다. 경쟁 없이는 발전도 없고, 행복도 없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감히 단언한다. <경쟁은 환상이다> 그것은 자연의 절대 법칙이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만들어진 사회적 발명품이자 시스템일 뿐이다. 인류의 역사를, 그리고 생명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라. 40억 년 생명의 역사에서 살아남은 종들은 가장 강하고 난폭한 포식자가 아니라, 가장 잘 협력하고 공생한 생명체들이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것 또한 맹수보다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돕고 지식을 나누는 '사회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쟁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아니, 경쟁을 멈추고 선택해야 비로소 진짜 삶을 살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경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쟁이 과잉되어서 생긴 부작용들이다. 우리가 경쟁을 '필수'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시스템의 노예가 된다. 하지만 경쟁을 '선택'이라고 깨닫는 순간, 우리는 주인이 된다. 달리기 경주에서 이기는 법을 연구하는 대신, 트랙 밖으로 걸어 나갈 자유가 우리에게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1등의 저주와 꼴찌의 공포는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게임이다 “
경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경쟁이 있어야 발전하고, 1등이 되어야 행복하지 않겠는가?"
과연 그럴까? 경쟁 시스템이 만든 가장 큰 비극은, 이 게임에 참여하는 한 그 누구도 진정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먼저 '꼴찌의 공포'를 보자.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패배감과 자괴감에 시달린다. 사회는 그들에게 "노력이 부족했다"라며 낙인을 찍고, 모멸감을 준다. 그들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시스템의 잉여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이것은 명백한 사회적 폭력이다.
그렇다면 1등은 행복할까? 이것이 바로 '1등의 저주'이다. 정상에 선 자는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더 큰 불안과 강박에 시달린다. 언제 추락할지 모른다는 공포,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경쟁자들뿐이라는 고독감이 그들을 잠식한다. 1등을 해본 아이들이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성공한 기업가들이 공황장애를 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등에게 세상은 즐기는 곳이 아니라, 끊임없이 방어해야 하는 요새일 뿐이다.
결국 무한 경쟁 사회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오직 불안에 떠는 '러너(Runner)'들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결승선 없는 트랙 위를 달리는 다람쥐 쳇바퀴 신세다. 내가 빨리 달릴수록 쳇바퀴는 더 빨리 돌아가고, 우리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멈출 수 없다.
이제, 트랙 밖으로 걸어 나올 시간이다.
이 글은 당신에게 "더 빨리 달리라"라고 채찍질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제 그만 멈춰 서도 괜찮다"라고 말해주기 위해 쓰였다. 정확히 말하면 달려야만 하는 형국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찾기 위해 쓰였다.
나는 이 글을 통해 '경쟁은 환상'이라는 명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증명하려 한다. 경쟁이 만들어내는 병리적 현상들을 진단하고, 세상이 우리에게 주입한 경쟁의 거짓말들을 해체할 것이다. 그리고 경쟁이 아닌 다른 방식—양보, 사랑, 희생, 공생—으로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이끌어 온 증거들도 제시할 것이다. 각계각층에서 성공한 이들의 성공방정식을 분석하고 그속에 숨겨진 자신과의 싸움, 그리고 인류를 향한 사랑으로 위업을 달성한 것 등도 검토해 볼 것이다.
또한, 우리 한민족의 DNA 속에 흐르는 '홍익인간' 정신과 '경쟁'의 구도를 비교하여 볼 것이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그 숨 막힘, 불안, 외로움은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다. 당신이 잘못된 트랙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고개를 들어 앞사람의 뒤통수가 아닌, 옆 사람의 눈을 바라보라. 그리고 용기를 내어 그 끝없는 경쟁의 트랙 밖으로 한 발짝 걸어 나오라.
그곳에 비로소 '나'라는 우주가 있고, '우리'라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 경쟁은 지옥을 만들지만, 사랑과 양보는 천국을 만든다. 승리하는 삶이 아니라,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완성'되는 삶으로 나아가는 여정. 그 치유와 해방의 길로 당신을 초대한다.
이제, 함께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