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마디에 부고(訃告) 소식임을 알아차렸다. 함께 근무하던 30대 여교사가 급성 백혈병으로 발병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먼 길을 떠난 것이다. 직전 금요일 오후 항암치료 잘 진행 중이라고 잘 이겨내겠다고 통화 목소리 들려주었는데 주말에 갑자기 심정지로 의식이 없어져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한 채 1주일 만에 연락이 온 것이다.
' 지정 성분 헌혈'이 필요하다고 해서 관내 내부 네트워크 연락망을 통해 도움 요청을 했고, 여러 학교에서 연락을 주셨다. 까다로운 조건과 다른 지역까지 가야 하는 수고로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가족처럼 걱정해주며 참여해준 동료들 마음도 소용없게 되었다. 어린 자식들을 남기고 떠나는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겠지만 가는 길이 외롭지 않기를 기원했다.
(*지정 성분 헌혈 : 성분 헌혈은 혈액의 성분 가운데 장비를 이용하여 혈장, 혈소판, 백혈구만을 선택적으로 채혈하고 혈액의 나머지 성분은 다시 헌혈자의 몸으로 되돌려주는데 채혈한 성분이 필요한 환자를 지정하여 수혈받게 하는 것)
마스크 너머로 보았던 눈망울을 영정사진 속에서 뚜렷하게 마주하며 가슴이 미어졌다.
이틀간 장례식장에서 자리를 지키셨던 교장 선생님의 제안으로 화장장에는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 찾아온 동료들을 신경 쓰느라 가족이 온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고, 마지막 인사라도 가족끼리 편안하게 나눌 수 있도록 살짝 뒤로 빠져주는 것이 나을 것 같은 배려의 마음이었다.
담임선생님을 갑자기 떠나보낸 학급 학생들에게도 선생님과의 이별의 시간을 마련하였다. 학교 안에 추모 공간을 만들어 편지글을 쓰고 영정 앞에 나아가 잠깐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주었다. 편지와 꽃을 전달해도 좋고 울고 싶은 학생은 울어도 되었다. 이렇게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꽃으로 기억되기를 소원하면서 우울했던 6월이 빨리 멀어져 가기를 희망했다.
지난 2년간 나잇값을 하는 마음으로 학교 친목회장으로 봉사했다. 마음과는 달리 임기 시작과 더불어 코로나로 인한 개점휴업상태 같은 2년은 꿈만 야무진 친목 행사 계획으로 막을 내렸다. 직원 친목 여행도 어려웠고 전체 회식 한 번 못 하고 주문 도시락에 쌓여가는 일회용품들과 동료 교사가 떠나간 뒤 멍든 마음만 남았다. 5월 ‘스승의 날 자축 보물찾기 행사’ 상품으로 준비했던 사과즙과 매실액도 남겨두었는데 갑자기 떠나게 되어 끝내 전달하지 못했고, 장례식 후 교실에서 젊은 동료 교사의 유품을 정리하다 또다시 울컥 슬픔이 올라왔다.
어떻게 마음을 회복해야 할까?
위로가 필요하다. 시간이 약이고, 망각이라는 약도 필요하다.
학생이나 동료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경험은 머릿속이 멍해지는 심각한 스트레스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이별을 준비하고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자신에겐 아직 먼 이야기라 믿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삶과 죽음은 우리 인생에서 연속선상에 있는 과정이다. 늘 죽음을 준비하고 산다면 사는 시간 내내 힘이 들기도 하겠지만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때가 되면 준비를 해야 한다. 세상에 온 순서대로 가면 걱정이 덜 한데 지켜지지 않는 불공평에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 ‘때’를 알 수 없으므로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힘을 내라고
이제부터 잘하면 되잖아.’
...
- 이해인 님의 <<나를 위로하는 날>> 중에서. -
인연을 맺은 사람들 특히 직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동료들의 일상이 순조롭기를 바라며 따뜻한 눈인사가 필요하리라. 어느 날 갑자기 인사도 없이 헤어짐을 겪지 않도록 마지막 눈길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매일 미소를 보내자. 서로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남겨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위로가 필요할 땐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요?” 한마디 건네는 것으로 충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