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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알송알 Feb 20. 2023

우리 집 첫 된장, 맛있게 해 주세요

생애 첫 장 담그기를 했다


“장을 담근다고, 왜? 우리 둘이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그래. 사 먹으면 되잖아. “

처음에 남편은 장 담그기를 반대했다. 나는 담그고  싶었다. 지금껏 친정엄마표 된장, 간장과 고추장을 먹었다. 예전에 몇 번 엄마의 된장이 똑 떨어져 시판 된장을 사 먹은 적이 있다. 맛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아서 그랬는지 암튼 찌개를 끓여도 국을 끓여도 나물을 무쳐도 내가  알던 된장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추장은 마트에서 사 먹어도 친정엄마의 맛과 큰 차이가 없었는데 된장은 아니었다. 친정엄마의 된장을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때가 오면 시장에서 사 먹어야지 했던 생각이 걱정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장을 담가야겠다.


마음은 먹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친정엄마표 된장을 여전히 먹을 수 있었고 아파트에 산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뤘는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햇빛과 바람이 통하는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된 내가 엄마에게 된장을 드려야 할 때가 되었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장 담그기를 힘들어하셨다. 장 담글 때가 되었다.


“메주는 사자. “

“물론이지. 메주를 만들고 싶어도 지금은 늦었어.”

이웃사촌 시누이가 도와주겠다고 하자 남편의 마음도 돌아섰다. 인터넷 지식인들의 집단 지성을 눈으로 읽을 때는 생기지도 않던 용기가 시누이의 도움에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메주를 5덩어리 샀다. 우리 집 첫 된장이 될 메주다. 깨끗하고 이쁘다. 어릴 때 못생긴 친구들을 옥상에서 떨어진 메주(옥떨메)라고 놀리곤 했는데 왜 그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장 담그는 날을 잡아야 한다. 주로 음력 1월에서 3월까지도 장을 담근다.  지금은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아 음력 3월에는 잘 담그지 않는다고 들었다. 기온이 높아 상하기 쉽다. 쌀쌀한 정월에 담그면 장이 상할 염려가 없어 아무 날에 담가도 상관없지만 12 간지 중에 말에 해당하는 날이거나 손 없는 날에 담그기를 권한다. 말날은 양의 기운이 왕성하고 대지의 기운이 솟아나는 날이라 장을 맛있게 하는데 좋다고 한다. 2월 17일로 정했다.


날을 정하고 며칠 전부터 준비를 했다. 메주를 씻어 햇볕에 말리고 항아리도 깨끗이 닦아 말렸다. 장 담그는 날 만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소금물도 미리미리 만들어 두어야 했다. ‘우리 집 첫 된장 맛있게 해 주세요.’ 기도와 함께 새벽 약수터에서 물을 떠 왔다. 수돗물을 앞에 두고 기도를 할 수는 없잖은가.


“염도계가 있어야겠다. “

”달걀이 더 나아. 어른들의 지혜잖아. “

”그래도 기계가 더 확실하지 않겠어? “

소금물 만드는 것이 힘들었다. 된장 레시피에 숫자로 정해진 소금양을 막상 눈으로 보니 어마어마하다. 이렇게나 많은 소금이 필요할 줄이야. 소금을 아무리 붓고 저어도 달걀은 눈꼽만큼도 떠오르지 않았다. 살짝 찍어 맛을 보니 토할 것 같았다. 엄청 짜다. 달걀은 미동도 하지 않는데 된장이 짜게 될까 지레 겁난다. 소금을 그만 넣어도 될 것 같은데? 고민 끝에 어른들의 지혜를 믿고 따르기로 했다. 염도계도 없는데 어쩌겠나.


”우와~ 뜬다 뜬다 뜬다. “

”10원짜리 동전만 한가? 500원짜리 정도 되나?”

“아닌데. 작은 것 같아. 소금을 더 넣어보자. “

달걀이 500원짜리 동전만큼  떠올랐다. 소금물을 다 만들었다.


장 담그는 날!

D-day에 할 일 이 가장 적은 작업을 꼽아보면 장 담그기는 무조건이다. 생각보다 할 일이 적다. 항아리에 메주 넣고 소금물 붓고 고추와 숯을 넣으면 끝이다. 이제 매일 한 번씩 항아리 뚜껑을 열고 햇빛과 바람을 쐬는 일만 부지런히 하면 된다. 장 가르는 날까지 말이다.


우리 집 첫 장 담그기

장독대가 없어 일단 마당 데크에 항아리를 두었다. 햇빛이 잘 드는 곳이다. 항아리를 닦으며 꿈을 꾼다.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여 장 담그기를 해볼까.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들고 우리 집 마당 장독대에 두었다가 장 가르는 날과 장 나누는 날 다시 모여 자신들이 먹을 된장과 간장을 가져가는 모임을 만들어 볼까? 장 담그는 날, 장 가르는 날과 장 나누는 날은 잔칫날이 되겠구나. 김장하는 날은 김치와 수육을 먹으면 되는데, 장을 먹을 수는 없고 무엇을 나눠 먹으면 될까? 몇 명이나 함께 하자고 할까? 아무도 없지는 않겠지? 친정엄마는 총 감독하시라고 해야겠다. 장과 함께 내 꿈이 익어간다. ‘우리 집 첫 된장입니다. 맛있게 잘 되게 해 주세요.’


#브라보문경라이프?? 열 번째 #문경일기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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