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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쓰장 Jul 01. 2022

당신의 고객은 누구입니까?

고객의 소리를 들어라.

  출근 후 보건실 문을 열자마자 출입문 밖에서 빼 꼼이 고개를 내미는 2학년 현종이!

    

  “현종아 안녕? 아침부터 무슨 일 있니, 어디가 아프니?”

  “아뇨. 보건 선생님께 그냥 인사하려고 왔어요.”

     

  그러면서 잠깐 방심한 사이 내 허리를 살포시 껴안고 안겨 온다. 신체접촉이 민감한 시대라 나는 깜짝 놀랐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덩달아 안아줬다. 1학년 때 보건실을 자주 드나들던 꼬마 고객인데 아침부터 작은 미소를 건네주고 갔다. 보건실에 오는 사람들이 나의 소중한 고객이고 종종 나에게 감동을 주고 간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날이었다.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현대에는 어느 집단에서든 고객 중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심지어 서비스로봇, 어르신들의 대화 친구 등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계음조차 고객의 감동을 끌어낸다.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마스크를 착용해주세요”라는 기계음 안내방송에 무의식적으로 “네”라고 대답하는 승객을 보고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기계음과 소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딸과 함께 대형마트의 음식 코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한쪽에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손님이 비운 뒷자리를 정리하기 위해 대기 중인 어르신 근로자가 보였다. 옆자리에는 아이들이 바닥에 흘린 아이스크림과 테이블에 수북이 쌓인 쓰레기 포장지를 그대로 둔 채 자리를 뜨는 젊은 엄마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느새 달려와 아무 말 없이 끈적이는 바닥을 닦아내는 청소 근로자에게서 느껴지는 성실함에,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내가 괜히 미안해지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엄마, 저 장면을 보니 내가 나간 뒤 다시는 오지 않았으면 하는 손님으로 기억될까 두렵네요.”

  “그래, 정리라도 하면 낫지. 앞으로 너의 식탁 뒷자리는 기대해도 되겠구나.”


  대학교 기숙사를 퇴사하거나 여행지 숙박업소를 이용하고 난 뒤의 뒤처리 장면이 심심치 않게 기사화되었다. 서비스 대가를 지급했으니 고객의 정당한 권리라는 그 말도 맞다. 고객이 왕이라는 인식은 고객과 서비스 제공 양측에서 서로를 좀 더 배려할 때 효과를 거둔다. 고객이 왕처럼 행동해야 진짜 대접을 받을 수 있고, 왕 같은 고객을 만나면 진짜 서비스를 해주고 싶을 것이다.   

 



  학교 고객님은 누구일까?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일반 사기업처럼 학교 구성원을 고객에 비유해 이야기한다는 생각 자체가 무리한 발상인지도 모른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위치가 영업이익을 얻기 위한 고객관리를 원하는 관계는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객을 대하는 태도로 상대방을 최대한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살펴본다면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살펴보면 학생, 학부모, 교사, 직원, 지역사회 주민 등 학교를 찾는 모든 사람이 학교 고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고객의 지위 관계도 살펴봐야 한다. 학부모와 교사,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갑을 관계가 아니고, 그렇다고 봉건주의 시대처럼 주종관계도 아니다. 고객이 모두 동등해야 한다. 학교 구성원은 서로 갑을 상하 관계가 아닌 모두 주인이고 협력해야 할 관계에 놓여있다. 옛날에는 학교가 갑이었고 요즘은 학생 학부모가 갑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주변에서 학부모의 폭언에 시달리는 교사들을 본다. 학교폭력에 힘들어하는 학생과 학부모도 찾아볼 수 있다. 시대 상황에 따라 누구든지 갑과 을이 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서로 협력하는 평등한 학교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학생을 사이에 둔 줄다리기는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줄 뿐이다.

     

  나의 고객들에게 관심을 보여라.

  나의 고객님은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꼼꼼함을 제대로 활용해 보자. 다른 고객관리실이 그러하듯 방문객이 줄어들수록 그만큼 웃는 사람이 많아져서 좋은 일이겠지만, 보건실에 오는 고객은 내 손길이 필요해서 찾아오는 것이니 만족을 주어야 한다. 나의 황금기는 30년 넘는 동안 교육 서비스를 펼칠 수 있도록 함께해 준 ‘학교 고객님’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은퇴 후 내가 만나게 될 또 다른 사회로 돌려주어야 할 평생 서비스가 되기를 희망한다.


  가까운 곳에서 마주치는 나의 꼬마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날마다 학교에서 다양한 고객들을 만나는 일이 서로 소통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어제는 유치원 아이가 하굣길에 교내 차량 진입을 막는 차단시설물에 두피가 찢어져 셔츠 칼라를 빨갛게 물들이며 방문했었다. 이처럼 종종 응급처치 후 병원으로 보내는 날도 있고, 신체검사 기간에 구강 검사를 거부하며 도망가는 아이를 달래기도 해야 하고, 보건교육 시간에는 보건실을 잠시 담임교사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학생 건강 문제로 학부모의 상담 전화를 받기도 하고, 교직원이 건강 상담을 요청하는 날도 있고, 업무 관계로 출장을 가야 하는 일도 생겼다. 흐린 날이 있는가 하면 맑은 날도 많았다. 밀려드는 꼬마 고객들 속에 수업 종이 친다고 새치기를 하는 고학년 학생과 눈이 마주쳐서 살짝 눈을 흘겨주는 투정도 부릴 수 있었다.

    

  “선생님, 빨리 좀요. 나 바빠요.”

  “그래? 나도 지금은 너보다 더 바쁘단다.”

      

  정신없이 지나가는 시간 속에도 잠시 여유를 부리는 재미도 있었다.

  지난가을에는 뒤뜰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따온 탱자를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두었다. ‘탱자탱자 놀기 좋아하는 6학년 효빈이’가 잘 익은 노란 탱자를 보고 ‘탱자 맛이 유자 맛에 버금간다’라며 탱자를 얻어가기도 했다. 나는 그 말에 속아서 일부러 탱자 맛을 보다가 한쪽 눈을 찔끔 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탱자는 탱자일 뿐 유자 맛은 나지 않는다는 걸 미련하게 입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긴장하여 손가락 주변을 자주 뜯는 학생과 농담 섞인 말 친구도 해줬다.

     

  “오늘도 고기가 먹고 싶은가 보다. 손가락은 피가 나서 맛이 없는데.”

  “선생님, 연고나 얻을까 하고요. 제 손을 뜯어먹기가 가장 편안해요.”


  창가에 놓인 꽃기린 화초를 키우다 보니 사계절 내내 꽃이 피고 지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봄이 되면 새순을 내밀며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식물처럼 새 학기마다 아이들도 한 뼘씩 성장하고 있는 것을 바라다본다.


  나의 고객인 꿈나무들에게 관심과 사랑이 섞인 거름을 주는 마음으로 햇살을 마주한다.


교실 환경판에 붙어 있는 꽃송이가 예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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