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스마트폰을 보는 동안, 나는 너를 보았지

by Quat


저마다 만나고픈 사람에 대한 기준은 다르다. 다정한 사람, 할 말은 하는 사람, 한 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실력을 갖춘 사람, 외적인 부분이 뛰어난 사람.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행복할 거란 보장은 없다. 성인이 된 후 독립을 해서 자유로워지더라도 외로움으로 인해 힘들게 얻은 자유를 포기하는 것처럼, '원하는 것'과 '행복'이 언제나 일치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누구나 마음껏 사랑하는 동시에 사랑받길 원하지만, 그 단순한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느껴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오늘은 "같은 공간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때"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주말에 카페를 갔다. 카운터에서 주문을 하고 나서 자리에 앉아 함께 간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커플로 보이는 남녀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는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여자는 그런 남자의 곁에 앉아 그를 보며 조잘조잘 무어라 얘기하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남자는 그녀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채, 시선을 스마트폰에만 고정시켜 두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진동벨이 울렸는지 여자가 일어나 카운터로 걸어갔다. 남자는 여전히 똑같은 자세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여자는 자기 어깨만 한 쟁반에 음료와 디저트를 들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자 남자는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든 자세 그대로 엉덩이를 살짝 들어 옆으로 조금 움직여 앉았다.



'둘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머릿속에 이러한 의구심이 들었다. 설령 연인이 아니라 친구 또는 가족이라고 해도 썩 좋아 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슬쩍 그 테이블을 다시 돌아보자, 여자가 남자의 팔을 붙잡은 채 생글생글 웃으며 무어라 또 얘기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보고 웃고 있었고 남자는 스마트폰을 보고 웃고 있었다. 한 번은 여자가 고개를 쭉 내밀어 남자의 스마트폰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떴고, 남자는 자리를 일어서기 전까진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여자는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공간, 누구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둘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물론 그때 당시에 그들이 어떤 상황이었고 왜 남자가 스마트폰만을 보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 상황만을 놓고 보았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고, 남자는 대화보다 스마트폰 속 무언가에 더욱 집중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자신과 타인이 서로 비슷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느꼈을 때 순순히 인정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단순한 사실보다 복잡한 거짓을 선호하곤 한다. '그 사람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하기보단 '무언가 사정이 있었겠지'라며 자신을 위해 타인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그 사람보다 먼저 나서서 상대의 행위에 그럴듯한 이유가 있음을 만들어낸다.



사랑은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사람조차, 사랑 앞에선 궤변을 늘어놓거나 변명을 하기 바쁘다. 지금껏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힘든 사랑을 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의외로 평소 눈치가 빠르거나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알아서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쩔 때 그들은 자신이 상대로부터 받는 사랑이, 자신이 주는 사랑보다 적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대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살피지 못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분석한 뒤, 그것은 '정답인 것처럼' 스스로 받아들이곤 했다. 사실 가장 확실한 건 상대와 그러한 부분에 대해 대화를 해보면 되는 것뿐이었는데 말이다.






목적지가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방법이 나무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 결국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나는 '우리가 어디로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거기까지 함께 갈지' 또한 누군가를 만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생각하는 이상향이 같다고 해도, 그곳까지 가기 위해 추구하는 방법이 너무나 다르면 함께 길을 걸어가더라도 결코 즐겁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함께 가는 것에만 집중해 서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도 문제이다. 현재 발을 맞춰서 함께 걷는다는 즐거움에 빠져 멀리 내다보지 않으면, 그 길의 끝이 절벽 또는 늪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서 책임질 것들은 점점 늘어간다. 그러나 그것을 팽개친 채 하고픈 것만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그로 인한 대가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서로를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상대에게 때로는 쓴소리를 할 줄 알아야 하며, 상대가 자신에게 하는 직언에 대해서도 기분 나빠하기보단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카페에서 본 그들이 어쩌면 같은 종착지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내가 본 그들에게선, 함께 있다는 즐거움이 느껴지진 않았다. 정말로 서로를 깊게 생각했다면 여자는 남자에게 진지한 대화를 요청했을 것이고,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를 바라보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그들이 잘 맞다고 할 순 없다. 그들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와 반대로 멀지만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고 한들, 그곳까지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 다르다면 남과 다를 바 없지 않겠는가. 현재를 함께 하는 동시에,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 보며, 함께 앞으로 걸어 나간다는 것. 사랑할 사람이 필요해서, 사랑받고 싶어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관계의 지향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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