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무언가를 하기 전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가 있다. 좀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만 더'를 속으로 외치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망설이거나 주저하곤 한다.
신중함과 소심함은 한 끝 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보다 결과를 먼저 본다. 누군가가 참았을 때 결과가 좋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신중한 판단이었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누군가가 참았을 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걸 보며 "소극적이었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든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나름의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그러나 과정은 결과에 따라 빛을 보기도, 보지 못하기도 한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28년 동안 틈틈이 고시 공부를 해 결국 변호사가 된 어르신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 만약 그 어르신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입 가벼운 사람들이 수군거리기에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지 않은 나이에, 그것도 10년 이상 한 분야에 도전해 결과를 거두지 못했다면 대부분은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합격했고, 자신이 노력한 대가를 마침내 얻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사회에서, '그냥' 해본다는 것은 철없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걸 왜 해?"라고 물었을 때 명확한 이유를 답하지 못하면 도전한 사람은 바보 취급받고, 질문한 사람은 똑 부러진 사람처럼 보이는 시대다. 자신의 인생이 간섭받는 것은 참지 못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시답잖은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흔하다.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좋아한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생소한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때 불안감을 느낀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을 해본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진정으로 힘들어 본 사람은 누군가의 힘듦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는 사람을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도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글을 써서 먹고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게 좋으니까, 퇴근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글을 써야만 에세이가 됐든, 소설이 됐든, 시가 됐든 어떤 방향이든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생각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만약 당신이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영어를 잘하는 것?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 아니다.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컴퓨터에 앉아 이력서를 쓰는 것이다.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말이 맞다. 대기업에 가기 위해 누워 있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과 관련된 그 어떤 것이라도 일단 시작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퇴근 후에 무언가를 하기엔 시간이 없다고 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았을 때 가장 쉽게 댈 수 있는 핑계가 '시간이 없어서'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되물어보라. 정말 당신은 시간이 없는 것일까? 습관적으로 메신저를 확인하고, SNS에서 흥미로운 피드들을 보며 웃고, 유튜브에 구독한 채널들의 영상을 보는 시간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우리에겐 시간은 늘 부족했다. 무언가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라고 다를까. 단언컨대 그들에게만 시간이 넘쳐나진 않는다. 그들만 하루가 25시간, 28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시간이 부족하게 살 것인지, 시간을 어떻게 서든 내서 무언가를 할지 말이다. 기억하라. 무언가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