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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Jan 05. 2022

EP9. 월요일, 백수 외출하다...

월요일이다. 지하철 플랫폼은 분주할 것이고, 올림픽 대로는 꽈악 막혀 있을 것이다. 답답한 자동차들은 연거푸 매연만 내뱉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무겁게 종종 거릴 것이고, 환승역 문이 열리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월요일은 그렇게 평소처럼 분주할 것이다. 특히 오늘같이 연휴가 끝나는 월요일은 더욱더... 그리고 2022년의 첫 월요일은 더더욱 더.


첫째아이는 6학년 마지막 수업이라고 벌써 가방을 챙겨 현관문을 나서고 있다. 아내도 아이들의 식판을 치우며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있다. 둘째와 셋째아이는 화장실에서 힘주고 있는 나에게 양치 다해간다며 빨리 나오라고 똑똑 거리며 재촉한다.

월요일에 바쁜 모든 이들 안에서 느긋하다. 

'벌써 이메일 계정 삭제했나 보네...'

화장실 변기에 앉아 더 이상 회사 메일이 수신되지 않는 핸드폰을 습관처럼 뒤적거리며 웅얼거린다. 그렇게 원하던 조용함이었지만 창피하게 서운하다.

 

모자를 눌러 쓰고 가도 되지만 백수첫날부터 게을러지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기어코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다. 재택근무할 때 종종 어린이 집에 가지만 엄마들과 만나 인사하고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영 어색하여 마주칠까 땅바닥을 보고 다녔다. 이젠 아니다. 자주 볼 사람들이다. 당당히 고개를 빳빳이 들고 가슴을 내밀고 걷는다. 마침 4살 딸, 6살 아들을 등원시키는 엄마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친절히 인사를 받아주신다. 참 간사한 나다.


아이들을 등교 시키고 왔더니 아내가 부랴부랴 집을 나서려던 참이다.

"자기야, 어제 먹다 남은 부대찌개 있고, 저번에 해놓은 카레도 있고, 아, 맞다 볶음 김치도 냉장고에 있어, 데워 먹어"

"알았어, 알아서 먹을게 잘 갔다 와"

뭐 아침 차려 먹는 거 정도야...

백수의 첫 월요일 아침식사.

부대 찌개면 충분했다. 카레며 볶음 김치까지 필요없다. 밑반찬 몇 개 꺼내고 샐러드까지 꺼내니 상이 조촐하게 푸짐해진다. 재택근무 때도 이렇게 아무도 없는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곤 했지만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 앞으로 오랫동안 이렇게 해야 할 탓일까? 아니면 업무 걱정 없이 마음이 허해서 그럴까? 먼가 좋으면서도 뛸 듯이 기쁘진 않고, 뭔가 후련하면서도 아쉽다.

백수라고는 하지만 월요병이라는 개념도 없지만, 아니 이제 주말 월요일의 경계선도 모호해졌지만, 그래도 첫 번째 월요일이라고 할 일이 빼곡하다. 이미 백수의 동선은 몇 분 단위로 짜여 있다. 계획한 일들이 많다. 후다닥 여태껏 맛보지 못한 월요일의 아침을 빠르게 구겨 넣고 일어선다.


퇴사를 주위에 알렸을 때, 참 용감하다, 어떻게 세 아이의 아빠가 그런 결정을 했냐?, 뭐 할 꺼냐?, 이거 정신 나간 놈이네, 좀만 버티지 그랬냐?, 많이 힘들었냐?, 축하한다, 결정을 존중한다 등등 여러 반응이 많았다. 그중에 가장 많이 들은 말 하나가 "로또 맞았냐?" 였다.


'맞다, 로또 맞을 거니까 퇴사하는 거다' 

속으로 대답했다.


아무 생각 없이 쉬기로 마음먹었고 사표를 던졌지만 먹고 살 걱정이 된 건 사실이다. 아니, 무수히 많은 고민 중에 그게 가장 큰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일을 위해 살면서 노동이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했다. 주위에서 주식하는 후배, 부동산 하는 선배, 코인하는 동기 들을 속으로 비난했다. 불노소득은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희망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속으로 경멸 아닌 경멸을 다. 그렇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눈가리개 한 말처럼 앞으로만 달렸고, 닭장 속의 암탉처럼 알만 낳아대면서 살았다. 당연히 부동산, 주식, 코인, 연금, 펀드 등 투자 지식은 제로였다.


퇴사 하게되면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정도는 안되더라도 외식 줄이고, 먹을 거 줄이고, 살 거 안사고, 쓸 거 안 쓰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계산기를 두드린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살기에는 좀 두려웠다. 뭔가 그래도 놀면서도 소득이 있어야겠다며 염치없는 그 경멸스러운 생각을 하게 됐다. 헌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자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식할 수 있는 증권계좌조차 없으며, 코인은 이미 고점이라고 생각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곰곰이 고민하던 중, 나만의 투자 방식, 아니 많은 이들이 염원하며 투자하는 그 방식을 선택했다. 

바로 로또복권이었다. 


9월 중순부터 한주에 첫 출근 하는 날만 로또를 샀다.  5천 원 수동, 5천 원 자동 방식으로 투자를 했다. 수동은 A,B,C,D,E 숫자를 모두 동일하게 지정했다. 이왕 맞을 거 대박으로 맞자면서... 자동 방식은 그냥 일종의 안전빵이었다. 뭐 대박으로 안 맞아도 소소하게 자동에서 하나만 1등 맞자는 방식이었다. 그렇다 나는 로또가 당첨되기 전에 이미 당첨이 돼 있었던 것이다. 지갑에 두장의 로또를 접어 넣으며, 다섯 개 모두 1등 맞으면 100억대인데 어떻게 운영할까?, 부동산 50프로 주식 30프로 연금 20프로로 갈까?, 근데 자동에서 하나만 1등 맞으면 뭐 그냥 얼마 안 되는 돈일 테니 넣어두고 조금씩 쓰면서 다시 월급쟁이 하자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사모은 로또복권은 퇴직한 다음날, 즉 백수가 시작되는 날 기념선물로 오픈하기로 마음먹고 고이고이 모셔놨다.


그렇게 3개월 넘게 일주일에 장씩 산 로또복권은 서른두 장이 됐고, 2022년 1월 1일 저녁때가 돼서야 서른 두장의 로또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

.

인생 절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에이 설마 되겠어 중얼거렸지만 내심 맞길 바라며 QR코드로 빠르게 찍어 갔다. 역시 2등 근처에도 못 갔다. 결과는 4등 하나, 5등 다섯 개가 나왔다. 7만 5천원...

100억대를 노리던 이 어이없는 투자자는 7만 5천 원이라는 초라한 마이너스 수익률 앞에 어이없이 한번 웃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딴 투자방식은 하지 않겠다 마음먹였다. 7만 5천 원 당첨금을 모두 현금으로 바꾸기로 월요일 계획표에 적었다. 

참... 내 인생의 로또인 아내와 아이들을 에 두고 3개월 넘게 복권 구매하느라 고생 많았다... 으휴.

참고로 수동에서는 5등도 조차 나오지 않았다. 역시 로또복권은 자동이다!!!


모두가 출근한 월요일에, 

여유로운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를 따라, 

상쾌한 오전 공기를 마시며,

백수가 첫 외출을 나선다. 다이어리의 적힌 순서대로 움직인다. 최근에 삐걱거리는 무릎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정형외과부터 들렀다. 

"처음이세요? 저기 등록표에 먼저 좀 적어주세요" 

몇 가지 사항들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 데, 순간 멈칫한다. 직업을 적으라고 한다. 앞의 카운터에 앉은 조무사에게 들키지 않게 한참을 고민한다. 앞으로 당당히 무직을 숨기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 상태였지만, 월요일 첫 시작부터 장난질이다. '사무직'으로 펜을 끄적인다. 앞으로가 깝깝하다.

이리저리 엎드려라, 누워라, 무릎 굽혀라, 무릎 모아라, 여러 각도로 엑스레이를 찍어 댓지만 "단순 염증이네요, 우선 약물 치료해보시지요" 무심한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국에서 씁쓸히 약을 받는다.


다음 행선지는 복권방이다. 어찌 보면 서른두 장 중에 4등 한 장, 5등 다섯 장 나온 것도 대단한 당첨복권을 품고 복권방 문을 열어젖혔다. 오전부터 새해 희망을 사는 사람들이 좀 있다. 수익률 생각은 하지 않는 그들을 보며 얼른 빠져나오라 속으로 조언해준다.


"이거 전부 현금으로 바꾸려고요"

내 차례가 되어 여섯 장을 꺼냈다. 앞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던 복권방 아저씨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짐을 느낀다. 사람의 감정을 많이 신경 쓰는 나는 사실 복권방에 들어설 때부터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복권을 사는 게 아닌 현금을 타가야 했기 때문이다. 음식점에서 반찬 추가도 잘 시키지 못하는 예민했던 나... 당당한 권리인데도 불구하고...


"죄송한데요, 저희가 잔돈이 부족해서 그런데 다음에 바꾸시면 안 될까요?"

다시 웃는 표정으로 아저씨가 부탁한다. 열려있는 포스에 많지는 않지만 5만 원짜리와 만 원짜리가 보인다.  


"그냥 지금 받아 갈게요"

이제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며 살겠노라 다짐하고 시작하는 첫 월요일였다. 다음에 다시와도 되지만 고집을 피운다.


"저희가 장사를 해야 하는데, 잔돈 바꿔주고 나면 손님을 받을 수가 없어서요. 아직 은행도 안 갔다 와서 잔돈이 별로 없어서 그래요"

그럼 나는 손님이 아닌가? 잔돈이 떨어져서 진짜로 장사를 할 수 없다면, 잠시라도 문을 닫고 은행이라도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가지고 계신 걸로 바꿔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복권방에서 현금수령으로 요구하면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손님, 그래서 제가 양해를 구하고 있잖아요?"

양해수용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 바꿔 줄 수 없다는 건가요?"

물러 서지 않는다.


"아니 그래서 지금 양해를 구하고 있잖아요. 잔돈을 바꿔주고 나면 장사를 할 수 없다고요. 다음에 좀 오시라고요"

"저도 이거 바꾸러 일부러 나온 거예요. 그냥 지금 바꿔 주세요"

조목조목 흐트러짐 없이 따졌다.


"아이 씨, 아침부터"

역시 친절함 뒤에 숨긴 일그러진 본모습이 나온다. 아저씨는 약간의 욕설을 섞어가며 들고 있던 잔돈을 앞에 내리 던진다.

그런 불편한 행동은 평온하던 백수의 다짐을 휘휘 저어 놓는다. 배려 없는 사람에게 배려를 해줄 필요가 없다는 최근가치관을 불러일으킨다. 같이 고성으로 맞대응해 드린다. 나이 많으신 아저씨지만 동물의 왕국에서는 그딴 건 아무 소용없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으르렁대며 언제 시작될지 모를 피의 싸움은 다른 손님이 들어오면서 멈췄다. 아저씨는 다른 손님에게는 자신의 본성을 들키고 싶지 않았는지 잔돈을 내어주며 "연초부터 죄송합니다"라며 먼저 고개를 숙인다. 어른이 먼저 사과하니 갑자기 미안해진다. "저도 죄송합니다" 인사하며 도망치듯 나왔다. 불의에 대응한 게 아니라 백수의 자격지심이 아녔는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본다.


"스카웃, 결국 우리가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멋지단다."

- 앵무새 죽이기(저자: 하퍼 리) 중에서-


다음 행선지는 금 거래소다. 세공하지 않은 금가락지를 회사동료들이 십시일반 모아 퇴직선물로 줬다. 어차피 어떤 기념 표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렁주렁 장신구를 매달고 다니는 스타일도 아니고 모셔두기에는 자리만 차지할 것 같아 바로 유용하게 쓸량으로 현금화하기로 했다. 1.5돈이라 얼마 되지도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래프상으로 금 값어치가 최근 몇 달간 중에 최고치를 찍고 있다. 꽤 두둑한 현금으로 돌려준다.

  

복권 바꾼 돈과 반지 판 돈을 현금 5만 원만 지갑에 남겨 놓고, 전부 나의 로보어드바이져에게 송금한다. 투자자로서 문외한이기에, 아직은 정보를 알아볼 수 없기 때문에, 굳은 심지를 가지고 등락장에 버틸 낼 재간이 없기, 컴퓨터에 맡겨보기로 한다.

투자시프트 저자:김광석,김영빈 / 위드코로나 2022년 경제전망 저자: 김광석

'투자 시프트', '위드코로나 2022년 경제 전망' 자본주의 부적응자인 나를 조금이나마 세상 밖으로 이끌어 준 책이다. 내 기준에서 저자 김광석 이코노미스트는 정말 똑똑한 사람인 것 같다. 똑똑해질 수 없다면 똑똑한 사람을 따라야겠다고 생각하고 조금씩 움직여 보기로 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로보어드바이져 앱들을 뒤져보기도 했고, ETF니, 중계형 ISA니, IRP라니 포털 검색창에 타자도 쳐봤다. 참 바보 같이 살아온 것 같다. 물론 이것들이 생계는 되지 않겠지만, 불노소득도 가치가 있다고 깨닫는 중이다.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거라는 방어막은 유지하려 한다. 돈이 좋기는 하지, 가치 있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에 수익을 더하면 금융이 되고, 금융에 가치를 더하면 행복이 된다."

- 부의 진리(저자:이영주) 중에서-

한참을 돈 버는 방법만 심취해있을 때, 저 문구가 뒤통수를 한 대 때려줬다.


2021년까지는 다니던 회사에서 연말정산을 해주니 제출해야 할 안경구입비 영수증을 안경점에서 받아 든다. 문방구에서 앞으로 백수생활 동안 쓸 필기도구를 구입한다. 그리고 급하게 도서관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직은 오전이지만 할 일이 산더미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부산을 떨던 중,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잠시나마 여유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발걸음을 멈춘다. 잠시 고민하다 지나다니면서 항상 보던 한적한 곳의 햄버거 가게갑자기 뱃머리를 튼다. 

'저 이층에서 흐느적하게 햄버거나 뜯고 다...' 출퇴근하며 그리던 꿈이였었다.


백수의 여유 한잔과 질펀한 칼로리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1층에 사람들이 꽤 있고, 드리이브 뜨루에도 차들이 줄지어 있다. 발걸음을 잘 못 했나 2층에 올라가 본다. 꿈에 그리던 텅빔이다. 페스트푸드점에 누가 이렇게 여유를 즐기러 오더냐? 수시로 울려대던 단톡방들은 조용히 없어졌고,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던 핸드폰의 이메일은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Fast를 표방하는 이곳에서 Calm을 즐기고 있다.


여유를 만끽하고 도착한 도서관 열람실에는 앉을자리가 별로 없다. 동병상련의 동지들이 많나 하고 둘러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별로 없는 것이었다. 다행히 할 일 많은 백수를 위한 자리가 남아 있었고 이것저것 펼쳐놨다.


읽으며 머릿속에 남기고 싶은 책들을 백수 되면 꼭 정리하겠노라 다짐 한 터였다. 키보드의 다닥 거림보다 펜의 각 거림을 많이 느껴보고 싶었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새겨 나갈수록, 한 권 두 권이 내 가슴에 겨질수록... 도서관 공기가 풍성해 진다.


할 일 많은 백수는 그의 월요일을 그렇게 과분하게 즐기고 있었다.


고맙다. 꿈에 그리던 지금 이 순간이...





* 백수의 하루를 너무 미화 시킨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실 분들은 없겠지만, 혹시 나도 한번 백수나 해볼까 하시는 분들이 없길 바라겠습니다. 앞으로 시련과 고난이 예견되어 있는 초짜 백수의 1일차 일기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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