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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한 스컹크 Dec 29. 2023

품고 있는 날개

아빠의 조합장, 편입

해외에 나가겠다는 꿈과 목표가 없어지고 나는 다시 방황을하며 집에 누워있거나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했다. 항상 가난해서 아르바이트가 일상이었지만 그래도 외국에, 그것도 캐나다에 가고 싶다는 열정은 마음에 가지고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에도 캐나다에 영어공부하러 간다고 말하고 그만두었다. 가장 좋은 변명이자 언젠가는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였다. 

그런데 정말 꿈이 이루어졌다. 

그것도 내 나이 30살에. 

캐나다에 유학으로 갈 수 있게 될 줄이야.


내가 26살인가 27살 즈음에,

하루는 아빠가 술을 먹고 집에 와서 자기가 노동조합장 선거에 나가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나는 또 술 먹고 헛소리하네 하는 생각이었지만 

“해보고 싶으면 해 봐. 해보고 안되면 마는 거고 되면 좋은 거지.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렇게 사람을 좋아해서 가정을 버리고 사람들한테 잘했으니 0표는 안 나오겠지. 만약 당선이 안된다면 다시 인간관계를 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빠에게는 딸이 응원해 주는 메시지로 들렸나 보다. 아빠는 노동조합장 선거에 나갔고 정말 어이없게도 당선이 되었다. 초등학교 졸업장밖에 없는 아빠가 노동조합의 리더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왜 노동조합장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아빠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아빠는 더 이상 운전은 하지 않고 사무실로 출근했으며 새벽근무, 야간운행 등이 없어지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라는 일정한 시간에 회사의 사무실로 출근했다. 

물론 월급도 올랐다. 

그리고 우리 집엔 처음으로 자가용이 생겼다. 


이 차는 당연히 아빠회사의 것이었지만 어쨌든 우리 집에도 자동차가 생겼다. 아빠의 월급이 올라가자 우리 삶의 질은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아졌다. 명절에 들어오는 선물도 달라졌다. 더 이상스팸이나 샴푸들이 아닌 한우, 과일바구니 등이 명절선물로 들어왔다.


당시 서울에 4년 제로 편입을 했던 나는 더 이상 등록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아도 됐다. 학자금 대출은 두 학기만 빌렸고 나머지 학기는 빌리지 않아도 됐다. 아르바이트를 다니던 시간에 나는 스펙을 쌓으러 학원에 다녔다.


아빠의 삶의 질도 높아졌다. 항상 학벌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아빠도 어른을 위한 학교에 다니며 중학교 과정을 수료했다. 

가난한 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아빠는 국민학교에 입학하면서 형, 누나들이 사용한 교과서, 몽당연필, 입던 옷 등을 물려받아 공부할 맛을 못 느껴봤다. 다 낙서되어 있는 책에 새 연필이 아닌 몽당연필로 공부하고 싶은 어린이는 없을 것이다. 아빠도 그랬다. 그리고 가난해서 육성회비를 못 내서 맨날 학교에서 맞았다. 그래서 아빠는 학교 가기 싫어했고 어린 나이에 차라리 기술을 배우겠다며 학교를 스스로 안 나갔다. 

그 후로 어른이 된 아빠는 새것을 좋아했다. 열쇠를 새로 만들면 기존에 자기가 사용하던 열쇠는 우리를 주거나 버리고 본인은 새것을 사용했다. 그렇게 새것이라면 집착하는 어른이 되었다.

새로 시작한 중학교는 새 책, 새 연필 등 드디어 공부할 맛이 나는 학교생활이었다. 비록 눈은 침침해서 잘 안보였지만 본인처럼 사정상 배움을 하지 못 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만나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며 중학교 졸업장이라는 꿈에 그리던 학벌이 조금이지만 높아졌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공공기관에 취직을 했다. 물론 비정규직이었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나이 많다고 생각한 내가 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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