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기 싫다. 나는 BMW가 좋다. Bus(버스), Metro(지하철), Walk(도보)만 있으면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고 지하철을 타고 극장에 갔고 걸어서 시장을 갔다. 자동차에 비해 가성비가 높고 주차 걱정 안 해도 되고 도로 사정에 영향을 덜 받고 앉을자리라도 생기면 쉬거나 졸아도 되고 책을 읽을 수도 있으니 매우 편리하다. 나 같은 전업주부는 출퇴근 시간의 만원 버스나 혼잡한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이동수단이 있으랴.
나는 어릴 때부터 BMW를 애용했었고 결혼 후에도 내 소유의 자동차가 없어 자연스럽게 BMW를 주로 이용하였다. 우리 집은 한 대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고 주로 남편이 이용한다. 게다가 오랫동안 살았던 과천의 아파트는 주차가 너무 어려웠다. 지은 지 40년 넘은 아파트에는 지하주차장이 없었다. 부동산 사이트에 소개에 의하면 세대 당 0.2대만 주차가능하다고 되어 있을 정도로 주차장이 열악했다. 차를 운전하고 나갔다 돌아오면 주차 자리를 찾아 주차장을 몇 바퀴 돌아야 했고 자리를 찾아도 차 여러 대를 밀어야만 겨우 주차가 가능했다. 나는 어쩌다 가끔 했던 운전을 점점 안 하게 되었다.
살아보니 BMW로 충분했다. 서울과 수도권의 대중교통은 외국인들도 찬사를 보낼 정도로 편리하고 안전하다. 나이 더 들면 걸어서 병원도 가고 은행도 가고 동네책방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카페도 갈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속에 품었었다.
이럴 수가. 나의 BMW를 잃었다. 시골은 BMW가 불가능하다. 우리 동네는 시내버스가 하루에 5번 들어온다. 두 번 버스를 타고 볼일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볼일은 30분 만에 끝났는데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2시간 동안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볼일을 여러 개 묶어 한 번 나간 김에 다 해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매 번 그럴 수는 없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산, 들, 논. 밭뿐이다. 우리 마을은 초등학교 아이들도 걸어서 등교하지 않고 스쿨버스를 탄다. 심지어 시골길은 골목길, 논두렁 길, 밭두렁 길을 제외하면 사람이 아니라 차 우선이다. 걷기에 안전하지 않다. 지하철은 당연히 없다.
그래서인가 시골은 집집마다 차가 많다. 운전만 할 수 있으면 자동차이든 트럭이든 탈 것을 소유하고 있는 것 같다. 1인 1대인가? 나도 자동차를 장만하고 운전을 해야 하나? 볼일이 있을 때마다 남편에게 부탁해야 하는 것이 점점 미안하다. 미안하다 못해 귀찮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지도 않는다. 동네책방 ‘책숲’은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데 아직도 가보지 못했다. 남편에게 부탁해 한 번 갔었지만 하필 그때 책방 문이 닫혀있었다. 자유를 위해 운전이 필요하다.
얼마 전에 남편이 많이 아팠다. 내가 운전을 해서 아픈 남편을 태우고 병원에 가야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몇 년 전 우리 집 자동차를 세단에서 차체가 큰 SUV(스포츠형 다목적 자동차)로 바꾸고는 덩치에 압도되어 한 번도 핸들을 잡아본 적이 없다. 결국 아픈 남편이 운전을 해서 응급실로 갔다. 웃기고 슬프다. 만약의 사태를 위해 나도 운전을 하기는 해야 한다.
소득이 줄어들어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있는 판에 자동차를 하나 더 소유한다는 사실도 마뜩잖다. 자동차는 유지비가 많이 든다. 움직일 때마다 자가용 대신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돈이 덜 든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유지비는 물론이고 지구와 환경을 위해서라도 나까지 자동차를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나는 운전이 싫다. 하지만 운전을 하지 않으면 집에서 꼼짝도 못 한다. 자전거를 탈까? 도서관까지 왕복 20km이다. 내가 책 한 권 빌리겠다고 그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까? 아니면 택시를 타면 될까? 택시비가 책값보다 비쌀 것 같다. 아. 싫다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