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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엉이 아빠 Jan 01. 2022

EP7. 코디네이터

EP7. 코디네이터

40대에 접어들기 전까지는 돌을 씹어 먹어도 몸에 좋은 영양분으로 흡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론 그건 알코올도 마찬가지였다. 20대에 아무리 먹어도 끄떡 없던 나의 러브 핸들은 30대에 이르러서 점점 부풀어 올랐다. 이 정도는 애교다, 이 정도는 섹시하다, 느꼈던 그 안전 불감증은 결국 자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데...


회사 동료들끼리 용돈벌이나 하자던 임상실험 참여... 몸무게를 측정하고, 피를 뽑고, 키를 재고... 건장한 실험대상인지 확인하는 그 아무것도 아니였던 테스트에서... 탈락했다.

"선생님은 임상실험이 아니라 병원을 가봐야겠는데요?"

"제가요?"

"간수치가 너무 높아요. 요즘에 피곤 못 느끼셨어요?"

열정으로 똘똘 뭉친 나에게 피곤함이란 알량한 사치일 뿐, 그따위를 느낄 겨를은 없었다.

당연한 듯 참석하는 회식에서 상대방 기분을 맞추려 부어라 마셔라, 내 몸을 돌보지 않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강인한 몸이 점점 병들어 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20대의 몸무게에 비해 20kg 이상 불어있는 것을 인지한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구나 나의 장기야, 나의 뱃살아...


티비에서 방영한 다이어트 다큐멘터리를 보고 흥미를 가졌고, 그와 관계된 몇몇 유투버의 강의를 듣고, 나름의 공식을 만들어 봤다. 질량 보존의 법칙과 열역학과 호르몬 의학을 기초로 한 다이어트법을 내 몸에 적용해 본 것이다.

 

1. FMD(Fasting Mimicking Diet) 식단.

2. 간헐적 단식.

3. 유산소 운동.

세 가지를 버무린 다이어트 방법. 아니 다이어트가 아니라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 '체질 개선 법'이라 할 수도 있겠다.


닦아야 할 더러운 기름을 2번을 이용해 데우고, 1번을 사용해 묽게 만들고, 3번으로 깨끗이 닦아낸다고 볼 수 있다. 방카 C유를 만져본 사람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좀 더 일반적으로 설명하자면 필수에너지원과 영양소는 공급하되, 몸에 들어오는 열량 자체를 적게 만들고, 체내에 쌓인 열량을 쉽게 분해할 수 있게 만들고 효율적으로 태우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원리다. 그리고 우리는 예전부터 이렇게 살 빼는 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단, 실천이 안 된다는 . 세 가지의 방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한다는 . 하다가 힘드니 포기한다는 . 그러면 반드시 요요가 온다는 것.


확신을 가지고 임했다.

24시간 간헐적 단식 중 옆에서 놀려대며 군것질하고 있는 아내를 참아내며...

공복 18시간이지만 온 힘을 다해 조깅하며...

풀때기가 어떻게 밥이 되냐며 초식을 경멸하던 내가 풀을 뜯어먹으며...


간수치는 한 달 만에 반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떨어뜨렸어요? 좀 가르쳐주세요" 

다시 찾아간 의사가 반문하며 묻는다. 

재미를 붙인 나는 그 후 1년을 세 가지 방법을 병행하며 계속 임했다.

그리고 체질은 아래표와 같이 개선 됐다.

(한 달 혹은 두 달 꼴로 비용을 지불해가며 건강검진센터에서 인바디를 측정했다)

수치는 인바디를 통해 측정함.


체질 개선 후, 1년 전에 입던 바지를 입어보니 셋째 딸 한 명 정도가 허리에 들어갈 정도로 공간이 생겼다. 대단한 성공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늙어 보이게 살 뺏냐며 시셈했다. 

'늙어 보이면 어때? 건강을 챙겼는데~' 

그렇게 총각 때 입던 옷들을 꺼내 입었고, 자신감도 생겼다.

살을 빼기에는 세 가지 방법이 매우 유용하지만, 사실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목표치를 달성하고 나면 세 가지 방법 중에서 두 가지만 병행하거나, 한 가지방법만 시행해도 체질개선이 되어 있는 상태라 체중 유지는 꾸준히 됐다.


그 후로 변화된 체질은 습관이 됐고, 주위로 잔소리가 시작됐다. 크게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설교가 시작됐고, 강요까지 시작됐다. 피해자들은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우선은 친동생에게, 우선은 죽마고우에게, 우선은 친한 대학후배들에게, 우선은 친한 직장 후배에게, 우선은 친한 직장 상사에게...

장문의 카톡과 귀에서 피가 날 정도의 강의와 짜증 날 정도의 사진, 영상... 그것들이 그들의 피와 살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들을 위해 내가 희생한다고 생각했다.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는 주입식 교육. 그리고 인간관계는 Give & Take라며 따라오지 못하는 그들에게 상처받고 서운해했다가, 다시 힘을 내 열정을 가지고 그들은 전혀 원하지 않는 당신의 코디네이터라고 자처했다. 성숙하지 못한 코디네이터였다.


완벽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던 그 코디네이터는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체질은 정신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먹고 싶은 것을 참는 인내와, 자극적인 맛을 멀리하는 인내와, 찌뿌둥한 몸을 이끌고 운동하는 인내 말고 육체를 지배하는 감정 말이다.

번아웃에 푹 빠져 사표를 고민하고 있을 때야 감정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닥난 감정은 체질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 잘난 코디네이터는 정신에 지배당했고, 처음에는 입맛이 없어 뭘 먹지 않아 오히려 살이 빠졌지만, 점점 무기력증에 빠져 조금의 주어진 시간이라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 안 터니, 결국 몸무게와 물렁살들은 우상향이 되버렸다.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 쳤다. 바닥난 정신에 지배당한 육체를 조금씩이라도 움직이려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챙겨 입은 등산복은 현관에서 다시 벗기 일쑤였고, 풀었던 자전거의 잠금장치는 다시 잠그기를 반복했다. 불혹의 나이에 정신까지 피폐한 상태에서 무릎까지 나갈 순 없어 조깅은 꿈도 꾸지 않았다. 모든 노력들이 물거품 되기 일쑤였다.


역시 가장 큰 처방전은 사표였다. 사표 수리가 확정이 되니 바닥났던 감정은 바로 충전됐다. 어르고 달래도 움직여지지 않던 육체는 이끌기 전에 이미 등산복을 입고 있었고, 자전거 잠금장치를 풀고 있었으며, 산을 향해 페달을 밟고 있었고, 스틱으로 등산로를 찍고 있었다. 한동안 다니지 않았던 수영장의 홈페이지를 오랜만에 방문하여 수강신청 추첨에 광클릭을 하고 있었다. 눈이 쌓이기 시작하자 설산은 무조건 가야 한다며 아이젠을 들고 강아지처럼 팔짝팔짝 거렸다.


운동은 습관이 되어 거의 매일 하게 되었지만 낮에 해야할 버킷 리스트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운동을 새벽으로 미뤘다.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운동을 하려면 최소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우연찮게 미라클 모닝을 해버리게 된 것이다. 아침잠 많은 아내는 나의 부석 거림에 자꾸 일어나게 된다고 피곤하다고 투덜 되지만^^.

미라클 모닝의 흔적(녹색동그라미 크기가 운동량임)


자전거를 즐기며, 뒷동산을 오르며 번뇌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게 됐고, 육체와 마음의 근육이 조금씩 장하는 것을 느꼈다. 육체가 먼저인지, 정신이 먼저 인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이렇게 겪어 보고도 아직 잘 모르겠다. 마음이 움직여야 몸이 따라가는지, 몸을 움직여야 마음도 따라오는지... 살면서 조금씩 더 알아봐야겠다. 


친구 녀석이 간이 안 좋아졌다며 SOS를 친다. 전에 코디네이터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친구다. 다시 열정이 살아난다. 장문의 카톡을 우선 보내준다. 친구 녀석이 관심을 갖는다. 내 요청에 따라 친구가 먹고 있는 음식 사진을 회신받는다. 잔소리한다. 이거 먹어도 되냐 저거 먹어도 되냐 물어온다. 잔소리로 다시 회신한다. 간헐적 단식 후 유산소 운동해야한다고 또 잔소리한다. 친구의 연락이 끊긴다... 하지만 이제 잡아끌진 않는다.


말은 물가에 데려다줬다.

물은 말이 마시는 거다^^.




* 이 글을 읽으시는 다이어터분들께...

 앞에 떠다 놓은 물만 마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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