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목표 중 글쓰기와 함께 세운 목표가 '운동'이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든, 건강하지 못하면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많은 운동들 중에서 내가 선택한 건 클라이밍이었다. 클라이밍을 선택한 이유를 굳이 꼽자면, 쉽게 질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마침 집 근처에 실내 클라이밍 센터가 있기도 했다. 화요일에 등록을 하고 목요일에 설레는 맘으로 처음 센터로 향했다.
도착해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굳은 몸을 푼 뒤에 직원분께 기초적인 설명을 듣고, 바로 실습을 시작했다. 기본적인 코스가 끝나고 나서 조금 난이도가 올라간 코스로 이동했다. 배운 대로 차근차근 튀어나온 홀드를 잡고 올라가는데 특정 부분에서 막히기 시작했다. 도전하면 할수록 점점 힘이 빠져서 나중엔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지칠 대로 지쳐 쉬었다가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벽에 기댄 채 앉았다. 앉아있는 동안 다른 분들이 클라이밍을 하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몇몇 분은 초보자인 내가 봐도 클라이밍 고수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능숙하게 홀드를 잡고 벽을 올라 어려운 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물론 그분들도 홀드를 잡고 올라가다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했던 건, 잡고 있던 홀드를 놓쳐 바닥에 깔린 매트에 떨어질 때 그분들은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곤 다시 벌떡 일어나 이전과는 다르게 홀드를 잡고 올라가려는 시도를 몇 번이나 계속했다.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이 제대로 잡지 못했던 홀드를 바라보는 모습은 실패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그들은 떨어지면 다시 일어나 또 도전했다.
그분들은 '떨어졌다'는 걸 실패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부끄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웃으며 일어나 계속해서 자신이 실패한 그 코스에 도전했다. 몇 번이나 첫 번째 홀드에서 떨어졌던 사람이 어느새 두 번째 홀드를 잡고 있었다. 이후로도 그분들은 수십 번이나 코스에 도전했지만 결국 그 코스를 완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분들의 표정엔 아쉬움이 묻어나지 않았다. 담담히 뒤를 돌아 또 다른 코스로 이동하는 모습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 수십 번이나 떨어졌고 코스의 절반조차 가지 못했지만, '저긴 언제든 오를 수 있다'는 포스가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늘 집에 가기 전까지 꼭 내가 도전한 코스 끝까지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도전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다 시간을 보니 센터에 도착한 지 1시간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절반 정도에서 멈춘 상태였다. 도전했다 쉬었다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2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도저히 완주하지 못할 것 같아, 주변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근처에 앉아서 쉬고 계신 한 분께 어떻게 하면 잘 올라갈 수 있는지 물었다.
이미 내가 올라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셨는지 구체적인 조언 몇 가지를 말씀해주시며 마지막에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처음에 너무 힘주시면 끝까지 못 올라가요. 힘을 뺄 곳과 힘을 써야 할 곳을 잘 구분하셔야 끝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생각해보니 계속되는 실패 때문에 시작할 때부터 이를 악물고 힘을 주고 있었던 모습이 떠올랐다. '떨어지면 안 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처음부터 너무 힘을 주고 올라갔으니, 끝까지 유지될 리가 없었다. 들은 조언대로 하나씩 차근차근 행동해보기로 했다. 무게 중심을 낮추고 위에 있는 홀드에 팔을 걸치듯 올린 후, 다리를 박차며 다음 홀드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 다음. 오히려 힘을 주고 있던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미 절반을 넘어 마지막 홀드만이 남아 있었다. 한쪽 다리로 홀드를 디딘 채 한 손으로 홀드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을 뻗어 홀드를 잡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힘을 주고 속으로 1,2,3 숫자를 셌다. 끝. 홀드를 잡고 내려올 힘도 없어 그대로 풀썩 매트로 떨어졌다. 해냈다.
거듭되는 실패는 자신을 위축하게 만든다.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누군가의 이유 없는 시선조차 날카롭게 날아와 꽂히기도 한다. 그땐 세상이 내게만 차갑고 모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상황이 괜찮아진 후 돌이켜보면 사실 가장 불안정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고 느낄 때가 있다.
힘을 빼야 할 때와 힘을 줘야 할 때. 말을 해야 할 때와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 행동해야 할 때와 행동하지 않아도 될 때. 무언가를 해야 할 때와 하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누구나 이것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해 상처를 받고,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살면서 매 순간 실패하며 살고 있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실패만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사람은 항상 불행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실패를 했다는 건 사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건실패 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우울감과 불안함에 쌓인 채 살아갈지,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다른 시도를 계속할 것인지는 오로지 본인의 선택이다. 앞으로 나도 어떤 실수를 저지른 후 느끼는 심한 자책과 스트레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몇십 번이나 넘어졌지만 자신이 실수한 곳을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보면 어떤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